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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우스워지다니

by 박수민

열여섯 번째 이야기 [2024. 2. 7. 수]


오늘 버스에서 우당탕탕 넘어졌다. 순간 너무 아파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분명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옆으로 휙 쓰러져버렸다.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려고 기사님이 차선 변경을 하는 중이었는데 하필 내가 일어났나 보다. 내가 느낀 아픔으로는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었는데, 한 아저씨의 “아이고 아프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신기하게도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버스는 또 한 번 휘청거린 후에야 나를 정류장에 내려다 놓았다.


버스에 승차감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오늘 버스는 유독 끼익 끼익 소리가 많이 나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기어코 나를 바덕에 내팽개치고 말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아픔이 밀려오면서 서글픔에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응시하시는 바람에 나는 다시 가면을 꺼내 썼다. 표정을 가다듬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버스에서 내가 넘어진 걸 보신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부끄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내가 민망할 것을 생각하셔서 옆의 칸에서 탑승하셨다. 그 작은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모르는 사람의 아픔과 마음을 헤아려주신 두 어른 덕분에 얼마간 마음이 따뜻했다.


그러고선 집에 오는데 도저히 밥을 차려 먹을 힘이 없어 종종 가는 반찬가게를 들렀다.(사실 몸이 쌩쌩할 때도 반찬은 잘 해먹지 않는다. 부지런하지도 못하지만 요리에 서툴다.) 먹음직스러운 반찬을 골라 담는데, 다른 분이 유리문을 내쪽으로 미는 바람에 내 손이 낄뻔했다. 다행히 재빨리 손을 뺀 덕분에 다치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속으로 ‘오늘 조심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장님이 괜찮냐며 본인이 철렁했다며 나의 안전을 살폈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손님도 괜찮냐며 물어오는 통에 머쓱해져 얼른 계산을 치르고 나왔다. 내가 다친 뻔했는데 태연한 나보다 더 가슴이 철렁했다는 사장님의 그 포근한 마음이 고마워 앞으로 더 자주 반찬가게에 들를 것 같다.


얼마 전 <개구리네 한솥밥>이라는 백석 시인의 동화시를 읽게 됐다. 가난하고 배고픈 개구리가 멀리 떨어진 형에게 쌀을 얻으러 가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았다. 배가 고픈 개구리는 해가 지기 전에 쌀을 얻으러 가는데 다리 다친 소시랑게를 만나게 된다. 개구리는 갈 길이 바쁘지만 소시랑게를 치료해 주고, 그 이후에 만나는 쇠똥구리, 개똥벌레 모두애가 도움을 준다. 착한 개구리는 형을 만남 무사히 쌀을 얻었지만, 돌아오는 길 날이 저물어 주변이 캄캄해지고 길을 걷던 개구리는 막막함에 울음을 터트린다. 그때 도움을 받은 개똥벌레가 나타나 반딧불로 길을 비춘다. 개똥벌레 외에도 개구리에게 도움받은 친구들 모두 개구리가 어려움이 처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준다. 끝에 개구리가 얻어온 밥을 지어 모두 함께 둘러앉아 먹는다.


백석 시인의 <개구리네 한솥밥>을 읽으며 한솥밥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봄과 동시에 오늘 만난 어른이 떠올랐다. 나를 직접적으로 일으켜주거나 달래주지 않았지만,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와 눈빛에서 나는 충분한 위로를 받았다. 다음에 누군가를 도와야 할 때가 오면 나도 따스한 눈빛으로 상대를 보아야겠다. 동화 속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따뜻한 순간이 오늘 내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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