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2024. 2. 8. 목]
과거의 나는 왕 지각 쟁이였다. 매일매일 지각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자주 지각을 했다. 살면서 나보다 자주 늦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자랑은 아니다. 지금은 지각하는 버릇도 고쳤다.) 그런데 정말 매일 지각하는 사람을 보게 됐다. 그는 늘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지각은 해도 인사는 잘하는 서글서글한 성격이다.
대체로 5분 정도 늦는데, 스스로 얼마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말해준다. 아직 바깥은 추운데 '저 정도로 얼굴이 빨개지려면 얼마나 뛰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의 늦음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며 넘긴다. 그래도 꿋꿋하게 늦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가 오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놀라운 것은 그의 태도다. 나는 지각할 때면 매번 마음을 졸이며 조마조마하게 등교하거나 출근을 했다. 뛰면서 늦는 스스로를 엄청 나무랐는데,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봤을 때 그는 태연해 보인다. 빨개진 그의 볼이 실은 늦을까 걱정됐음을 보여주는 거겠지. 그의 지각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아서인지 그는 매번 같은 시간에 오는 걸 고수한다.
지금은 지각을 하지 않은 나지만, 한때 나는 매일 지각했다. 이른 시간에 등교해야 하는 고3 시절에는 지각비를 내면서까지 매일 같이 지각을 했다. 다행히 지각하는 버릇은 회사에 다니며 고쳐졌는데, 어느 날 일찍 출근하거나 여유롭게 나오게 되면 자주 듣던 익숙한 노래도 더 좋고, 매일 마시던 커피도 다른 메뉴는 무엇이 있나 살펴보며 고를 수 있어서 좋다. 가끔씩 늦을 때도 있지만 제 시간의 출근하는 기쁨과 뿌듯함을 느끼며 매일매일 지각하는 않는 삶은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