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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

by 박수민

열여덟 번째 이야기 [2024. 2. 13. 화]


설 연휴에 조카를 만났다. 올해 아홉 살이 된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제법 씩씩한 태가 난다. 매번 자기네 집에서 봤는데, 큰집에서 나를 보자 쭈뼛쭈뼛 발을 뒤로 뺀다. 장소가 주는 낯섦 때문에 잠시 얌전해진다. 그런 것도 잠시 여느 때처럼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신기한 게 없나 두루두루 살핀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만져도 되는 물건인지 아닌지를 아주 잠시 고민한다는 것이다.


큰집에는 자신이 흥미를 느낄만한 게 없는지 금세 흥미를 잃고 내 곁을 맴돈다. 빙 둘러앉아 제로 게임을 한다. 내가 외치는 숫자만큼 손가락을 들어 올리면 상대에게 벌칙을 주는 게임. 우리의 법칙은 손목 때리기였다. 자그마한 손으로 얼마나 세게 때릴까 생각했는데, 앙증맞은 손으로 찰싹찰싹 야무지게도 때린다. 아홉 살이지만, 어깨도 벌어지고 손아귀 힘도 좋다. 1년간 축구교실을 다니더니 제법 지구력도 생겼다. 그런 걸 떠나서 둘째 조카는 원래 힘이 세다. 내 소매를 걷어 손목 안쪽을 찰싹찰싹 소리 나게 때린다. 그러면서도 자기 삼촌은 힘을 빼고 살살 때리는 얄미운 구석이 있는 아이다.


"왜 삼촌은 살살 때려?"라는 물음에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살살 때리는 거야"라고 새촘하게 말한다. 그 대답에 "그럼 숙모는 안 좋아서 세게 때렸어?"라고 자기 엄마가 묻자, "아니야. 그런 거"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한 때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더니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부터 삼촌이 제일 좋단다. 시시각각 마음이 변하는 갈대 같은 나이다.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을 보자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사랑스럽다. 나는 조카에게 "삼촌이 왜 좋아?"라고 물었다.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삼촌은 힘이 제일 세요"라고 말한다. 키도 제법 크고 무게도 어느 정도 나가니 조카를 번쩍번쩍 들어서 안아주는 사람이 없다. 단 한 명 삼촌을 빼고. 삼촌은 아직 자기를 들어 목마도 태워주고 뱅글뱅글 돌려도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 아이에게 삼촌은 슈퍼맨과 같다. 삼촌의 목마를 타고서 하하하 웃으며 "삼촌은 역시 제일 힘이 세!" 하며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다. 저 자그마한 아이가 웃음 짓자, 세상이 온통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놀랍도록 다정하고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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