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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 나는 왜 배고픔에 떨었나

by 박수민

스무 번째 이야기 [2024. 2. 15. 목]


연휴 동안 먹고 또 먹었다. 와구와구 먹어댄 끝에 위는 더부룩하고 소화는 되지 않았다. 소화가 안 될 때는 한 끼 정도는 굶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녁을 먹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먹으면 폭식할지도 몰라 집에 있던 호박죽을 데워먹었다. 역시 나는 굶는 게 잘 되지 않는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고 이렇게 비 오는 날 따끈한 것을 먹으니 뱃속이 든든한 게 기분이 퍽 좋았다.


죽을 먹었더니 어쩐지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덕에 며칠 집을 비워 여기저기 어질러저 있는 집을 치웠다. ‘아무도 없는 빈 집을 누가 이렇게 어질렀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범인은 나였다. 급히 집을 나서느라 짐을 여기저기 흩트려놓고, 돌아와서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보고도 못 본 척 이틀을 보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거실만이라도 치우자’ 싶어 조금 치웠더니 제법 깨끗해졌다.


한 시간 정도 청소를 끝내고 소파에 앉으니 허기가 밀려왔다. 분명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는데, 죽을 먹은 지 한 시간 만에 배가 고팠다. ‘움직이지 않아서 소화가 안 됐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체리 몇 알을 먹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허기를 달래줄 간식을 아주 조금 먹었다. 먹고 바로 잤어야 하는데 씻고 머리까지 말리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죽과 체리 몇 알로는 도무지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속이 더부룩했던 게 무색하게 내 뱃속은 허했다. 이미 늦은 새벽 먹을만한 게 없는지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아무래도 이 새벽 가볍게 먹을만한 게 있을 리 없고, 불을 켜고 뭔가를 먹기도 귀찮아 몰려오는 허기를 모른 척 이부자리에 들었다. 가만히 누워 ‘나는 왜 이 새벽에 배고픔에 떨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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