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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선택은

by 박수민

스물두 번째 이야기 [2024. 2. 19. 월]


열 살짜리 조카는 주말마다 합창단 활동을 한다. 맑고 아름다운 미성을 자랑하는 그녀는 메조소프라노를 맡았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은 편으로 알고 있는데 합창 무대는 곧잘 선다고. 그런 조카가 새해를 맞아 문화홀을 빌려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긴장한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단체로 응원봉을 제작하기로 했단다. 응원봉에는 최대 여섯 글자의 문구를 쓸 수 있었는데, 부모들은 톡톡 튀는 문구를 써내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다 똑같은 응원봉이지만, 불을 밝혔을 때 우리 아이 응원봉이 더 눈에 띄었으면 하는 마음이리라.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지만, 엄마아빠들은 아이를 위한 문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우리 조카만 해도 이름을 제외하고 4글자를 쓸 수 있었는데, 어떤 문구를 쓸지 나와 남편에게까지 도움을 청했다. 남편의 추천 문구는 ‘모태미녀’. 눈을 의심했다 합창하는 조카에게 모태미녀라니… 시언니도 당황했는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 후에 나온 의견은 ‘자체발광’이었다. 나는 도무지 좋은 의견이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대화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언니는 이왕이면 노래와 관련된 문구면 좋겠다고 했다. 더 어려워졌다. 생각나는 건 꿀성대, 달콤 성대 정도였다. 의견은 내야 되니 급한 대로 달콤 성대를 밀었는데, 우리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좋았다. 최종적으로 조카에게 달콤 성대, 우주홀릭, 자체발광 이 세 문구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고, 조카는 ‘자체발광’이라는 문구를 골랐다. 나는 내심 내가 낸 문구를 골라주길 바랐는데, 다른 걸 골랐다.


며칠이 지나 만들어진 응원봉을 봤는데, 생각보다 문구의 크기가 크지 않아 멀리서 보면 그냥 반짝이는 불빛 정도로 보일 것 같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약 한 시간 정도 성인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문구가 좋을지 고심고심했다. 공연장에서 응원봉은 그냥 반짝이는 불빛정도겠지만, 그 속에 담긴 문구처럼 합장하는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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