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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없는 나의 주말은

by 박수민

아홉 번째 이야기 [2024. 1. 29. 월]


나에게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주말에는 신발을 신지 않고 오직 집에서만 머무르는 것. 하루쯤은 머리를 감지 않아도 거울을 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상태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주말인데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히 씻을 때도 있다. 씻고 씻지 않고는 순전히 내 기분에 따라서다. 나는 깔끔한 엄마와 적당히 깔끔한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느 날을 깔끔하고 어느 날은 적당히 깔끔하다.


마산에 살고 있는 두 분의 작은 딸은 외모 말고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게 별로 없다며 오후 늦게까지 씻지 않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화장실에 다녀오며 우연찮게 거울을 보고선 씻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옆지기가 귀엽다고 웃을 때는 몰골이 심상치 않다는 거다. 말끔하게 씻고 나오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시간은 이미 7시 어디 가기엔 늦은 시간, 저녁으로는 유튜버가 너무너무 맛있다던 치킨을 먹었다. 맛은 있었고 맵찔이인 나는 한동안 매움이 가시지 않아 아이스크림도 먹고 한라봉도 먹고 차도 마셨다. 마지막 차는 아마 가느다랗게 남은 양심이겠다.


먹고 나니 놀랍게도 주말의 끝자락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증발했는지 알 수 없다. 잘한 일이라고는 언니의 생일을 축하해 준 것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것. 그나마도 가장 읽고 싶던 책은 아직 차에 있다. 왜 그 책만 두고 온 걸까. 가끔 스스로를 이해 못 할 때가 종종 있다. 침대 맡까지 책을 들고는 왔는데 아직 펼치지 못했다. 오늘은 책을 펼치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주말은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고 다시 읽고 그러다 잠드는 그런 조용하고 아늑한 거다.


정적인 걸 좋아하는데 나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듯하다. 보이는 이미지는 대체로 밝다. 에너지가 넘치는 성향은 아니라서 그저 빵긋빵긋 잘 웃고 호응을 잘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입이 쉬지 않는다. 그런데 내 사람들은 대부분 목소리와 언변이 나보다 좋아서 말할 순서를 잘 놓친다. 그렇지만 일대일에서는 주로 대화를 독식한다. 그래서 ‘아차’할 때가 있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친구들을 만나면 신이 나서 까먹고 만다. 친구들에 비해 목소리가 작아서 다행이다. 내 말을 곧잘 묻혀서 말수를 줄여준다.


약속이 없는 주말을 보내고 나면 ‘오늘 뭐 했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신 오늘 하루를 무얼 하고 보냈는지 어떻게 나를 보살폈는지를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한 번에 그려지는 그런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날은 대부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하고 조용히 흘러간다. 나는 가장 평범하고 조용한 보통의 날을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 내가 보낸 주말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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