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당시 감명깊게 봤던 책,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던 프로젝트,
우연히 보았지만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 강연
그것이 내가 속한 집단의 이름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지금 이 순간도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는 내 인생에서
나를 온전히 소개하며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때 더 풍요롭지 않을까?
경험으로 소개하는 것의 장점은
나의 지금과 미래의 내면에도 좋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어떠한 집단의 이름으로 알려질 때보다
경험의 이름에 담긴,
나의 강점으로 알려질 때
보람, 성취감, 만족감은 몇 배가 때문이다.
또한 타인에게도 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학교의 이미지가 좋다할지라도
거기서 상상되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되려 나의 진짜 강점이나 습관.
일상 모습에 대한 관심을 감소시킨다.
내가 만약 공대를 나왔다고 소개해보자,
내가 디자인에 열정이 가득 넘친다하더라도
공대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 정도의 열정이
디자인과를 나온 사람보다 훨씬 뒤쳐져보일 것이다.
열정을 숫자로 매길 수는 없지만 실제로
어떤 디자인과 학생보다도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더 높을 수도 있다.
공대를 나왔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내가 미래에 그 무엇보다 원하는 나의 모습이나 나의 성향은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언젠가 당황스러움, 답답함과 함께
나를 어디서부터 다시 설명해야하는거지?!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또한 낙인효과로 인해 (:명사나 정보를 통해 신속한 판단을 내리게하는 것, 동시에 편견의 발생으로 인해 상대에 대해 기존 정보로 계속 인식하는 것)
자신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경우
실제로 상대방이 파악한 분야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신감있게 행동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디자인에 대한 활동이나 열정은 감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소개하고 싶은 나만의 경험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오해없는 편견없는 소개가 된다.
무엇보다도
추측형 말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공감으로 좋을 때가 많다.
"~하니까 " "~하겠네"
하지만 이렇게 내 머릿 속 지식과 경험,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에 의해 추측하는 말들은
그 대화에 참여한 이들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행동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고정관념과 새로운 소재가 나오지 않는 흐름들로
대화가 더 진전되지 않았다.
마치 한문장이라는 작은 방 안에서 답답하게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추측이 담긴 듯한 말투를 쓰지 않아보았다.
그랬더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고정관념의 벽이 사라지고
못 보던 넓은 초원과 바다가 보이듯 자유로워졌다.
고정관념을 활용하기 좋아하는 추측이 사라지니
새로운 물음표라는 티켓이 주어졌다.
모든 가능성을 품게 되는 질문의 대화가
더 자주, 다양하게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미 머릿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듯,
프레임에 갇혀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생에서 모든 지혜를 배울 수 있는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더 폭넓은 스펙트럼의 주제로
가끔은 더 깊게 근본으로 파고드는 대화로
나는 넓게도 가보고 깊게도 가보는 도구를 가질 수 있었다.
단지 추측과 평가, 판단을 멈추었는데말이다.
그동안 돌이켜보니 나와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혹은 오프라인상에서 너무나 쉽게
아래와 같이 자신만의 경험에 근거한 추측을 자연스레 내뱉고 있었다.
문신을 했으니까 개방적이겠다
남자니까 섬세하지는 않겠다
살쪘으니까 건강하지 않은 음식을 먹겠다
마르니까 살 좀 쪄야겠다
이러한 ~하겠다. 라고 마무리 되는 문장은
우리의 기존 편견이나 관습을 더 강화시키거나
더 오랜시간 다른 상상의 기회, 관점이 넓어지는 기회를 줄이고 있었다.
그 추측은 돌이켜보면 사실이 아닌것 투성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세상에 하나로 통일된 것은 모래 자갈밭에서도 찾을 수 없다.
말라보여도 건강한 사람도 많고
남자여도 섬세한 사람도 많다.
그래서 이제는 나부터
추측성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을 듣고있는 , 스쳐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나의 편견을 교육시키는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단편적인 경험이 판단으로 만들어진 문장들,
이러한 추측성 문장들이 자주
우리의 생각에 스며들다보면 어떻게 될까?
한번 들은 이야기는 시간을 돌릴 수 없듯
어느새
관계없는 이야기에서도
이전에 들었던
그런 판단 가득한 문장들이 불현듯 떠올라
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걸 말하는 나에게도
해당 내용에 대한 신념을 강화시킨다.
상대에게 말을 하면서 나의 기존 생각을 더 공고히 다지는 것이다.
그래서 추측은 오직 나의 일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질문이라는
더 튼튼하고 더 유익한 도구로
인생을 여행해보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인생관점이 되었다.
'역시~'
라는 짧은 말만 안했을 뿐인데,
나는 상대방과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이나 비교의 느낌을 주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상대에 대해 반응을 해줄 때
쉽게 툭툭 나오던 것이 이런 것이었다.
"역시 그런 일을 하니까 아주 잘 하시더라구."
부터
"역시 그런 곳에 자주 가야 좋아."
라고 자주 말했다.
하지만 어느새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나의 편견을 나에게 심어주는 느낌이 들었고
나를 옭아매며 답답하게 만드는 듯했다.
그리고 더 이상 '역시'를 붙였던 칭찬의 말들이 아니면
그 외의 것은 잘 시도하지 않고, 가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런 이야기를 어떤 집단에서 하게되면
"역시~한다" 라는 일종의 좋은 평가,
칭찬을 듣는 상대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말을 들으면
"그럼.. 나는 .." 이라는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수능교육, 입시문화의 비교, 평가, 순위매기기가 나의 깊은 곳에 아직 남아있었나보다..
아차! 싶었다.
"역시~" 너가 선물을 주니 포용력이 넓은 사람일 줄 알았어.
>>
"오늘~" 너가 그렇게 선물을 주니~ 너무 기분이 좋은 것 같아.
"역시~" 패션 전공이라 잘 아시네요
>>
"이렇게~" 패션 분야에 대해 잘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듣는 사람들도, 나도, 모두 기분이 좋은
'현재에 초점을 맞춘' 말하기가 내뿜는 에너지와 감성들은 너무나도 편했다.
평온하고도 평화스러웠다~
더 좋은 점은 내 기존 렌즈로 상대를 바라보던 것을
일상에서 가볍게 지우고나니
상대의 감정과 행동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고
더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고
상대와 그 시간 속에서 장점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감사하다라는 감정이
내 마음 속에서도 더 풍부하게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저
"역시~"라는 말을 안씀으로써 말이다.
우리는 매번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1초,
1분,
1시간 뒤의 감정이
나쁠 수도 있던게
행복함, 감사함으로 바뀌고
멈춤의 상태, 고립감에서
배움과 엄청난 성장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변화들은 1년 뒤, 10년 뒤에도
영향을 커다랗게 미친다.
말을 다듬지않고 그저 생각나는대로 하고살기에는
오늘은 너무나도 좋은 날이다
나라는 사람을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그 자체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기에
이 순간은 가장 젊고도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