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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Aug 20. 2021

프랑스어 하면 뭐가 좋아요?

이토록 특별한 프랑스어 20주년 특별판 제1화

« Si vous parlez à un homme dans une langue qu’il comprend, vous parlez à sa tête. Si vous lui parlez dans sa langue, vous parlez à son cœur » – Nelson Mandela

당신이 만약 어떤 사람과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그의 머리로 갑니다. 당신이 만약 그 사람과 그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 대화는 그의 가슴으로 갑니다/ 넬슨 만델라.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한창 꿈 많던 교환학생 시절 만났던 인연으로 인터뷰 중에 '프랑스어'가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만히 헤아려보니 어느덧 20주년이 됐다. 프랑스어와의 인연이 벌써 20년이라니. 사실 영어와의 인연은 더 길지만, 그래도 내가 밥벌이를 하는데 가장 크나큰 역할을 한 것이 프랑스어이니, 프랑스어 20주년이 나에게는 새삼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초라도 켜서 축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애증 :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


20주년이라니, 세월이 이렇게나 빨리 흘렀구나 격세지감에 잠기는 것도 잠시, 프랑스어에 대한 질문에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답변은 바로 '애증'이었다. 20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온 언어라는 점이 의미 깊게 다가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는 왜 하필이면 프랑스어를 했을까' 하는 질문에 빠져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설킨 질문의 늪에 빠지기도 했었다. 통역이 잘 되었거나, 번역물이 너무 기분 좋게 나왔거나 혹은 프랑스인 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웃고 있는 나를 보면 프랑스어를 하길 잘했다, 싶다가도 그래도 한국에서 아니,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시 영어인데 나는 왜 스스로 비주류(?)의 삶을 택했는지 갑자기 자아성찰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말이 '애증'이었다.


그래도 미운 정 고운 정이 함께 깃든 프랑스어를 해오면서 얻은 것이 훨씬 더 많고,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잠시 벗어나 애증에서 '애(愛)'의 파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프랑스어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프랑스어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어 뮤지컬을 DVD로 틀어주셨다.

웅장한 음악에 아름다운 무대장치도 그렇고, 원래도 노랫소리 같은 프랑스어로 부르는 노래는 10대 청소년들의 마음을 꽉 사로잡아버렸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프랑스어 뮤지컬에 빠져들었고, 대표 넘버를 따라 부르면서 프랑스어를 익히기도 했다. 한국어 자막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흠뻑 젖어 들어 하나둘 씩 흥얼거리면서 그렇게 몇 번을 되돌려 보았더랬다.

그때만 해도 오리지널 뮤지컬 캐스트가 흔치 않은 때였고, 고등학생 신분에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렇게 화면으로 본 뮤지컬에 만족해야만 했더랬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바야흐로 때는 2005년,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 때였다. 프랑스어 전공자로서, 그리고 뮤지컬 애호가로서 이 두 가지가 결합된 프랑스어 뮤지컬이 초연을 온다는 사실에 이건 꼭 가야 해라고 생각하고 당시에도 꽤나 가격이 나갔던 뮤지컬을 3번이나 봤다. 당시 가장 싼 표가 5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대학생 김 오뚝이는 고소공포증도 극복해 버릴 정도로 3층 저 멀리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3번이나 봤을 뿐 아니라, 노트르담 드 파리 팬카페에도 가입해서 매일매일 소식을 접했다. 배우들이 묶고 있다는 숙소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 뒷 문에서 기다리면서 배우들을 기다렸다.


그때는 프랑스어가 지금만큼 능숙하진 않았어서, 이름 말하고 사인받고 사진 찍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어쨌거나 멀리서만 보던 배우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엄청나게 기뻤다. 심지어 J와 G를 잘못 말해서 사인도 잘못 받았지만, 중요하지 않다. 프랑스 배우와 프랑스어로 이야기했으니까.


그걸로 끝이 났다면, 내가 구태어 '성덕'이라고 까지 표현하진 않았을 테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도 하고 대학생 때와는 다르게 그래도 풍족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한때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던 터라, 뮤지컬을 정말 열심히 보고 다녔다. 회사에서 임직원 전용으로 할인된 특별행사 시 할인된 가격에 표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예매를 했었다. 3층에서 2층 그리고 1층으로 자리는 점점 더 좋아졌다.


사진출처 :https://kstar.kbs.co.kr/list_view.html?idx=14440 좌/ 미켈란젤로 로콩테 (모차르트 역), 우/ 로랑방(살리에르 역)



그리고 운명처럼, 또 '프랑스 오리지널 캐스트'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되었다. '아마데우스'라고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티켓 파워가 꽤나 괜찮았던 뮤지컬이었다.

특히나 더 의미 있었던 것은 10년 전에 봤던 뮤지컬에 출연한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것.

당시에는 가까이 서볼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는데, 10년 뒤에도 그의 성량이나 발성, 연기는 정말 탁월했다.

물론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황홀한 3시간이 휘리릭 지나가고 공연장을 나서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장사진이다.

프로그램북을 사전 구매한 사람들에 한해서 배우들과의 팬사인회가 예정되어있다는 것.

열혈팬까지는 아니었던 우리는 줄이라도 서보고 싶은데, 사전 교부된 번호표가 없어서 '줄 서기'도 제지당했다.


10년 전에 만났던 그 배우도 있었고 다른 배우들도 있고, 방법이 없을까 옆을 서성이는데, 옆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과 주연 배우중 한 사람의 여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듣게 됐다.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다가간 나는 "Excusez-moi (잠시만 실례할게요)"라고 운을 뗐다.

한국 공연장에서 한국인이 프랑스어를 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리라.


화들짝 놀라는 둘에게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런 이벤트가 있는지 몰랐는데, 로랑방(Laurent Ban) 배우의 오랜 팬이다. 그 덕분에 프랑스어도 이렇게 유창해졌고 (100%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잠깐 사진 몇 장 찍을 수 없겠느냐고 물어봤다.


딱 잘라 거절하면 돌아서야지 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좋아하면서 행사가 끝날 때까지만 잠깐 기다리면

시간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한다.


어머나. 세상에

친구랑 나는 어머나 세상에를 연발하면서 줄이 줄어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그리고 나는 그렇게 성덕이 되었다.

늦은 시간에도 흔쾌히 사진도 찍어주고 대화도 나누어준 모차르트! 비록 나는 살리에르 팬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때 사진 중 남은 것이 이것 밖에는 없다. (좌/ 김오뚝, 우/ 찬구K


10년 전에는 그저 사진 한 번만 찍고 돌아섰던 사람과 '어떻게 이렇게 불어를 잘하게 되었느냐'는 말에'당신 덕분이에요'라고 능청스럽게 받아칠 정도로 달라진 나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나름 뿌듯했다.

그렇게 얼마간 대화가 이어지고,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이미 밤 10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고 훗날을 기약하며 (?) 집으로 돌아왔다.


HOT냐 젝스키스냐 아니면 GOD냐로 수렴되던 학창 시절에도, '오빠들'을 기다려 본 적 없었는데, 뒤늦게 덕질 아닌 덕질을 하게 되니 프랑스어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에피소드,


프랑스어로 멘토가 되었다.

Merci Madame Kim. (마담 김, 고마워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한국에서도 통/번역사를 채용해서 함께 일했지만 알제리 현장에서도 현장에 상주하는 알제리 현지인을 통/번역사로 채용했어야 했다. 당시 내가 프로젝트에 통/번역을 총괄하고 있었던 지라, 현지인 이력서를 받아서 번역 시험을 치르고, (현지 직원에게 문제와 소요시간을 안내한 뒤 이후에 스캔본을 받아 채점했다) 전화로 면접을 본 뒤 채용 뒤에는 필요한 어휘나 문서 등을 보내주면서 교육도 하고  통/번역 업무를 나누어주고, 번역물을 리뷰했다.


번역이 주로 불 <->영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지역에서는 불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이 적었을뿐더러 영어는 더더군다나 드물어서 사람을 채용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력서를 받아보면 너무나 당당하게 '통역사'라고 적혀있는데 막상 전화로 면접을 치면 영어도 불어도 구사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역이 괜찮은 것 같으면 번역이 영 엉터리인 경우도 있어 적당한 사람을 찾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와중에 알제리에서도 '통번역'공부를 했다는 P를 찾게 되었다. 전화와 메일로만 소통했는데도, 늘 배우려는 자세가 너무 보기 좋았고, 한국 회사에서 일을 하니 한국어도 배우겠다는 의지도 내비쳐서 실제로 메일을 주고받을 때 한 번씩 쓰는 한국어가 늘어가기도 했었다.


알제리에서도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알제리 인들 조차 '우주'라고 부를 만큼 척박하고 동떨어진 그곳에서 현장에 머무르며, 수가 많지 않은 여직원으로 혼자 지내기가 힘들었을 텐데, P는 요청하는 사항마다 성실하고, 고 빠르게 업무를 수행해 주었다. 혹시 의문사항이 있으면 내게 묻거나, 혹은 자신이 부족한 점은 없는지 주기적으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던 P가 어느 순간부터 메일을 보내오는 시기가 부쩍 잦아졌다.  막무가내로 통/번역이 아닌 다른 업무를 맡기거나, 혹은 통/번역 업무도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맡기거나, 무엇보다 갑자기, 급하게 뭔가를 요청하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내는 한국사람들과 일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주로 들려왔다. 시키는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거나, 혹은 빨리 해내지 못한다고 채근을 듣거나 아무리 설명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던 P를 나는 글로,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갖춘 P였지만, 천성적으로 '빨리빨리'가 몸에 밴 우리나라 사람들과 '인샬라 (알라/신의 뜻대로)'가 몸에 밴 알제리 사람과의 케미가 그렇게 좋을 리는 없었고 사막이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모든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도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P가 일을 맡아주는 것이 좋았기에 여러 차례 연락을 하면서 나름대로 그 환경의 부당함도 공감하고, 또 내쪽에서도 노력을 해보겠노라고 설득했지만 P는 수차례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한국사람들이랑 일하는 것도, 사막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멘토였던 Madame Kim (마담 킴) 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던 친구였지만, 메시지 너머로 전해지는 울림이 아직도 생생했다.

언어를 하나 더 했을 뿐이었는데, 그 언어를 배워서 일도 하고, 개인적으로 '멘토'라는 호칭도 들을 수 있다니 새삼스레 프랑스어 하길 잘했다 하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내가 동경하던 배우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또 머나먼 아프리카 땅의 신입 통역사의 멘토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프랑스어 덕분이다.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그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이러니 내가 프랑스를 애정 할 수밖에. 애(愛)가 증(憎)을 이길 수밖에!





* 그리고 이어지는 20주년 특별판 예고 *

-'전공 불문으로 살아남는 법'을 주제로 인터뷰를 기획했습니다.

저 자신도 프랑스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저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 프랑스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활약하고 계신 분들에게 프랑스어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여쭈어봤습니다. 한 주에 한 번 씩 다음 주부터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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