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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Sep 04. 2021

프랑스어는 기억의 도구다

20주년 특별판 제 3화- 14년 차 바이어 J 이야기

프랑스어와의 인연 20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인터뷰의 2번째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 프랑스어로 맺어진 인연의 J는 대학교까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진학했더랬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서툴기만 했던 새내기 시절 서로 시간표를 모조리 맞추어 짤 정도로 붙어다니는 가 하면,

인생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파리 교환학생 시절도 룸메이트로 우리는 참 오래도 함께 했습니다.

운명공동체와도 같던 J와 저의 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파리에서 돌아온 후였습니다.

귀국 후 저는 파리로 인턴을 떠났고,  J는 지금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 인턴을 시작하면서부터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훌쩍 시간이 흘러 어느새 둘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프랑스어'라는 교집합을 함께 하는 20년 지기 친구가 되었습니다.


언어를 밥벌이로 해왔던 저와는 다르게,

언어를 기반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J에게 프랑스어는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여정을 걸어왔는지 J와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떤 일인지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벌써 우리 20년인가요? 와 그렇네요. 우선, 나의 20년 지기 친구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소개받고 참여를 하게 되다니 너무 영광이에요. 나이는 40대를 향해 가열하게 달려가고는 있지만 아직 (정신적으로) 한참 어리다고 자부하는 서른 중후 반대의 여자 사람입니다.

저는 현재 국내 유통업계 3사 중 한 군데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벌써 한 업계에 몸 담은 지 14년 차가 되어 가네요. 저의 직책은 바이어인데(동종 업계에서 MD라고도 불립니다), 그중에서도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직접 상품을 소싱하고 운영하는 직매입 바이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해외 출장을 가지 못하고 Zoom이나 디지털 쇼룸을 통해 바잉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연 4-6회 정도 해외로 나가요. 주요 방문 도시는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입니다. 주로 패션위크가 열리는 도시를 메인 출장지로 삼고 그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요.


프랑스어와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프랑스어를 접하게 되셨고 배운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중학생 때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한 선배들의 진학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통해 무턱대고 아, 나는 외고를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은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던 때였어서 (웃음) 그 길로 외국어고등학고 입시를 준비하고, 2 지망으로 지원했던 프랑스어과에 진학하게 되면서 프랑스어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1 지망은 당연히 영어였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탈락(?)했고 2 지망으로 프랑스어를 쓴 이유는, 사실 크게는 없었어요. 왠지 프랑스어를 쓰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부였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또 하나는 학생 때 올림픽을 보는데 영어-불어-중국어 순으로 사회자 진행이 이루어지더라고요. 생각했던 것보다 프랑스어 사용 국가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프랑스어를 배워두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막상 고등학교 3년 동안 불어를 배우면서 불어의 매력에 푹 빠졌고, 불어와의 인연은 대학으로까지 이어졌어요.

그렇게 약 7-8년 동안 프랑스어와 굉장히 가깝게 지냈습니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전/과 후 프랑스어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이 달라진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인생에 프랑스어를 접하기 전과 후라.. 음 이걸 편견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배우기 전, 혹은 배움의 초기에는 프랑스어의 발음이나 문장 자체가 주는 예쁨이 대단했어요. 뉴스를 들어도, 노래를 들어도, 띄엄띄엄 읽는 내 발음조차도 너무 아름답게 들렸는데 (웃음) 배우면 배울수록 와 너무 어려운 언어구나.. 싶을 때가 있었어요.

워낙 어릴 때 접한 언어라 기본적인 부분은 기억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사용하지 않다 보니 점점 잊히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과거에 알고 있던 것들을 더 이상 잊지 않고자 시간 날 때마다 프랑스어 책이나 웹사이트를 뒤져보는데  이게 좀 많이 (웃음) 커서 공부하려니 무작정 외울 것도 많고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 그리고 생각보다 프랑스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 듯한데 접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많지가 않아요. 특히 저 같은 직장인의 경우에는 오프라인 강의는 맞출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온라인 강의로 몇 번 시도해봤는데, 너무 오래 전의 녹화분이라 지금의 교육 트렌드와는 역행하는 부분이 있어서 집중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든 간에 프랑스어는 정말 매력적인 언어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채널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공으로 프랑스어를 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해당 전공 선택 후 어떤 커리어 패스를 계획해셨고, 이후에 어떻게 이루어지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에서도 프랑스어 전공을 택한 이유는, 마찬가지로 음.. 큰 이유는 없었어요. 이렇게 계속 말씀드리고 보니 그냥 되는대로 산 느낌인데 (큰 웃음) 정말 불어가 너무 좋았어요.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대학교에서 배우는 불어는 언어적으로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 어떤 배움이 이루 어질까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경영학과 같은 전공은 좀 막연한 느낌으로 다가왔거든요. 배우고 싶은걸 입학하는 시점부터 포커스 해서 배우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대학에서도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보니, 졸업 시점에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언어를 메인으로 하는 교육학으로 진로를 정할 것이냐 혹은 언어를 사용하는 메리트가 있는 업계로 나갈 것이냐. 사실 국내 대기업이나 여러 회사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 손뼉 치면서 환영해줄 곳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내가 가진 장점은 무엇이고, 내가 향후 업으로 삼으면 일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저는 패션이 너무 좋았고 전반적인 패션 업계나 디자이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서 [프랑스를 기반으로 불어 사용이 가능한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로 취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향후에 그럼 프랑스 본사에서도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커다란 ^^ 포부를 안고 써칭을 시작했어요. 그러는 도중 국내 유통업계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보고 [우선 여기서 럭셔리 브랜드와 함께 근무하면서 업계 전반에 대해 배우고 경력을 쌓아보자!]라는 마음으로 저의 첫 사회생활에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에 MD로 일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업무에서 프랑스어 혹은 프랑스와의 업무 유관도는 얼마나 되시는지, 그리고 프랑스어 전공자로 일을 하시면서 막상 필드에 나와보니 이런 게 다르더라, 혹은 이런 게 좋았다 싶은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앞서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해외 MD를 직접 바잉 하는 바이어로 일하고 있고, 파리로 출장도 여러 번 가지만 사실상 업무적인 부분에서 프랑스어나 프랑스와의 업무 유관도는 크지 않아요. 필드에서는 사실, 영어가 지배적이에요. 하루에도 수십 건 해외업체와의 소통이 이루어지는데 전반적인 의사소통은 모두 영어로 이루어집니다.

다만 프랑스 기반의 신규 브랜드를 소싱하거나 영어가 약한 업체를 상대할 때 불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부분이 굉장한 메리트로 상대에게 받아 들어지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시는 분들께서는 너무 잘 아시겠지만 프랑스인들의 마인드는 왜 굳이 영어를 써? 가 여전히 강한 부분이 있어서- 특히 현지에서는 더 그렇고요, 그래서 출장지에서 저의 얕은 지식에서 비롯된 생활 프랑스어가 빛을 발할 때가 간혹^^ 있답니다.

예를 들면 한 번은 파리 출장 중에 택시를 탔는데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 택시기사에게 아무리 영어로 창문 좀 닫아달라고 해도 도통 창문은 닫힐 줄을 몰랐는데, 옆에 함께 타고 있던 선배가 불어로 이야기 좀 해달라고 해서, 불어로 얘기했더니 그제야 창문을 닫아줬던 적이 있습니다. 선배가 너무 고마워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업무에서는 아무래도 영어가 우선적으로 쓰이고 프랑스어는 플러스가 되는 정도라고 보면 될까요?


네,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실제로 회사 내에도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동료, 후배들이 많습니다. 프랑스어 전공자도 많지 않고요. 비록 프랑스어의 업무 유관도는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프랑스어가 빛을 발할 때는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현지에 바잉을 가서 가격이며 마진 협상을 하는데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영어를 사용하다가 파트너사 직원들이 내부적으로 프랑스어로 논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몇 퍼센트 정도까지 해야 할까라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그 부분에서 프랑스어로 5%!라고 외쳤고, 실제로 협상이 수월하게 흘러간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이 프랑스 현지에서는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또 한 가지 더 장점이 있다면 사내에서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현지 패션 업계 소식이 아무래도 현지 기사로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다 보니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기사에 대해 내용을 물어보거나 혹은 회사의 기획전 같은 것에 프랑스어를 활용할 때 도움을 요청해 올 때도 있습니다.  


프랑스어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이나, 혹은 인생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대학교 2년 차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프랑스에서 약 1년 반 정도 생활한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교환 학교가 소르본느 대학이었는데, 수 백 년 전의 강의실 그대로의 공간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당시 현지 대학에서 배우는 프랑스 언어학은 상상 그 이상으로 혹독하고(웃음) 어려웠어요. 한 시간짜리 수업을 녹음해서, 도서관에서 녹음한 걸 글씨로 다 풀어쓰고 해석을 하는 데에만 8시간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나요.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첫 경험이었고,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게 굉장한 독립심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시점을 계기로 모든 것은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프랑스어 전공과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논할 때 지금 저에게 이 프로젝트를 의뢰하신 김오뚝 씨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저희가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에서도 룸메이트였거든요. 저에게는 프랑스어와 긴밀하게 함께 한 8여 년의 시간을 모두 김오뚝씨와 함께 했기 때문에 언어적인 부분 이상으로 프랑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유년의(?) 추억이 몽실몽실 피어난답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프랑스어란 _________다

문장을 완성해 주시고, 이유를 함께 말씀해주세요.


음, 우선 떠오르는 대로 말하자면 나에게

프랑스어란 '기억의 도구다'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배움의 기억, 생활의 기억, 우정의 기억, 여행의 기억

프랑스어와 연관된 추억이 너무 많아서 프랑스어 하면 내가 프랑스어를 이만큼 해라는 생각보다 프랑스어 배울 때 이랬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재밌었고 행복했어라는 시간을 떠올리게 해주는 도구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J와의 인터뷰는 마찬가지로 서면으로 먼저 그리고 대면으로 총 2회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놀랐던 것은 그렇게나 오래도록 붙어있었는데,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참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파리에 있을 때는 패션도 패션이지만 저에게는 J가 코스메틱에 더 관심이 많다고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고 늘 함께 가던 백화점이며 쇼핑몰에서도 저는 그저 "예쁜 백화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J는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있던 '남성 전용관'을 한국에 론칭하고 싶다는 포부를 회사 입사 때 밝혔다고 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지금에야 남성 패션이나 코스메틱 시장이 대중화되어있지만 10년 하고도 몇 년 전, 그곳에서 그런 변화를 캐치하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MD로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오고 있는 J에게 어쩌면 지금 다른 이들과 다른 '한 끗'은 또다시  프랑스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영어 구사능력도 뛰어난 J이고, 또 주변에 모두가 영어만 구사한다고 할 때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를 하면서 업무를 한다면 J의 가치가 더욱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미 멋진 커리어 우먼이지만, 앞으로 더 멋지게 빛날 자랑스런 친구 J의 커리어를 응원하면서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나서 준 J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 인터뷰 예고:  알제리에서 파리로, 통역사에서 제약회사 주재원이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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