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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Mar 20. 2021

사회적안전망이 동네가게를 지킨다

100년된 동네가게의 비밀

베를린 뤼데스하이머플라츠의 와인페스티벌. 필자가 지내던 동네이기도 하다.


지난 2018 베를린에서 잠시 지낼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하다 몇달 지나며 품었던 의문 중의 하나가  근처의 동네 가게들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주거를 중심으로  동네여서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평소에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가게는  한산해 보이고 마트나 가야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곤 했다. 가게 앞에는  좋을  아니면  가게에 사람이 있는  없는  알기도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한산해 보이는 , 가게에 들어서고 나면 전혀 다른 분위기다. 점심 전후의 카페에는 브런치를 즐기러  사람들이 가득이고, 저녁에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  있다.


인상적인 것은 많은 테이블이 가족 단위 거나 노인들이고, 특히 노인들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아 카드놀이를 즐기곤 한다. 우리로 치면 마치 경로당에 모여 고스톱을 치는 모습이랄까? 그렇다고 서빙하는 사람들이 노인들을 홀대하지 않는다. 식사하고 나서 와인이나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카드놀이를 하며 밤늦도록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지만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가게들이 대개 100년씩 된 곳들이었다. 자주 가던 독일 식당도 100년 된 곳이었지만 살던 동네에는 향수 가게도 80년이 넘었고, 약국도 100년이 넘은 약국이 있었다. 독일도 요즈음에는 프랜차이즈형 빵가게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내가 살던 동네에는 100년된 빵가게도 있었다. 자신들은 여전히 마이스터가 기계가 아닌 빵을 굽는다며 플래카드를 걸고 있는데, 아침이면 이 가게에서 빵을 사려는 동네남자들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125년 되었다는 장례용품 가게도 있었는데, 공동묘지가 동네 가운데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런 모습이기도 했다. 여하간 동네를 걷다 보면 툭하면 100년된 건물과 가게들이 눈앞에 보이곤 했다. 그래서 늘 궁금했던 것의 하나가 어째 100년이 되도록 망하지 않고 유지되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베를린에 다녀온 몇 개월 사이에 우리 집 앞의 가게들은 얼핏 눈에 보이는 것만 3-4개가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생겼던데 말이다.


100년 가게들의 생존도 궁금했지만 앞에 말한 것처럼 가게의 주요 고객이 노인들이고 그 노인들이 자리에 한 번 앉으면 잘 일어서지 않는 데 그걸 자연스레 여기는 것도 궁금했다. 왜 그런 가를 물어보면 오래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특별히 그런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서 ‘원래 그렇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독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령화는 심각한 문제다. 독일의 국가발전전략인 하이테크전략에는 고령화에 대한 국가적 대응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의제로 되어 있다. 특히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 건강’은 새로운 의료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베를린 시내를 관광하다 박물관과 미술관, 공연장 등에 가보면 어김없이 독일 노인들이 단체로 관람을 온 경우를 보게 된다. 고호나 마네의 그림 앞에 모여 앉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 투어를 하는 노인들을 보는 것도 일상적 이거니와 브레히트의 연극을 보러 베를린앙상블에 가도, 바빌론 극장이든 국립극장이든 어디를 가도 노인들이 공연장의 주요 고객임을 알 수 있다. 나이 들어 여러 모습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독일 노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모습이 가능할까? 사실 답은 간명하고 그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이기도 하다. 동네가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놀이를 즐기는 노인들을 홀대하지 않는 것이나 각종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노인들을 쉽게 마주치는 것은 그런 노인들이 소비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동네 가게의 주된 고객 중의 한 그룹이 그 노인들이기 때문에 홀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노인들의 주요 소득은 이미 짐작하듯이 연금이다. 우리처럼 적은 노인수당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민연금같은 연금제도가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만들어져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주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대개 그 노인들은 동네의 사회주택에 산다. 동네 곳곳에는 ‘시니어를 위한 사회주택’이 민간회사의 이름으로 혹은 여러 협동조합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표지판을 보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러므로 낮은 주거비와 안정적인 연금이 있는 노인들이 중요한 소비주체로서 동네 가게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일상적인 사회에서는 백신이 없는 동안에는 ‘이동’과 ‘접속’이 적을 수록 재난과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면 ‘동네’의 일상은 더욱 중요해 진다. 그러므로 사회적 안전망의 보완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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