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위하여.
수없이 많이 고민했던 것을 결국 행동에 옮겼다.
사직서를 결재판에 넣고 팀장에게 결제를 받으러 갔다.
퇴사 사유는 세계 여행이었다.
성장보다는 그냥 나이가 들어간다고 느낄 때, 회사 선배가 멋지기보다는 나도 저렇게 될까 걱정이 될 때, 반복적인 업무가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퇴사에 대한 생각이 났다.
그런데 퇴사하고 또 다른 직장에 들어가고 다시 적응을 하고 업무를 하는 과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고 근무 조건이 나쁘지도 않고 이미 친한 동료들도 있는 이 곳이 더 익숙하니까 그냥 다니게 되었다. 퇴사는 하고 싶지만 퇴사 후에 특별한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세계 여행이라는 것에 대한 흥미가 생기면서 퇴사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가지 않으면 가기 힘들 것 같은 여행이었다. 결혼을 하면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배우자가 싫다면 못 갈 수도 있고 아이가 생기면 더욱 가능성은 낮아질 것 같았다. 부모님도 좀 더 정정하실 때 여행을 해야지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결국 엄청나게 많이 고민을 했던 퇴사라는 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일단 퇴사한다고 구두로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왜 그러냐고", " 무슨 일 있냐고"하면서 면담을 할 것이 뻔히 보였다. 이미 결정을 했기 때문에 바로 사직서 양식을 찾아서 작성을 하였고 퇴사 사유는 세계 여행이라고 써서 팀장님에게 가서 결재를 요청했다.
팀장님은 보자마자 이게 뭐냐면서 결재판을 책상 멀리 던졌고 난 바로 다시 결재판을 들고 결재를 해달라고 했다. 당연히 세계 여행이라는 퇴사 사유도 믿지 않았고 다른 곳에 이직을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하고 어디로 이직을 하는지 솔직히 이야기해보라고 하고 왜 퇴사를 하는지, 휴가를 한 달 갔다 오라고 하고, 업무 변경이나 팀 변경까지 제안을 하면서 일단 더 생각해보라고 보류를 했다.
퇴사 소문은 점점 팀에 퍼져나갔고 어디로 이직하냐고 물어보는데 난 정말 세계 여행을 갈 거라고 했지만 못 믿는 눈치인 사람들도 있었다. 팀장도 여전히 믿지를 못하는지 나와 친한 동료들을 불러서 내가 왜 퇴사를 하는지, 어디로 이직을 하는지 묻고 다녔다고 했다.
난 계속 사직서에 결재를 요청을 했고 결재를 안 해주면 바로 실장님에게 가서 결재를 받고 인사팀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다행히 팀장도 결국 결재를 해주었고 실장 결재를 받고 인사팀에 제출을 해서 퇴사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퇴사 날짜를 받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작별의 술자리들이었다. 퇴사를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입사보다 퇴사가 더 힘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술자리도 그렇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동기와 동료들과 헤어지는 일이 정말 슬퍼서 퇴사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그렇게 난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거친 세상 속으로 호기롭게 나왔다.
그리고 여행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연 잘한 결정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