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我일기

+216 오늘만 사는 삶

by 갱그리

회사를 출근한 지 이제 벌써 2주가 지났다. 3주차 월요일을 맞는 지금, 나는 불현듯 새벽에 잠이 깼다. 어젯밤엔 아기가 모처럼 일찍 잠에 들었다. 덕택에 나 역시 이른 저녁 나절부터 까무룩 잠에 들었다. 3주 째 낫지 않는 감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독하게 약 처방을 받아왔는데, 먹자마자 밀려오는 피로함에 나가 떨어진 것 같았다. 아기를 재우고나서 보니 나도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두 달 전 쯤 나는 책을 두 권 샀다. 신과 죽음에 관한 책들이었다. 금세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천천히라도 꾸준하게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 책은 책장 위에서 먼지 옷을 입고 있었다. 죽음, 신, 이런 주제들은 고사하고, 내 일상은 오직 시간밖에 없었다. 씻을 시간, 출근할 시간,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 퇴근과 아기 돌봄 등. 매일마다 딱 하루씩만 살아가는 것 같았다.


하루를 건너 생각해야 하는 일들도 물론 있었다. 내년도의 이사, 다음 달의 적금, 곧 다가올 친구의 결혼식들. 짬이 나는 시간에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계산하고 왕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게 삶이란 또 무엇인가. 이런 주제들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매일의 일상에 치여다니는 기분. 단 한 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한 주제라도, 아무리 거대한 주제라도 주저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러분 스스로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에 대해 사색하며, 책을 구상하며 길모통이를 어슬렁거리고, 사유의 낚싯줄을 강물 깊이 담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기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


나만의 시간. 다시 말해 <자기만의 방>이 내게도 필요한 것이다.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쥐어지더라도, 내게는 혼자 '빈둥거리고' '책을 구상하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릴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 내게 뜻밖에 주어진 모두가 잠든 이 고요한 새벽 시간은 정말로 보물과 같다. 나는 이제야 죽음에 대한 글을 한 챕터 읽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 주제로부터 떠나왔음을 깨닫는다. 혼자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나를 떠나간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던 어떤 밤들- 그 고요하고 깊은 저녁의 시간에라야 나는 주로 울거나 기도하거나 글을 쓰곤 했던 것이다.


삶을 곱씹어보고 사람들을 되새기며 붙잡히지 않는 관념들을 잡아보려고 무딘 애를 쓸 때- 나는 희망과 절망을 오가고 때로는 어떤 관망에 빠져들었다. 밤중의 사색들은 늘 쉽게 휘발됐지만, 사색의 밤을 지났을 때 나는 내 삶이 조금씩 깊어져 감을 느꼈다. 숨가쁘게 달려가는 일상이 아니라, 먼저 떠나 간 다른 영혼들- 그리고 도처에 있는 목소리들과 공생하는 감각을 내 삶 안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오늘만 사는 삶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같은 시간을 또 언제 가질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일상의 쳇바퀴와 쳇바퀴 사이에 걸려 진 이 짧은 틈. 나는 그저 불현듯 주어진 이 기적같은 '혼자만의 밤'을 누린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벅차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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