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은 눈 볼일이 많지 않았다. 겨울이 되면 꼭 보고 싶었던 그 사람도 못 만났다. 둥글둥글하고 단단한 뱃살에, 머리카락 한 점 없이 웃고 있던 모습이 그저 귀여웠는데. 추위도 까맣게 잊고 같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옛 추억으로 남은 것만 같다.
눈사람 말이다.
눈이 자주 오질 않는다. 굳게 뭉쳐 눈으로 내릴 것들은 더위에 못 이겨 비로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강설량의 감소도 지구온난화의 신호 중 하나라고 한다.
'눈' 하나로 먹고사는 겨울 스포츠는 약 1조 원의 경제 손실을 입게 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폐장 가능성이 늘어난 스키장도 많아졌다고 하니, 먼 미래에는 겨울 스포츠가 선조들의 전통 놀이로 기억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겨울 놀이의 종말이 한 발짝 다가온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거듭 변해간다. 눈사람 만들기의 풍속도도 현대 사회의 모습에 맞춰 달라지는 듯하다.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손에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을 쥔 채 달려 나간다. 눈사람 집게, 일명 '눈사람 메이커'. 쉽게 말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도구다. 집게를 눈으로 가득 채운 뒤, 한 번 꼭 조이고 나면, 그 어떤 눈사람보다도 매끈한 눈사람 완성이다.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시린 눈을 만질 필요도, 모양을 만들겠다고 힘겹게 팔을 놀릴 필요도 없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눈사람 만들기의 고단함마저 없애버릴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작년 겨울에는 눈으로 오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눈오리 메이커의 품절 대란까지 일었다.
쉽게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유혹과, 남들이 하는 것은 따라 해보고 싶은 욕망이 합쳐져 사람들은 눈오리 메이커를 찾아 헤매며 울부짖었다. 올해는 오리 모양에서 나아가 다양한 모양의 집게가 많이 보인다. 색색의 플라스틱 생산에 대기업까지 가세해, 유명 캐릭터를 본 따 만든 집게는 품절 상태까지 이르렀다.
눈사람 메이커는 자연의 산물에 가공품으로 손을 대 일괄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현대인의 본능에 착실한 도구라고 볼 수 있겠다. 모든 것을 똑같이 하고 싶은 심정. 그 속엔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면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자동차들, 그리고 그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눈 모양의 오리들이 줄지어 꽥꽥거리는 것만 같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언제쯤 눈사람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잠든 사이 몰래 내려 얼마 쌓이지 않은 눈을 아쉽게 쓸어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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