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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Mar 09. 2019

옷을 뒤집어 입었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든든함은 그렇게, 허무의 옷을 입고 오더군요.




| 겉모습이 쬐~끔 바뀌었어요. 알아보겠죠?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머리를 감고 말려 정리한다. 고데기로 앞머리를 살짝 돌리는데, 아차. 5도 정도 더 돌아버렸다. 돌아버리겠다. 너무 어색하다. 이리저리 만져보지만 고데기의 성능 덕분인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려면 다시 머리를 감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계를 본다. 아침이면 참으로 우직하게 한발, 한발, 지각을 향해가는 시계다.

    별 수 없이 집을 나선다. 지나는 모든 사람이 5도 꺾인 내 앞머리를 보는 것 같다. 사무실에 들어서며 던지는 좋은 아침이란 인사가 여느 때와 다르게 힘이 없다. 평소보다 고개를 5도 더 떨군 채 자리에 앉는데,  떨군 고개가 쉽사리 올라오지 않는다.


     오늘의 거무티티한 옷이 어제의 검정 옷으로 느껴질까 의식적으로 밝은 옷을 골라 입는다. 엊그제 입었던 밝은 옷을 누군가 알아볼까 또 다른 밝은 옷을 찾다 보니, 며칠 지나면 입을 게 마땅찮다. 작년에 입었던 옷이 신선해 보이지 않아 새로 산 옷들도, 매일 봐서 그런지 금방 식상하다. 혹시나 그 식상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느껴질까, 옷을 또 늘려간다. 취향과 재력이 변한 게 아니어서 그렇게 사놓으면 그 옷이 그 옷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오래된 옷을 등한시해야 한다. 디테일이 다르다며, 느낌적인 느낌이 다르다며.

    과연 남들도 그 느낌과 디테일을 알까 의문이 들지만 믿음을 가지기로 한다.


| 완벽한 하루 후, 옷을 뒤집어 입은 것을 알았다.


    꽉 찬 느낌으로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회의는 알찼고 일은 순조로웠으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저녁, 옷을 뒤집어 입은 걸 알았다.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발표까지 했는데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 나조차도 뒤집어 벗어던진 옷이 바닥에서 '외모'를 과시하는 보고서야 알았다. 아무래도 평소 나의 패션 감각 탓에 사람들은 으레 옷의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애초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은 옷일지도 모른다. 조심스레 뒤집어 본다.

    "까꿍~" 

    깜짝이야. 실밥이 그 긴 손을 뻗어 나를 놀래킨다. 너무 잘 보인다. 목의 마감도 도드라져 보이고 난생처음 바깥구경을 했을 안쪽의 로고도 눈에 거슬린다.

    잠깐.

    바깥구경이 과연 처음이었을까? 마주한 로고가 슬며시 비웃는 것 같다.


    언젠가 들어본 유명한 심리 실험을 당한 기분이다. 누구나 부끄러워할만한 옷을 입고 많은 사람 앞에 섰지만 극히 소수만이 알아봤다는 실험. 지나치게 의식한 자신만이 대다수가 눈여겨봤을 거라고 착각한다는 '조명 효과'를 반대의 경우로 증명한 느낌이랄까. 

    본의 아닌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온종일 실밥을 나풀거리다 뒤늦게 알고도 걱정되거나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 자신이 의식할 때만 비치는 조명이 있긴 한가보다. 머리카락이 5도만 꺾여도 신경 쓰던 사람이 옷을 180도 뒤집어 입고도 괜찮다니. 어디쯤에 스위치가 있는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사람들 진짜 관심 없다. 이 나풀거림을 몰라보다니. 내 얼굴이 너무 밝아서 그런가? 어디서 이런 옷이 팔기라도 하는 건가? 뭐. 괜찮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수고로움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진 않을 테다. 그러기엔 너무 먼 길을 와버렸다. 그리고 아무래도 깔끔한 것이 낫다.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뭐랄까. 이게 좀 생각보다 허탈하긴 하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뭔지 모를 서운함도 삐쭉거리며 나를 찔러대고.


| 이렇게 된 거, 그냥 가 보는 거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스티브 잡스와 저크버그마저도 엄지척 했을 듯한 그날.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전날도 그랬고 전전날도 그랬겠지만, 결정적 증거 앞에서 심히 허무했고 약간 서운했다. 지나간 노력들은 어쩔 수 없었고, 스스로도 동조했던 만인의 무관심을 서운해하는 건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큰 고민 없이 그냥 마음에 품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비수가 되어 꽂힐  알았던 허탈함과 서운함이 마지막까지 나를 지켜줄 든든한 무기가 돼버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머리를 감고 말려 정리한다. 고데기로 앞머리를 살짝 돌리는데, 아차. 오늘은 6도 정도 더 돌아 버렸다. 여전히 돌아버리겠다. 너무 어색하다. 하지만 그냥 집을 나선다. 신경 쓰이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이 정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 믿으며. 혹시 누가 알아봐도 상관없다 되뇐다.

    딸깍. 환하게 비치던 머리 위 조명이 꺼진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사무실에 들어서며 애써 담담하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입니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어 꼿꼿하게 세운다.  

    왠지 승리한 듯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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