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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Oct 21. 2019

시간에 숙성된 물건들이 건네는 위로.

괜찮아. 인마.

처음도 아니면서. 아마추어 같이...


    미루고 미루던 창고 정리를 시작했다.

    쌓이고 쌓였던 것들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리곤 어쩌지 못할 우주와 마주했다.



| 울적함을 버리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속이 답답한 날, 창고 문을 열었다.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단단한 각오로. 활짝.

 어? 이게 아닌데...

 아주 깔끔히 정리해버리겠다는 "의지"가 "어쩌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두 평 남짓한 창고 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바닥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책들과 벽을 가득 채운 얼핏 기억나는 물건들. 이제는 무엇이 들었는지도 가물거리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절묘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대책을 강구하려던 시도는 '이건 정말이지 소우주야!'라는 놀람과 확신을 가지는데 그쳤고 그냥 모두 끄집어내기로 했다. '다 버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우선 상자 하나.

 오래된 사진, 지금은 쓰지 않는 휴대전화 충전기, 더 이상 노래를 넣거나 뺄 수 없어  읽기 전용 CD화가 된 PMP, 나름 Hot했던 십수 년 전 슬라이드 휴대전화까지. 뭐 이런 거까지 지고 살아왔나 싶은 것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연락도 하지 않을 명함은 왜 그리 많이 모았는지. 상자 하나에만 잡스러운 물건들이 많이도 담겨 있었다. 그렇게 상자 하나, 또 하나.


| 물건에 깃든 옛이야기


 정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상자를 하나씩 열고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만져 보고는 다시 상자에 넣었을 뿐이니까. 그렇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버리지 못했다. 하....

 사정은 이랬다. '쓸모도 없는 거, 버리자'라는 생각으로 오래된 슬라이드 휴대전화를 손에 쥔 순간, 옛 기억이 떠올라 버린 거다. 이리저리 벗겨지고 색 바랜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니 아내와의 연애시절이 두 평 남짓한 상영관에 자동 재생됐다. 진즉에 남이 될 수 있었던 사건부터 어려서 할 수 있었던 무모한 행동과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둘만의 소소한 다툼과 즐거움의 서스펜스. 참 괜찮은 영화가 그 자리에서 선명하게 재생됐다. 요즘 휴대전화의 몇 천분의 일밖에 되지 않을 속도와 저장용량에도 꽤 괜찮은 화질과 긴 플레이 타임을 소화하면서.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된 영화는 재미있었고 나는 할 일도 잊고 손만 대면 자동 재생되는 다음 영화, 또 다음 영화를 관람했다. 별 의미 없었던 명함에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들의 얼굴과 당시의 장면이 셀로판지를 통해 보는 것처럼 떠올랐다. (여기서 셀로판지는 실제와는 조금 다르게. 조금 더 예쁘게 보이는 그런 셀로판지다)

 그래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쓸모없는 물건이 용도를 달리해서 거기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하필 자동 상영 영화와 예쁜 셀로판지라니... 결국. 끝장을 보려던 것이 끝까지 보는 걸로 종결돼버렸다.


 쓸모와 효용을 얘기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봐야겠다. 공간만 차지하고 사용하지도 않는데 언제 다시 꺼내볼지 기약도 없이 남겨둔다는 건. 확실히 미련에 의한 감정적인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 그런 게 있었음을 아는 자체가 나를 따습게 했다. 힘들 때 들었던 음악이 담겨 있는 고물 PMP와 빛이 바랜 스티커 사진에서,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었던 격려와 위로를 받았으니까. '아. 그때도 그랬었지'. '이때는 더 힘들었지'. '이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 '금방 괜찮아질 걸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내게 있어, 이건 마치 2박 3일의 짧은 여행과 같은 느낌이었다. 무리해서 다녀온 짧은 여행으로 잔고는 쪼그라들고 피곤은 쌓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미지의 활력을 얻은 것 같달까. 시간 여행을 위한 좀 번잡스러운 티켓. 그래. 그런 거라고 명찰을 달아 주니 좀 그럴싸하다.


| 오늘도 언젠가


 오늘의 이 복잡한 심정과 주변 상황들도 아마 이곳저곳 스며들고 아로새겨지고 있을 거다. 벗어나고 싶고 빨리 잊고 싶은 순간들도 조금은 예쁜 셀로판지에 덧입혀져 어느 곳에 남겨질 테고.

 10년이 넘도록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버리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어쩌지 못하는 지금의 감정 대신 묵은 감정이라도 버려버리겠다며 창고 문을 열었을 때, 아마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다. 무엇하나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음을. 그 많은 기억과 감정의 집합체가 내뿜는 아우라에 우주의 느낌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의 존재감으로 내 삶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였을 테니까.


 쓸모없는 물건을 정리해야겠다며 열어젖힌 건. 우주가 맞았다. 어설픈 인생 전반을 담고 있는 조금은 아팠지만 아주 애틋하고 소중한 우주. 작동도 하지 않고 어디 내놓기도 거시기한, 분명 무쓸모의 물건들임에도 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들을 숱한 기억의 조각들로 보았기 때문일 테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래서 어느 정돈 자신의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애물단지로서 말이다.


 나도 모르던 새 조금씩 차올라 나를 괴롭히던 고민과 어쩌지 못하는 감정을 작은 물건들에 조금씩 담아 본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 조금. 그리던 그림에 조금. 쓰고 있는 글에 조금. 속상함에 아내와 들이키는 맥주잔에 조금씩. 너무 날카로워 아프게 했던 조각들이 예쁜 물방울 모양이 되어 창고의 한 켠에 들어앉은 것처럼,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랬었지..'로 창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을 거라 믿으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면서. 그렇게 또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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