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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Apr 25. 2019

암 판정받은 장인어른은 걱정되지 않습니다만

아버님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가.





놀랐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자연스러운 생각이었다.



 얼마 전, 장인어른이 암 판정을 받았다. 대장암 4기.

 갑작스러운 소식이 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박아 버렸다. 그 자리에 날 꽂느라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머리는 멍했고 놀란 심장은 방망이질에 터져 나갈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나 봐왔던 상황을 맞이하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놀란 마음에도 아버님이 걱정되지 않았다. 나로서도 참 뜻밖의 느낌이었다. 대장암. 거기다 4기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뭐랄까. 아버님에겐 별 거 아닌 일일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 아버님,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아버님은 항상 일관된 모습이셨다. 강인함. 단호함. 부지런함. 미남. 이런 수식들이 잘 어울리는 분. 허허 웃으시는 모습이 온화하고 멋있지만 황소고집 저리 가라 할 만큼 단호했고 말과 동시에 행동하셨다. 그대로 드라마가 될 법한 젊은 시절의 이야기와 그것을 증명하는 듯한 지금의 모습 때문인지 신기하리만큼 걱정보단 잘 이겨내실 거라는 확신 같은 걸 하게 됐다.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님과의 전화통화는 그런 걱정마저 날려버렸다. 다른 식구들과의 통화와는 다른 담담한 대화였고, 언제나처럼 바삐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해줘서 고맙네. 나중에 또 얘기하자고.". "네, 아버님 몸 잘 챙기시...." 툭. "......." 역시. 그 확신은 괜한 것이 아니었으....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님에겐 그런 것이 꽤나 나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강인하고 뭐든 해내는 분. 문제가 생기면 걱정보단 행동하는 분. 그런 모습이 아버님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낸 듯하다. 실제로 병원에서도 아버님만 평소와 같으셨다고 한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병원에서의 요구나 처분에 그대로 따르기만 했는데 아버님만은 달랐다. 병원 사람들의 이해되지 않는 설명과 요구(이를테면 조금 전 대장내시경으로 나올 것이 없는데 채변을 해야 한다는 말 같은)에 노발대발 역정을 내셨고, 아직 살만한 나는 고통을 하소연하는 중환자들과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속히 병실로 옮겨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시기도 했단다. 언뜻 생각하면 가장 두렵고 상심이 크실 당신이 가장 냉정하게 상황을 이끄신 거다. 그래. 그래야 아버님이지.


 진짜 속 마음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불안과 속상함이야 오죽했을까 말이다. 아무리 강인한 아버님이라도 암과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들을 생각하며 많이 힘드셨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냥, 별 수 없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판정을 받은 후 지체 없이 명의를 이전하고 이런저런 대비를 하셨다. 아버님 살아오신 방식대로. 걱정하거나 희망에 젖기보단 혹시 있을지 모를 일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셨다. 마치 슬픔과 좌절은 아버님 것이 아닌냥 혹은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식으로,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수술 전까지 그냥 할 일을 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찌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까.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버님이 웃는 얼굴로 맞으신다. 이리저리 달고 있는 링거와 통들보다 얼굴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버님이 잘 생기시긴 했나 보다. 그리고 전 보다 얼굴이 더 훤해지셨다. 한 동안 실내에만 계셔서 그런지 항상 그을려있던 얼굴이 밝아졌다. 살이 조금 빠지면서 얼굴 윤곽이 또렷이 드러나니 색이 바래버린 머리카락과 지금 딱 보기 좋은 주름만 빼면, 사진 속 젊은 아버님이다. 참. 대단한 미남이시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도 잘생김을 뽐내고 계시다니.


 뵙고 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아버님은 잘 이겨내실 거다. 이제 정말 걱정되지 않는다. 항암 치료도 물론 잘 받으실 거고 누구보다 알아서 잘하실 거다. 부디 몸의 부침이 지금의 굳센 마음을 너무 괴롭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머진 잘 될 거다.


| 저도 아버님 같을 수 있을까요?


 돌아 나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버님 같을 수 있을까? 이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을 주고 주변을 다잡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지'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타인에 대한 믿음도 이렇게 확고한데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걸 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 믿을만한 구석이 없긴 한가 보다.


생각해보면,
무엇하나 꺼릴 것 없다는 듯한 아버님의 모습은
'후회 없음'이었다.


 아버님은 수술 후에도 후회나 기대 대신 생각했고 행동했다. 삶을 부정하거나 아쉬워하지도 고 그냥 묵묵히 나아갔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런 아버님의 모습을 종종 곱씹다 보면,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는 것은 믿을만한 구석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기대와 후회로 가득 차 서임을 알게 된다. "할 수 있었는데"와 "할 거야"로 점철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 생긴 후회와 기대. 그런 지난 후회와 막연한 기대에 뒤덮여 제 앞가림도 벅찬 나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미덥지 못함 덕분에 확신이 하나 생겼다. 만약 아버님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비록 중심을 잡진 못해도 주변 사람이 울 여유가 없게 만들 순 있을 것 같다. 사람 잡고 울고, 저 사람 잡고 하소연하고, 다독임도 많이 요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더 서럽고 크게 울면 정도껏 울던 아이가 뭔가 싶어 그치는 것처럼. 딱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쉽게도 지금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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