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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Mar 22. 2019

이제 곧 줄타기를 시작해요. 마흔 줄.

너무 위험하진 않겠죠?




    '마흔 줄이라는 위험해 보이는 줄 앞에 섰다. 

      내년이면 이 줄을 타야 한다. 아.....'


줄타기가 시작됐다.


    새해가 되면서 마음이 무겁고 조급해졌다. 몸은  나이에 장단을 맞추며 얼씨구나 늙어가는데, '뭔가' 이렇다 할 '뭔가'가 없다. 하~. 그게 뭔지도, 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니 글 조차도 애매모호하다. 그냥 막연하게 '이 나이면 ~~ 해야 하는데~' 하는 오만 오천 가지 생각만 있을 뿐이다.


    30대 말이다. 39. 내년이면 40이다. 말 그대로 마흔 줄에 대기하고 있다. 누가 이런 줄을 만들어서는. 쩝. 

    뭔가 심란한 것이 저 아래, 배 아리가 뒤틀린다. 아찔한 줄타기를 하는 것 마냥 불안하고 초조하다. 공자 할배 말론 40이면  인생에 애매한 것이 없고 흔들림 없을 때라고 하는데, 난 아직도 나부끼고 있다. 갈대도 이런 갈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끔 불혹의 나이가 아니라, 불안의 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 좋은 말과 글을 남긴 그들이 밉다. 어떤 땐 강하면 부러진다며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누으라더니 또 어떤 땐 흔들리지 말란다. 그 말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괜히 심통이 나, 딴지를 건다. 어떻게 살라고욧?!

    다시 생각하니 불안의 나이도 아닌 불만의 나이인 것 같기도 하고...


| 2살 벌었다.


    얼마 전 미루고 미루다 치과 진료를 받으러 갔다. 때웠던 것이 떨어지고 깨져 날카로워진 이도 있었고 수년 전 신경치료까지 끝낸 이 주변의 잇몸이 부어올라서다. '아. 이제 이도 다 됐구나' 하는 자조 섞인 생각을 하며 치료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을 감추고 의자에 앉았다.


    요즘 시스템은 참 잘 돼 있다. 모든 정보가 모니터에 다 나온다. 예약 내역, 진료 내역, X-ray 사진 그리고 환자 정보. 응? 나이 37세. 37세? 나이를 발견하고 사뭇 놀랐다. 혹시 다른데 앉았나? 이름도 맞고 X-Ray 사진에 보이는 수많은 보형물들도 내가 맞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래서 신원 파악을 위해 치과기록을 찾나 보다. 딱 내 이다.


    만 37세.

    맞다. 한국은 나면서 한 살 먹이지. 사실, 나는 453개월 된 남자아이, 아니, 남자였던 거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2살 번 느낌이다. 아. 선조들이 이런 효과를 위해 일부러 +1을 하고 년수로만 세셨나? 진짜 40이 되려면 적어도 2년 반은 더 있어야 하다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 같았다. 바뀐 것은 없는데 괜히 몸에 활력이 조금 생겼고 이도 아직은 쓸만해 보였다.


    사람 참 간사하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도 정도껏이지, 이렇게 마음 바꿔먹기도 잘한다. 방금 혼나고도 사탕이라도 주면 금방 배시시 웃고 마는 아이처럼, 사뭇 진지하게 고민하던 태도가 다시 가벼워졌다. 보여줄 수 없어 다행이지만, 동안과 젊은 옷차림에 어울리는 가벼움을 다시 찾았다. :)


| 인식의 차이.


    초점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같은 상황에서 어느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심리적 오류다. 새 자동차를 생각할 때, 새 차의 설익은 냄새와 잘 빠진 디자인, 차를 타고 멋진 장소를 여행하는 생각에 사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가도 갚아야 할 할부금 상환 계획, 교통 정체, 사고위험 등을 생각하면 주춤하게 된다는 거다.


    실제로 모든 건 상대적이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말 좀 들었으면' 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책 좀 읽지' 한다. 형제끼리 싸우면 '사이좋게 좀 지내지' 한다. 그러다 누구 하나 아프기라도 하면 '아프지만 마라'로 마음이 바뀐다. 누구나 그렇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갈대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생각만 바꾸면 된다는 그 어려운 것을 기준을 바꿔, 그 오류를 내게 주입시켜 버렸다. 만 나이에 초점을 맞춰버리면서.


| 정신승리


    만 나이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이가 드니 불안한 마음을 만 나이라는 좋은 핑계로 유리한 쪽으로 생각해 버린 거다. 만 나이로 나이를 생각한다고 물리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지만 그 조급했던 마음만은 한 결 편해졌다.


    기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기준을 자신에게 조금 유리하게 설정해보자는 거다. 나이는 만으로만 생각하고 불뚝한 내 배는 옆의 부장님 배와 비교하면 된다. 현실에 만족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생각하자는 거다. 그리고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가끔 지나치게 자괴감에 빠지지만 자기 위안과 만족, 합리화에도 능한 것이 우리다. 그러니 가끔은 의도적으로 정신승리를 이끄는 거다.

    "나야! 나를 따르라!"


    가만히 진짜 내 나이를 생각해본다. 숨 쉰 기간 37년. 

    그렇다면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기간은? 개인적으로 그나마 진지하게 살아온 것이 대학 졸업 후니까..... 음... 이제 열 살 정도 된 것 같다. 열 살. 와. 이제 열 짤인 거다. 하하. 마음이 한 결 더 가벼워진다.


    이 파는 소리에, 깍지 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어른 체면에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조금 티가 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겨우 열 살이니까. 열 살은 뭐든 무서워해도 되는 나이니까. 그러면서도 뭐든 두려움 없이 해나갈 수 있는 나이니까. 

    그러함에 오늘도 아이처럼 용감하게 살아 보련다. 초조해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그래도 선생님, 

    안 아프게 해 주세효..."

    악!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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