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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햔햔 Jan 13. 2020

티끌 모아 티끌을 만들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리브라'라는 티끌을 모으기 시작했다.



| 새로운 화폐의 등장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를 세상에 소개했다. Stable Coin, 그러니까 주요 자산들과의 연동으로 시세변동이 크지 않을, 진짜 화폐로서의 역할을 할 돈이라고 했다. 시장의 반응은 상당했다. 비트코인을 대체하는 대항마가 나타났다는 얘기부터 비트코인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일각에선 우려가 또 일각에선 기대가 일고 있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기사를 보던 나는 당연히 금세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 선배가 카톡을 통해 링크를 하나 보냈다. UPLibra 사이트 링크. 이 링크를 통해 리브라를 무료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리브라는 여느 화폐와 같이 채굴을 통한 보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부 자산을 전환해야 하는데, 이 사이트에서 2020년 정식 론칭에 대비한 모객활동으로 일정 리브라를 세상에 뿌리고 있었다. 시간마다 Claim 하면 확률에 따라 일정 리브라를 지급하는, 다소 도박적인 방식으로 최대 20 libra까지 지급하고 있었다. (*주의 : 해당 사이트는 페이스북과 관련이 없으며 차후 리브라 거래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합니다. 리브라가 정식 론칭이 되면 개인이 쌓은 금액을 지급한다는데 믿을 순 없습니다. 꼭 인지 해주세요.)


리브라 보상 정보


| 티끌 모아 티끌의 시작


그날부터 바로가기를 생성해두고 Claim 하고 있다. 생각날 때, 스마트폰을 열 때마다 Claim 한다. 처음 가입할 때 받은 3리브라를 제하고 지금껏 Claim을 통해 모은 것이 17리브라 정도다. 한 달 정도 되었으니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획득 확률을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70%의 확률로 지급받는다고 하면 평균 0.01 리브라 정도를 받게 된다. 거기다 Claim 도 한 시간 간격으로 가능하니 1리브라가 대략 1달러의 가치를 가진다고 하면 한 번 Claim 해서 10원 정도 버는 거다. 한 시간에 10원.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티끌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빌 게이츠는 허리를 잠시 굽혀 바닥에 떨어진 100달러를 줍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하는데 나는 그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고 10원(0.01달러)을 적립하고 있다. 아. 별 뜻 없이 떠오른 생각인데, 이거. 조금 그렇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건, 이게 도박의 형식을 띄고 있어서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에 기대하면서 또 누르게 된다. 0.5% 확률로 1리브라 이상을 지급받게 되면 별 것도 아닌 것이 되게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꾸준함에 대한 보상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티끌 모아 티끌이다. 누를 때마다 큰 금액을 기대하고, 티끌을 부여받으면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래서 영악한 사이에선 꾸준한 Claimer에게 50번째 Claim 마다 Royal Bonus라고 하는 추가 보상을 지급한다. 자그마치 5리브라. 그간 Claim을 통해 받았던 액수의 수십 배에 달하는 보상액을 일시에 지급하는 거다.


250번쯤 Claim 한 결과


이 Royal Bonus를 통해 시간당 지급액은 0.01리브라에서 0.11리브라로 10배 정도 상승한다. 그러니까 50번을 채우면, 시급이 10원에서 110원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꾸준함에 대한 보상이 계단식으로 이뤄지는 거다.



| 꾸준함에 대하여


엉뚱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이 행위에 다른 의미를 심게 됐다. 티끌 모아 조금 많은 티끌을 모았지만 이를 통해 배운 것은 훨씬 값진 것이었기에.


뭐든 하다 보면 쌓인다


얼마 되지 않는 리브라를 Claim해 가며 깨달은 것은 하다 보니 쌓인다는 거다. 우리가 일상에서 미약하게 행하고 있는 것도 조금씩 쌓이고 커진다는 걸 이 사소한 행위로 눈치챘다. 꾸준히 하는 무언가가 아무리 미약해도 쌓인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마음에 여유가 들어앉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티끌 같은 작은 결과들이 모여 이 모양 이 꼴. 아니. 완성(?)되고 있었던 거다. 비록 리브라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뿐.


그간 브런치에 쓴 글과 조금씩 사모은 펀드를 들여다보면 억측 같았던 생각들이 현실감 있게 눈에 보인다. 글의 질과 펀드의 수익률도 대단히 만족스러우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일 테고. 아무튼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 있었다는 거고 미약함에 미약함이 보태져 조금 덜 미약해지고 있다는 거다. 보잘것없지만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려고 했던 노력과 훗날의 은행이자보다 나은 수익률을 위한 노력이 그렇게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꾸준함은 어느 한 시점에 높은 성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해 줬다는 점이다. 임계점. 어느 한 시점에서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해 줬다. 마치 99도까지 고요했던 물이 100도를 넘어서며 미친 듯 끓는 것처럼, 이 꾸준함 뒤에 언젠간 리브라의 Royal Bonus 같은 상대적으로 큰 만족을 얻는 시기가 올 것이란 믿음 말이다.


오늘도 눈에 띌 때마다 Claim 버튼을 누른다. 0.007 리브라. 티끌이 쌓인다.

이왕 시작한 거, 티끌모아 티끌 뭉치라도 만들어 볼 요량이다.

미약함에 미약함을 꾸준히 쌓아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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