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엄마는 떠났다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을 위해 전을 부치고 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엄마의 생일상을 차려도 모자랄 판에 제사상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사실 엄마가 아픈 후에야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 엄마가 건강했다면 아마 생일상을 차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생일 상을 안 차리는 것과 못 차리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못 차린다 생각하니 아쉽고 서러웠다.
엄마는 내가 산 케이크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같은 가게에서 사도 둘째가 사 온 것보다 내가 사 온 케이크가 더 입에 맞다고 했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의 생일 케이크 담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담당이 돼버리고 말았다.
가지 말까?
빅토리아폴스에서 마주친 한국인여행자가 남아공에서 강도를 만났다 했을 때 가지 말 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기에 조심해야겠다는 각오는 했지만 칼로 위협을 당했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무서웠다. 하지만 이미 케이프타운행 비행기표도 샀고 렌터카 비용도 전액 지불한 터라 안 가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무엇보다 다음 행선지인 나미비아를 가기 위해서는 남아공에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남아공을 안 가면 나미비아도 못 가게 된다.
우버를 타고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기사님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길로 가는 건 아닌지 창밖을 유심히 지켜보는데 그에게는 우리가 테이블마운틴을 보는 것 보였나 보다.
“오늘부터 열흘 동안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 돼. 그래도 걸어 올라가면 되니깐 걱정 마.”
남아공은 궁합이 더럽게 안 맞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랑탕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등산은 우리 취향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꼈기에 또다시 산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랜드마크를 건너뛰자니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가지 말 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나라라 관광지를 안 가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가는 것과 못 가는 것의 차이는 극명했다.
위험한 요소를 줄이고자 나름 세밀하게 계획을 짰는데 모든 게 소용없게 되었자 되는대로 다니기로 했다.
희망봉과 볼더스 비치를 구경한 후 스텔렌보스로 이동했다. 나는 운전을 하고, 둘째는 숙소를 찾고, 셋째는 내비게이션을 봤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기에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할 자신이 없었는데, 이럴 땐 우리가 셋이라는 게 참 고마웠다.
와이너리로 유명한 스텔렌보스는 아늑했다.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아 그곳에서 이틀을 더 머물기로 했다. 테이블 마운틴을 가지 못한 게 다행일 만큼 그곳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