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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l 02. 2023

마음의 한복판에서

최다혜, <우월하다는 착각>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에 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전시회가 열리기 전부터 설레며 기다려본 건 처음인데 동행인과 날짜를 맞추려니 어쩔 수 없다. 지금 작업 중인 일만 끝난다면 혼자라도 먼저 다녀와야지. 넉넉히 날짜가 남아 있지만 전시회를 생각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를 기다리며 설레는 일 자체가 아주 오랜만이라, 이런 설렘을 한껏 누려보는 것도, 이 설렘의 연소를 최대한 지연시켜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전시회 소식을 알게 된 몇 개월 전부터 책상에는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이 놓여 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하지만 굳이 일으켜 세우고 싶진 않을 때 이 책을 펼쳐 든다. 이제 그런 날을 위한 책이 한 권 더 놓여 있다.





<빈방의 빛>으로 들어가는 글, ‘익숙하지만 소원한’은 이렇게 시작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나 자신의 과거에서 온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1940년대,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세상을 호퍼의 그림 속에서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당시 나를 둘러싼 어른들의 세상이 호퍼의 그림에서 번성하는 세상만큼 내게 소원하게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호퍼의 그림은 그즈음 내가 본 것들과 혼란스러울 정도로 얽혀 있다. 사람들의 옷과 집, 거리와 상점 입구 등 모두 같은 모습이다. 어린 시절 내가 본 세상은 내가 알던 동네 밖에 있던, 부모님의 자동차 뒷좌석에서 본 세상이다. 지나가면서 엿본 세상이었고, 그 세상은 정지해 있었다. 나름의 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언제 그 옆을 지나가는지 알지 못했고, 개의치도 않았다. 호퍼의 그림 속 세상처럼 그 세상은 나의 시선을 돌려주지 않았다. (p16)”


최다혜 작가의 그림 43점과 짧은 텍스트로 구성된 작품집, <우월하다는 착각>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의 과거에서 온 장면처럼 느껴진다”고. 다만 그 장면들은, 나를 빗겨간 세상에서 왔다기보다 내 마음의 한복판에서 온 것 같다고 말이다.


그녀의 그림을 볼 때 자연스레 떠올리는 이야기들은 “향수에 젖은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것들이다. 창작의 여정에서 나왔을 법한 그림들이 내 삶의 여정 곳곳에 놓여 있던 장면들과 크게 겹치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림들 속 감정들 만큼은 내게 익숙했다.


마크 스트랜드는, 그림을 볼 때 감상의 일부로서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는 일이 “그림에 빠져들게 하지만,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요소이기도 하"며, "호퍼의 작품에서는 이 두개의 상반된 명령어-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는-가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 긴장감은 끊임없이 계속된다(p16)”고 했다.

그의 감상들을 읽다 보면 각각의 그림마다 우리를 빠져들게 하고 저지하는 것,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는 요소들은 다른 듯하다. 어떤 그림은 공간의 구조로, 어떤 그림은 대비되는 대상들로 그런 효과를 이뤄낸다. 혹은 이야기 자체가 지닌 속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녀의 그림들도 나를 ‘나아가게 하는 동시에 머무르게’ 하곤 했는데, 마음의 이런 상반되는 움직임에 나는 안도했다. 그림이 떠올리는 이야기들에 빠져들게 되지만, 관객이라는 위치성이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감정을 거리를 두고 살펴보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감정들, 하지만 꺼내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고 아픈 감정들을 나는 마치 관객처럼 마주하곤 했다. 감정의 태반은 내가 고이 묻어놨다기보다는 함부로 꾸겨서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저 구석에 던져버렸던 것이었다.


나를 안도하게 하는 거리감, 하지만 거의 모든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도 다음 그림으로 계속 넘어갈 수 있었던 건, 그저 그 그림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위로받아서였다. 내가 느낀 감정은 이런 것이었구나, 나만 느낀 감정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살피려 하지 않았던 감정의 낱낱에 부끄럽다가도 외로움이 가시곤 했다.


“전시를 할 때면
내 그림 앞에 서 있는 관람객의 뒷모습을 본다.
당신은 내 그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p52)”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작가님, 나는 나를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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