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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01. 2024

24. 변화에 맞춰 삶의 패턴을 재구성해야 할 때

건축철학자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이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이것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 영원의 방식


사진: Unsplash의Dániel Barczikay


삶의 조건은 변한다. 삶을 보존시키며 일상을 조화롭게 일구는 요소들도 삶의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일, 관계, 몸, 시간의 지배를 받는 모든 추상적이며 물리적인 공간. 당장 오늘 내가 아늑함을 느끼는 카페의 자리 또한 몇 주 전과 달라졌다.


변화의 징후는 없지 않았다. 다만 알아차리는 타이밍의 문제같달까. 난데없이 들이닥쳐 사람의 얼을 빼놓는 변화일지라도 돌이켜 보면 조짐은 있었다. 그럴 때면 정신 추스를 새 없이 허겁지겁 수습에 나서는데, 모든 뒤처리가 성공적이지 않을지라도 가슴 쓸어내리며 감사로 매듭짓곤 한다. 변화에 맞춰 삶의 패턴들을 원활하게 재구성하기, 그게 성공적 뒷수습의 핵심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아마도 이 책의 영향인 것 같다.


2023년 11월 4일 흙의 날. 활짝 열린 문 바깥으로 도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나는 앉아 있다. 카페는 층고가 높다. 벽의 상단부마다 대형 액자들이 걸려 있다. 그 아래 폭이 꽤 넓은 출입구가 있다. 폴딩도어는 완전히 접혔다. 그로 인해 검은색 철제 도어프레임에 갇힌 바깥 광경이 흡사 거대한 액자 속 풍경화 같기도 하다. 그래피티가 그려진 건물 외벽, 에어컨 실외기들, 그 앞 도로변에 자동차들이 평행주차되어 있는, 평범하고 삭막한 뒷골목 풍경이다. 하지만 이 풍경화의 상단에 가로수 가지들이 마치 차양처럼 드리워져 계절마다 그림에 푸르고 붉은 생기를 덧칠한다. 간혹 좁은 길을 지나가는 자동차와 점심께 음료를 테이크아웃하는 인근 직원들이 아니라면, 혹은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 아니라면, 눈앞 광경은 그림처럼 고요할 뿐이다. 전날과 달라진 점은 도로에서 나뒹구는 마른 이파리들 몇 개가 카페 바닥까지 굴러들어왔다는 것이다.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피부암 진단을 받은 뒤로 나는 웬만해선 선택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낸다. 예를 들면 이런 곳. 카페 중심부, 카운터와 가까운 자리. 주문하는 이들과 음료 만드는 소리가 파도처럼 떠밀려왔다 사라진다. 소란스럽지만 마음은 편하다. 창가가 아니라서 햇빛이 내게로 쏟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을 등지고 바깥 환한 곳을 여전히 향해 있다. 비록 실내 한켠 움푹 들어간 다소 좁고 어둑한 공간에 들어앉아 있으나, 시야 가득 시원스레 펼쳐진 공간의 구조와 형태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내게 새롭게 발생한 내적 힘(욕구)들의 충돌이 자연스레 해소되는 자리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곳, 더는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없으나 어느 정도는 시야가 트인 곳. 내 시선을 자유롭게 하나 동시에 어느 정도는 나를 은폐할 수 있는 곳. 달라진 공간에서도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어떤 방해 없이 자유로이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아늑함을 느끼는 조건은 달라졌으나, 내적 충돌은 다시금 해소되었고, 나는 편안함을 되찾았다. 일상의 한부분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 또한 '살아 있는 공간'의 힘 아닐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보게 되었다. 이 책 덕분이다.


공간의 생명력은 어떤 특성들이 부여하는가. 그곳에 머무는 이들을 내적 충돌로부터 자유하게 하고 활력 혹은 안식을 얻게 하려면 어떻게 공간을 건축해야 하는가. 마치 자연의 일부인 양 오래 보존되는 공간의 조건과 요소들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탐구한 책을 읽고 있다.


‘건축’철학서이지만 (건축)철학서로도 읽게 되는 책이다.


#크리스토퍼알렉산더 #영원의건축 #건축철학에세이 #건축 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듯한 #패턴  


마음이 유난히 편안해지는 공간들이 있다. 동일한 기능을 지닌 건축물, 혹은 인구/경제 규모가 비슷한 마을/도시라 할지라도 유독 어떤 곳은 아름답거나 아늑하게 느껴지며, 살아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공간을 그렇게 만드는 구성 요소들, 그 요소 간의 관계이자 규칙을 모두 일컬어 저자는 '패턴'이라 명명한다. 이 패턴이 기능적이고 형태적으로 완전해야 공간은 생명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공간들이 공통으로 지닌 ‘무명의 특성들’과 이 특성들을 잘 구현해내는 ‘패턴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장마다 변주/반복/심화된다.


생소한 분야였던 건축철학,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 수년 전 나는 이 이중장벽을 넘어서지 못해 책을 읽다 덮었다. 그때는 지나치게 관념적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구체적인 예시들이 많아 의외로 가독성이 좋았다.


가령, 저자는 창가가 있는 공간 패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인간에게는 '향광성'이 있어서 빛이 드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2) 어떤 공간에 오래 머물러야 할 때 편안하게 앉고자 한다. 따라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마음에 드는 의자를 가까이 놓고 거기 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내면에서 생긴 두 가지 힘의 충돌을 해소할 수 있다. 창문이 그저 벽에 뚫린 구멍에 지나지 않거나 앉아 쉴 곳이 창가와 떨어져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두 가지 힘에 이끌려 창가와 쉴 곳 사이를 갈팡질팡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 패턴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공간에 머무는 우리들에게 단지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아늑함만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난관 봉착, 갈등 발생-> 신체와 정신적 경계 상태(스트레스 상태) 돌입-> 문제 해결, 갈등 해소' 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건강한 생명체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사이클의 순환을 원활하게 반복해야 한다. 다만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공간이 내적 충돌을 일으켜 삶의 에너지를 계속 소모시킨다면, 어떤 문제에 새로 당면할 때 힘있게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감하며 읽었다. 주거 불안이 실업, 흡연, 비만보다 수명을 더 단축시키며 주거 환경이 노화를 가속시킨다는 뉴스가 문득 떠올랐다.  


읽다 보면 건축물이나 도시 같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일상, 삶, 일, 인간관계, 사람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구성하는 요소들, 요소들이 맺는 관계, 규칙으로서의 '패턴'으로 생각이 확장되는데, 이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런 면에서, 건축물이 아닌 무형의 무언가를 (재)구축하려는 이들에게도 단단한 사유의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적절한 시기에 다시 만나 좋다.


#역시인생은타이밍


“지금까지 어떤 언어도 완성된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각 언어는 환경에 맞는 어떤 구조를 구체적으로 정의한다. 그 구조가 현실에서 구현되면 그 구조 자체에서 새로운 힘이 생겨나고 그 힘은 새로운 충돌을 낳는다. 그 충돌을 해결하려면 새 패턴이 필요하고 그 패턴을 기존의 언어에 새로 추가하면 다시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 이것이 발전의 영구적인 순환 과정이다.
... 진화의 과정에서는 최종적인 평형상태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형상태에 가까운 순간적인 단계는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평형상태에 대한 추구, 찰나의 확신, 다시 부서지기 전에 멈칫하는 순간의 파도. 이것들은 항구성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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