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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28. 2016

매일의 안녕을

2016. 9. 28. 물의 날.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흐트려 놓았다.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문자는 간단했다. 

<안산에 일이 있어 어제 와서 목요일 오후에 돌아갈 거다.>

별다른 생각 없이 문자를 읽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딸내미 간식부터 바쁘게 챙겼다. 이윽고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도장에 도착하면 문자보내라고 일렀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뒤 아이에게 도착했다는 짧은 문자가 왔다. 

문자를 확인하고 문자 목록으로 넘기자 아버지의 문자가 다시 보였다. 그제야 아버지에게 답문을 보냈다. 식사 잘 챙겨드시라는, 와 계신 동안 잠자리가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바쁘실테니 저녁에 전화하겠다는, 뭐 그런 짧은 문장들. 그러고는 위 아래로 놓인 아버지와 내 문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최근 들어 아버지는 어디에서 무슨 볼일을 보시든 그걸 간단한 문자로라도 내게 알린다. 그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공사다망했고 자신의 스케쥴을 세세하게 알리지 않았다. 단지 바빠서가 아니라 원래 기질이 그런 쪽으로 무심한 편이셨다. 나 또한 비슷했다. 내가 독립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도 서로간에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생각하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드문드문 전화하는 내게 서운함 한번 표현한 적이 없으셨다. 딱 한번, 내 유학시절, 아마도 첫학기가 끝나갈 무렵, 전화비때문이라기보다는 엄청났던 과제와 시험준비에 짓눌려 있어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딸내미에게 에둘러서 당신의 걱정을 표현하신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와보니 택배가 한 상자가 와 있었다. 다양한 장아찌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 사이에 난데없는 세금계산서 한 장이 끼여 있었다. 뒷면을 보니 달랑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필체였다. <받는 즉시 전화해라.> 그제야 내가 전화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고, 어쩌면 단순한 안부가 아닌 내 생존여부가 궁금하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한 마음에 바로 전화했다. 그때조차도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어쨌든 아버지로부터의 전화독촉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아버지와 그런 나였는데...

시간이 우리를 바꿔 놓았다.  

이제 나는 안부를 자주 묻는다. 그 시작은 언제나 별일 없으시죠, 하는 물음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멀리 떠나 계실 때면 일정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신다. 이렇게.  

   

오늘 처음으로, 

아버지의 그런 문자가 마치 걱정 많은 엄마에게 시시콜콜 자신의 행방(?)을 알리는 아이의 문자와 겹쳐 보였다. 내 한손은 어린 아이가, 또 다른 손은 나이 든 아버지(를 비롯한 양가 부모님들)이 붙잡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월이 흘렀고, 그런 나이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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