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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30. 2016

길고 긴, 한 문장

2016. 9. 29. 낭의 날. 긴팔셔츠를 꺼내 입었다.

     예전에 가르쳤던 한 여자아이는 마음이 어수선해질 때면 집안의 모든 서랍 속에서 옷을 꺼내 산처럼 쌓아놓고 다시 갠다고 했다. "그냥 옷을 개는 거예요. 차곡차곡. 쌤도 해보세요. 머리가 개운해져요." 그 말에 나는 내심 놀랐는데, 옷을 개는 행위가 책상을 정리하고 방을 치우는 것과 본질상 비슷하다 해도, 여느 십대 사춘기 소녀가 택할 방법처럼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활달하고 잘 웃는 아이가 집안의 옷이란 옷을 다 개게 만들 만큼 심란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한 한편 이 아이는 벌써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했구나, 탐복했다. 아이는 그때부터 달리 보였다. 

      서랍마다 반듯하게 들어앉은 옷들. 확실히 머릿속까지 말끔해지는 모습이랄까. 혼돈이 끝나고 마음의 질서가 잡힐 법도 했다. 하지만 계절마다 철지난 옷들을 상자속에, 입어야할 옷들을 서랍속에 개어놓을 때면 나는 그저 피곤했다. 개운함은 미루고 미루던 그 일을 모두 해치운 순간에만 찾아왔다. 그건 그 아이가 맛보았던 개운함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오래 전 출산과 육아로 고군분투하던 시절, 나는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내가 빠져 있던 건 반복되는 동작이 요구되던 그림이었다. 내가 오랜만에 그 여자아이를 떠올린 것도, 말하자면 그런 류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무아지경에 빠져 잎사귀를 종이에 빼곡하게 채워넣는 동안 나는 무념무상의 순간이 베풀 수 있는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 머물렀다. 그렇다. 누군가는 옷을 개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린다. 마치 명상이나 마음수련이라도 하듯. 주부인 내게 그림보다는 옷 개기 같은 행위가 좀더 도움이 될 텐데, 그건 좀 아쉽긴 했다. 

     어쨌든 잡념을 없애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게 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배수아의 단편집 <올빼미의 없음>을 꺼내들었다.


올빼미의 없음 - 

배수아 지음/창비


    배수아의 소설은 잘 읽히지 않는다. 가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어떤 장편소설은 경이로울 정도로 읽히지 않는다. 몇페이지 못 읽고 덮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읽었던 그녀의 에세이 두권은 천편일률적인 여타 여행에세이(?)들과 차별적인,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은 내게는 배수아 입문서나 다름 없었다. 그녀의 문장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든 이 책만 펼쳐들면 나는 일상으로부터 수백수천킬로나 멀어질 수 있었다. 그 느낌이 매우 그리웠다. 



      에세이를 통해 자신감이 생긴 터라, 다시 소설에 도전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페이지가 잘 넘어갔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소설 속 화자가 늦은 밤 숙소 앞에 도달한 장면이었다. 그녀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금고를 찾고 있다. 그 속에는 방 열쇠와 숙박 안내문이 들어 있고, 그걸 찾아야 그녀는 피곤에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다. 

      길고 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문장이 시작됐다. 


      "비가 내려 부드러워진 정원의 흙은 발이 푹푹 빠졌으며, 그 위로 무거운 여행가방을 힘겹게 끌면서, 나는 과연 빌라의 외벽이란 곳이 어디일까 사방을 두리번거렸는데, 현관에 켜진 희미한 전등 이외에는 어디에도 불빛은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이 정원의 흙에 절벅거리며 스며드는 소리만이 무섭도록 크게 들려왔으며, 스무 시간에 걸친 여정을 마친 나는 비를 맞으면서 한동안 침묵한 채 서 있었는데, 이것이 내 집인가, 이것이 내 꿈인가 (...)"
                                                   (p176, 배수아의 "무종", 단편집 <올빼미의 없음> 수록작)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굉장히 집중한 채 내가 머물던 시공간에서 벗어나 쉼표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에 천천히 떠밀려 갔다. 이윽고 당도한 마침표 앞에 나는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고요해지고 차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새벽에 난데없이 잠에서 깨어 기이하게 맑은 정신으로 어둠속을 바라볼 때처럼. mind full이 아닌 mindful의 상태. 좌뇌전두엽이 활성화되는 순간. 이를테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옷을 개고 수십수백개의 잎을 그리다가 맛보게 되는 순간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이번에야말로 배수아의 소설을 완독하기로 마음 먹었다. 


       배수아 작가의 소설을 명상하듯 읽게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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