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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Sep 06. 2018

10. 대편집자 이영미

정신이 몸을 이기지 못할 때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 <미생>




  생각해 보니 이상한 일이다. 몸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 내가 어떤 녀자인가. 온통 '나'에게만 주파수가 맞춰진 인간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나를 이루는 기본값(이자 어쩌면 절대값)인 내 '몸'을 인식한 일이 드물었다. 굳이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나란 인간은 졸라맨에 가깝달까. 머리만 크게 부각시키고는, 그 외에 이런 등등의 부위가 있답니다, 성의없이 알리는 정도이다. 몸 쓰는 일을 힘들어 한다. 운동을 혐오한다. 스포츠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다. 몸과 관련해선 쉬운 것도 없고 재미있는 일도 없다. 그러니 몸의 상태에 무심했고 '유지와 보수'를 위해 노력하는 일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이었다. 신체가 정신의 그림자로서 눈에 띄지 않게 제 할일을 해줬던 것이다.

  그런 내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다. 마흔을 넘기면서 제2의 사춘기가 시작됐던 거다. 피복 속에 방치돼 있던 몸뚱이가 차근차근 단계들을 밟고 있었고, 주인도 모르는 새 문턱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변화가 기습공격처럼 느껴졌다.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음을 머리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억울해했다. 이 노화의 과정을 나는 피해갈 거라는 망상에 빠져본 적도 없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만, 아주 늦게, 정중한 예고와 적당한 경고를 보낸 뒤 시작될 거라 은연중에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예고된 일이었다. 이게 다 몸을 무시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또래들보다 일찍 증상들이 찾아왔다. 앉았다 일어서면 무릎이 쑤셨고, 요실금이 심해졌다. 사물을 식별하는 거리감이 달라졌다.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어디가 불편해 병원을 찾으면 "어쩔 수 없죠, 노화의 한 증상이니까, 그냥 관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따위의 말만 듣고 오곤 했다. 친한 언니들은 내게 경고성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껏 살던 대로 살다가는 갱년기가 일찍 온다느니, 일찍부터 자식 생고생시킨다느니, 아예 일찍 명을 달리한다느니... 그러니 운동해라. 뭐, 요실금? 기저귀 차고 달려! 그것만이 살 길이니….

  나는 내 사춘기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 또한 내 아이처럼 몸이 드라마틱하게 변했을 텐데, 그저 기억에 남은 건 초경을 했던 밤 말고는 없다. 몰랑몰랑한 아이의 몸에 탄력이 생기고, 가슴이 봉긋해지고, 몸이 접히는 데마다 뼈가 불거지고, 가늘고 곱슬한 털이 피부를 뚫고 나온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사소한 것에도 잘 놀라고 크게 반응하는 성격이므로 어린 내가 놀랐을 법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아쉬운 일이다. 그 성장의 순간들을 놓쳤다는 것이, 다시 오지 않을 '첫 순간'들을 놓쳤다는 것이. 하지만 아이 덕분에 인체의 신비로운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어린 내가 아니라 어린 딸의 모든 첫 순간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중년의 내가 서서히 늙어가는 과정을 경악과 시름 속에서 따라잡고 있다.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은(아니, 못한) 채.


  그러니까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내 몸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의 부제는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아주 힘센 책이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데에는 이 책의 힘이 크다. 헬스클럽의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사이클을 타는 게 전부였으나. 하루키 상이 아무리 달리기를 예찬해도 나를 달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영미 작가는 달랐다. 이런 나도 했는데 너도 할 수 있어, 다독이고 격려해준달까. 나도 당신처럼 변하고 싶다, 그런 기대감에 흠뻑 젖게 했다.

  결정적으로 몸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만 했다. 시점에 운좋게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저자가 다정한 PT로서만 역할한 것은 아니다. 인생의 챕터마다 새겨들을 이야기가 있었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그녀가 준 인생과 운동을 위한 조언들을 포스티잇에 옮겨적었다.


  바야흐로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나는 사춘기에 할 법한 일들을 작한다. 일단 삶의 우선순위를 재배치하는 것. 그 중심에 '몸'이 있다.


  그렇게 반년째 달리고 있다. 힘들어하는 몸을 부축해가면서, 쉬고 싶은 마음을 달래가면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칙칙폭폭' 호흡하며 오늘도 달렸다. (달리면서 '칙, 칙' 두번 들이쉬고, '폭, 폭' 두번 내쉬는 거다. 그렇게 네박자에 맞춰 호흡하면 훨씬 수월하다.) 이제 그만 트레드밀에서 내려오고 싶을 때면 비트 강한 음악을 들으며 달렸다. 지쳐서 다리를 단 1센티미터도 끌어올리지 못하겠다 싶어지면 옆을 흘깃 보곤 했다. 천천히 걷고 있는, 뻑뻑하고 마모된 관절의 노쇠한 몸들과 경쾌한 리듬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늘씬하고 탄력 있는 젊은 몸들.

  커피가 가득 든 잔을 왼손으로 옮기다가 이런 동작도 묘기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오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일들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나이. 그런 일의 가짓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는 그때가 되면, 나는 얼마나 달리고 싶을까. 허벅지와 종아리, 아랫배의 근력은 얼마나 탐이 날까. 땅을 힘껏 박차며 뜨거운 피를 박력 있게 펌프질하고 싶어지겠지.

  트레드밀 손잡이에 손을 얹고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그런 미래를 떠올렸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달리고 있었다. 완벽하진 못하나 어느 정도까지는 몸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신체의 움직임을 내가 조절하고 있다는 이 분명한 감각이 내게 힘을 준다.


  삶의 통제력을 잠시나마 되돌려준다.



사진출처: 남해의 봄날


"평탄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 온 사람일수록 다양한 운동을 통해 좌절과 실패를 연습해보길 권한다. 혹여 진짜 인생길에서 자빠지는 일을 당했을 때, 그렇게 실패를 극복해본 경험과 요령은 심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맞다. 그런 나이가 분명 온다. 몸이 거의 모든 걸 결정짓는 순간. 정신의 투지, 이런 말이 그저 말로서만 존재하는 순간.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생기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p95



  얼마 전에 얌전하게 빗겨간 태풍을 떠올린다. 인생사 그런 것 같다. 겁주고 위협하고 불안에 떨게 하지만, 막상 닥치면 별 게 아닌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가 방심한 순간, 쏟아지는 거지. 쏟아지면, 맞아야지. 별 수 있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조차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닌 게 돼 버리기도 했다.


  다만, 비를 맞을 수 있는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하다못해 감기라도 피하고 싶다! 체력이 키워지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인사하듯 감기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몹시 아팠다. 감기를 앓고 난 후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늙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훅, 크던데 중년의 링겐들은 확, 늙나보다. 감기라고 우습게보지 않겠다 결심했다. 감기 한 번 치룬 값으로 신체 나이 일 년을 써버린 것 같다. 억울하다. 이 악물고 운동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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