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습관
제대로 공부했던 그해에 나는 아침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반드시 씻고 나왔다. 집에서 공부하는 게 맞는 타입이라도 꼭 씻고 하루를 시작하길 바란다. 씻지 않고 어벙하게 지내다 하루를 날리는 경험은 이때만큼은 사치다.
목표 공부 시간을 채우기 위해 스톱워치를 활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공부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쉬는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타입도 아니었다. 공부하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면, 딱히 쉬면서 뭘 해야될지 몰랐기 때문에 곧바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서관에서는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9~10시간을 보낸 것 같은데 거의 순수 공부 시간과 같을 것이다. 하루 14~15시간을 목표로 찍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출 연습이 포함된 9시간이 읽기만 하는 15시간보다는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집에 돌아왔다고 해서 무조건 공부를 끝내지는 않았고 공부가 잘 되는 날에는 새벽 2시 정도까지 마무리 공부를 하는 경우도 이따금 있었다. 다음날을 생각해 그 이상은 늦게 자지 않았다.
스터디는 구성원들과 협의하여 일요일 오전에 실시했다. 나태해지기 쉬운 날에 어떻게든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고, 오후에는 스터디 자료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스터디가 끝나도 한창 해가 떠 있는 시간이니 술 마시러 갈 일도 없었다.
점심을 먹고 공부를 시작하면 졸릴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도서관 근처 헬스장에 갔다. 샤워 시간까지 포함해 두 시간 정도 소비했지만, 어차피 졸면서 보내는 것보다는 나았고 컨디션 관리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잠시 같이 공부한 적이 있는 여성 지인은 요가를 다녔고 역시 합격했다. 운동하는 시간은 기분이 괜찮은 날에는 명상의 시간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온갖 잡생각을 몰아서 다해버리는 시간으로 기능했다.
하루 중 힘든 순간은 학생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나온 시점이었다. 여름이 지나면서 일찍 해가 지기 시작했는데, 밥을 먹고 나면 깜깜해진 하늘을 보면 아, 오늘도 나는 공부만 하다 하루가 다 갔네...하면서 울적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술을 먹으러 다녔으면 나는 아직 고시낭인으로 살고 있을 거다.
1차 합격 경력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앞선 글에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낙향한 후 첫 시험에서 처참한 실패를 불러온 원흉 중 하나는 내가 1차시험에는 합격해봤다는 오만함이었다. 어차피 어느정도 수준은 올라왔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 합격해서 떠났으니, 내가 꽤 앞선 지점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기간을 이 시험에 투자한 사람은 교과 별로 수천명이 쌓여있다. 그중 합격권 가까이 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제 막 시험을 치르기 시작한 이들 중에도 빠른 시간 안에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소숫점 차이로 당락이 엇갈리는 이 시험에서 절대적 기준으로 내용지식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판은 최근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경력보다 중요하다. 남들보다 한발짝 더 합격에 가까이 가봤다는 방심은 수험기간을 늘릴 뿐이다.
마지막 순간의 마음 관리
시험일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이런저런 외적인 요소에 흔들릴 수 있다. 선발 인원, 지원 지역 눈치보기, 출제의원에 대한 소문 등이다. 이런 공부 외적인 것들에 신경쓰지 않고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차분히 정리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
1. 선발 인원 문제
선발 인원의 경우, 6개월 정도 전에 사전 티오(티오는 인원 편성표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시험의 세계에서는 선발 인원 수를 뜻한다)라는 것이 발표된다. 이것과 관련하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어차피 임용판에 들어왔다면 제발 티오와 관계 없이 1년을 제대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쉬엄쉬엄 하다가, 혹은 그저 빈둥거리다가, 다른 분야에 기웃거리다 티오 발표가 되면 막상 할만해 보여서 뒤늦게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뛰어난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다.
이 시험은 나름대로 공부를 할 줄 아는 사람들만 모여서 다시 경쟁하는 구조다. 1년 혹은 그 이상 바짝 집중해서 준비해온 사람들이 넘쳐 흐르는데 몇 달 반짝 준비해서 합격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임고 준비를 당분간 쉬어간다고 생각했다가도 선발 인원 숫자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서 준비를 하는 경우라면, 이 시험에 미련이 남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아무리 여러 번 떨어져도 이 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최선을 다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판에 발을 들였으면, 티오와 관계없이 긴 호흡으로 제대로 준비해야 합격을 하든 미련을 버리든 할 수 있다.
2. 지원 지역 선택 문제
최종 티오 발표 후 응시 지역을 선택할 때 임고생들은 지나치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중등 임용고사는 교과 별로 적은 인원을 선발하기 때문에 지역 별로 이어지는 합격 수준의 경향성이 없다. 초등과 달리 대도시 지역이라고 해서 항상 합격선이 높거나, 시골 지역이라고 해서 낮지 않고 오히려 후자의 합격선이 더 높은 경우도 많다.
이렇다보니 지원 지역에 대한 눈치보기가 매우 심하고, 원서접수 기간 매일 발표되는 경쟁률을 주시하며 마지막까지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각 교과의 임고 커뮤니티는 평소의 수십 배에 이르는 글과 댓글로 홍수가 나고, 서로 자신이 지원한 지역이 치열할 것이라며 다른 지역으로 가라는 호소문이 넘쳐 흐른다. 이때만큼 교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찌질해지는 기간도 없다. 부끄럽지만 내가 가장 심하게 실패했던 삼수생일 때 나도 그 속에 있었다. 부족한 노력과 실력을, 나보다 열심히 노력했을 사람들을 피하는 것으로 메워보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본인이 공부해온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어느 지역을 가든 당당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러한 자신감은 충분한 노력이 전제되었을 때 나온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아예 고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면, 원서접수 마지막 날에만 하길 바란다.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꽤 자신감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두 지역을 두고 고민을 했고, 부끄럽지만 어느 지역이 더 괜찮을지 묻기 위해 사주까지 보러 갔다. 고민하는 방식이 찌질해도 상관없다. 다만 이 기간만큼은 임고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3. 출제위원에 대한 소문
시험일이 임박하면 도는 소문이 있다. 어느 대학에 어떤 교수가 학교에서 사라졌고, 아마 출제위원으로 들어갔을 거란다. 이런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있다. 소문을 접한 사람들은 추측의 타깃이 된 교수의 박사논문이나 최근 관심사가 담긴 논문을 찾아 열심히 읽기도 한다.
정말 이 시도는 의미가 없음을 전한다. 실제로 해당 교수가 출제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논문을 반영하여 출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출제의 기준이 되는 것은 기출 문제이고, 다른 출제위원 및 현직 교사들의 검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을 기반으로 문제를 출제하지는 않는다.
한창 더 중요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한번이라도 더 인출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한 시점에서 거의 출제 가능성이 희박한 어지러운 논문을 읽는 것은 엄청난 시간 낭비이다. 신빙성을 알 수 없는 낭설에는 신경을 끄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온대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