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하남 Dec 02. 2022

임용고사 시험장에서, 그리고 실패한다면...

1차 시험장의 풍경

임용고사는 매년 지역 별 선발 인원이 천차만별이다. 거기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선발 티오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그러다보니 거주지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거리에 따라 새벽에 일찍 출발하기도 하고 너무 멀면 시험장 근처의 숙소를 잡기도 한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데, 숙박을 한다면 그때만큼은 지갑을 열어 접근성과 시설이 좋은 숙소를 잡기 바란다. 오가는 데 부모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것이 좋다. 그 때 죄송해서, 뻘쭘해서 피하지 말고 지원받는만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평생 살고 싶었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응시했다. 매년 높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합격선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간 충실하게 공부해온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날 잠은 일찍 들었지만 새벽 4시에 눈을 번쩍 떴고, 공부를 더할까 고민하다 컨디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두 시간 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혹시 지각할까봐 푹 잠들지는 못했다.


시험장에는 나를 든든하게 해줄 서브노트와 즐겨쓰는 볼펜, 그리고 생수 한 병 챙겨서 들어갔다. 생리현상이 인생의 발목을 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찍 도착해서 화장실도 갔다. 다행히 내 장기들은 타이밍이 적절하게 일해 주었고, 시험 중 급박한 상황을 맞이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결과를 얻었다.


외투 주머니에는 초콜릿 중 가장 내 입맛에 맞다고 생각하는 페레레로쉐 3알을 준비했고, 각 교시 시작 직전 한 알씩 먹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콜릿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뇌의 활동 컨디션이 더 좋아진다고 해서 그랬다. 그렇게 시험은 시작됐다.


매년 불합격생이 쌓이는 시험이다보니,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오다보면 여기저기서 동문회가 열린다. 서로 아직도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민망하기도 하고 아직 동년배에 같은 처지의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며 안도하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복수전공 교과로 응시했기 때문에 딱히 아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어서 편했다.


당신이 진심으로 합격할 생각으로 이 시험장에 들어왔다면, 지인을 만나도 간단히 인사만 하고 빨리 자리로 돌아와 서브노트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험장에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떨어지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은 하면 안된다.


그 찰나의 시간동안 읽은 것이 문제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마저 집중하는 절박함이 지난 시간의 노력을 증명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나처럼 쉬는 시간에도 묵묵히 노트를 보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복도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은 내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더 자신감이 붙었다. 처참했던 작년과 달리 나는 차분하게 문제를 풀었고, 차마 김칫국을 마실 수는 없었지만 상당한 자신감과 좋은 느낌을 얻고 시험장을 나설 수 있었다.


2차 시험 준비, 빠를수록 좋다

2차 시험과 관련한 후기는 각 임고 커뮤니티에 충분히 많이 있고 대비 수험서도 많이 나와 있으니 굳이 이 글에서 준비 방법을 다룰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나는 2차 시험 준비를 최대한 빨리 하라는 것만 강조하고 싶다. 수업 실연과 면접을 치르는 2차 시험은, 당연하지만 1차 시험에 합격해야 치를 수 있다. 문제는 1차 합격자 발표가 2차 시험임박한 시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용고사는 객관식 시험도 아니고 확실하게 자신의 점수를 알 수도 없다보니, 자신이 합격선 근처에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냥 놀아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발표가 나면 허겁지겁 준비한다.


물론 그렇게 하고도 최종합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2차 시험에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차 시험 후 휴식은 해당 주말까지면 충분하다. 빠르게 2차 시험을 준비하는 게 좋다. 그 해의 1차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다시 도전할 것이라면 경험을 해두는 것이 충분한 의미가 있다. 뭔가 해야 하거나, 그렇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그 태도가 차곡차곡 쌓여서 1년 뒤, 혹은 2년 뒤의 합격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다면...

법륜스님(이하 법륜)은, 청년층의 고난에 대해, 사회 구조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자세 변화를 다소 지나치게 요구하며 젠더 불평등의 현실을 다소 가볍게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개인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이 가는 말씀을 해주신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래 전 법륜이 임용고사에 계속 낙방하고 있는 수험생에게도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는 않지만, 기약 없는 무모한 도전은 낭비이며, 3번을 실패한다면 사실 그 시험에서 합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언급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접한 시점에 이미 나는 임용고사에 3번을 낙방한 상태였다. 매우 울적해졌지만 그만큼 오기도 생겼고, 그 숫자를 부정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시험에 합격한 후, 그 발언을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숫자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법륜이 숫자를 언급할 때 전제한 것은, 그 횟수에 모두 최선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다. 수험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진정 공부에 1년을 제대로 갈아넣은 것은 마지막 해 단 1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더 이상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 안된다는 결심이 섰던 영향이 있는 것 같고, 비슷한 처지를 서로 의미 없이 위로하며 아직 괜찮다고 방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임용고사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고시에서, 수험생들은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그렇게 열심히 해오지도 않았으면서 힐링이 필요하다며 놀러가거나, 술과 게임 등으로 며칠을 날려 버리는 생활을 반복하기도 한다. 더 취업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도 그것에 호응할 수 있을 만큼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사회탓을 하고 좀 아는 체를 하며 술잔을 부딪힌다. 도 한때 그랬다. 그 원인에 대해  내 마음대로 상상해본다. 사범대생의 망하는 테크트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시험 합격이 매우 어려워지면서 , 주변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늘어난다. 한두번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며 굳이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자신이 이 분야에서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이 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아쉬움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믿음에 사로 잡혀 고시 중독에 빠져든다. 이미 나이는 들어가고, 다른 진로에 대한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아 그만 둘 용기도 나지 않는다.


국가고시이든 다른 분야이든, 필요한 것은 정말 최선을 다하고, 그 분야의 경쟁에서 자신의 한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후련함은, 만약 실패한다 하더라도 미련 없이 다른 분야로 속히 전활할 수 있게 해준다. 올해는 시험삼아 친다고 떠드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뒤쳐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마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경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실패를 겪게 될 것이 두렵고, 노력만 하면 될 것이라고 변명하면서 현실 도피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 곤란하다. 이미 다른 진로에 대한 준비 없이 임고판에 들어왔다면, 빠른 시간 안에 전력을 다해보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확실하게 도전하든지 깨끗하게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젊을 때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 결국 임용고사에서 떨어지는 상황을 전제했을 때, 그래도 빠른 시간 안에 결론을 내리고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경력을 쌓은 것과, 아무 경력도 없는 것은 이후의 삶과 선택에 큰 차이를 초래한다. 불합격이 실패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 모습이 실패라고 생각한다.


걱정되어 덧붙이는 말

시험 응시 전략을 주로 다루는 글의 특성상, 이 시리즈에서 개인의 노력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수많은 불합격생이 쏟아지는 것은 청년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구조의 탓이 더 크다. 임용고사 뿐만 아니라 모든 취업시장이 그렇다.


하지만 사회 구조와 기득권층의 시선, 경제 정책이 좀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약이 없는 상황에서 사회 탓만 하면서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분야는 달라도 최선을 다해본 경험이 있어야 다른 곳에 가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글이 사범대를 졸업한 누군가를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살기 위한 좋은 자극으로 활용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