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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Mar 23. 2021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한 메시지

1.  청춘이기에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청춘에 대한 나의 생각"      

    

10년 전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을 읽었다. 당시는 결혼을 하지 않은 30대 후반인데도 동안이라는 이유로 20대 동생들과 잘 어울렸고, 청춘에 관한 주제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청춘은 아프면 안 된다. 인생은 시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덮었다. 청춘에게 아픈 시련은 축복도 아니고,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청춘의 아픔은 치료를 받아야 할 사회적인 질병이고, 어른들의 책임이다. 이것이 한 시대의 청춘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청춘들에게 어른들은 늘 바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생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삶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된 경향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된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청춘들의 삶은 어른들에게 외면당하고 아픔을 참아내느라 신음하고 있다. 허름한 목로주점에서 싸구려 막걸리 한 잔에 청춘의 아픔이 씻겨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치 한 조각에 묻어있는 양념들이 청춘들의 삶에 자양분이 되어 잠시 시름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며, 내일도 그럴 것이다. 편안함에 익숙한 우리 모두에게, 청춘의 아픔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대를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인식, 차별의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농업화 시대에서 산업화 시대 그리고 정보화 시대를 거치면서 세대별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86세대(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시작으로, X세대(1970년대 생), Y세대(1980년대 생), Z세대(1990년대 생), MZ세대(Millennium과 Z세대 이니셜) 등 세대차이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구분 지어진 시대에 살고 있는 청춘들의 꿈과 시련은 다 다를까? 대답은 '아니요'다.   

   

왜 아닐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동서고금은 물론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통틀어도 대답은 하나일 것이다. 돈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는 의미는 '삶' 그 자체다. 인생의 꿈도 돈을 벌기 위해서, 때때로 겪는 시련도 돈 때문이다. 돈에 대한 가치의 차이는 있어도,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돈은 사람의 빈부격차를 구분 짓는 기준이 되었다. 돈이 많으면 부자이고 부자는 곧 성공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애매모호한 성공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춘들이 '소확행'을 꿈꾸며 '워라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렇다면 옛날 시대를 살았던 청춘들은 어떠했을까?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때 최초로 화폐를 발행했다. 당시의 화폐는 철전(鐵錢)과 동전(銅錢) 두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화폐가 '건원중보’이다. 당시에 당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지자 당나라의 화폐와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돈이 없던 시절에는 물건과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성행했지만, 화폐가 발행되자 물건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었다. 비싼 물건과 값싼 물건의 기준이 '돈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게 된 것이다. 권력이 삶의 척도였던 시대에서 돈의 가치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가 시작되는 계기가 아닌가 싶다.  

   

이때부터 돈은 인간들에게 시지프스의 저주와 같은 바위가 된 것이다. 쓰면 없어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시지프스가 바위로 된 하데스산 꼭대기에 무거운 바윗돌을 밀고 올라가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또다시 올려놓는 시지프스는 오늘날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바윗돌을 버릴 수 없는 운명의 저주를 받아들이는 시지프스와, 돈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운명의 저주를 끊어낼 수 있는 강하고 날카로운 보검과 같은 이성이 필요하다.   

             

 "돈의 가치에 대해서"  

        

 30년 전 일이다, 1980년대 후반. 창문으로 밀려드는 햇살을 감당하지 못하는 커튼은 햇살을 가득 안고 기분이 좋은 듯 흔들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학창 시절을 마치고 첫 직장에서 2년 넘게 일했던 나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0대 후반에 입사해서 몇 달있으면 20대가 되는데 난 무엇을 했는가? 남이장군은 '북정가'에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리오'라고 했는데 난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이 없었다. 괜히 남이장군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난 사표를 쓰기로 했다.  

    

 매 달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유난히 설레는 날이 있다. 월급날이다. 당시에는 월급을 통장으로 이체하지 않고, 노란 봉투에 담아서 주었다. 월급날은 회사에서도 특별한 일거리가 없으면 잔업을 시키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는 청춘들에게 월급날의 밤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두툼한 월급봉투를 속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밤이 되면 시내에서 한 달만에 만나는 다른 회사 직장인들과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술도 마시는데, 공단의 월급날이 대부분 같았기 때문이다. 

     

한 달이면 2~3일 쉬고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날 봉투에 든 돈을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는 순간 돈은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외상값을 값아야 하기 때문이다. 70만 원 정도 받는 월급에서 외상값은 80%를 차지했으니, 급여를 받고 일주일이 지나면 몇몇 청춘들은 지갑이 텅 비었고 결국은 외상을 하기 시작한다. 짜장면이 700원이었고, 군포에서 안양까지 가는 시내버스 요금이 120원 하던 시절이니 70만 원의 월급은 꽤 큰 액수였다. 그렇지만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10년이 지나도 인생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았다.  

    

"선택은 과감해야 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표를 쓰겠다고 처음 말한 것은 친구들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웠고, 당시에는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란 영화가 젊은이들의 의리를 보여주듯 남자들끼리 배신하는 행위를 수치로 생각했다.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자니 이보다 더 가까워질 수 없다.     

요즘의 청춘들과 다를 것 없이 밤 새우며 술을 마시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4명의 친구 모두 나의 퇴사를 반대했다. 나는 퇴직 후 배를 타겠노라고 친구들에게 말했고, 친구들은 배를 타면 해적들이 바다에 빠뜨려 죽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열아홉, 스무 살의 친구들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면서 일주일 내내 나를 붙잡았지만, 난 2년 앞으로 다가 온 어머님의 환갑잔치와 새로운 꿈을 향해 바다로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사직서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날은 일하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사직서를 제출하러 가면 사장과 전무가 없어서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하는 것을 모두 반대했기 때문에 일부러 사표를 제출하지 못할 분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밖에서 잠을 잔 나는 사장이 출근하는 시간에 맞추어 사직서를 들고 인사를 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사장은 시흥군 군포읍의 유지여서 직원들의 행정적인 사건이나, 형사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모두 처리해주는 아버지 같은 사장이었다. 사장은 전무에게 사실 이야기를 듣고는 '앞으로 열흘까지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마음 변하면 다시 와'하면서 서랍에 사직서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난 곧바로 기숙사로 들어가 가방을 갖고 나와 고향으로 향했다. 내 마음이 약해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에 하루라도 더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 중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올 때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당장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멀리 여행을 하는 것이다. 숲 속에 갇혀서는 전체적인 숲 모양을 볼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숲을 보려면 숲에서 벗어나 멀리 갈수록 전체적인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내 삶의 모습이 어떤지 정확하게 보일 때까지 지금의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소중한 청춘을 사랑하고 내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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