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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로 Mar 25. 2021

부산 갈매기

2. 젊음이 믿을 수 있는 열정

갈매기의 비상은 늘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청춘의 마음은 늘 이렇다"


바다에 유리를 깔아놓은 듯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바다에 투영된 하늘은 푸른 속살에 하얀 구름을 걸치고 여유롭게 유영하듯 시간을 즐기고 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기관실에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만 들리지 않는다면 물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다. 


"어느 생에서 한 번 당신에게 부딪혔던 작은 새의 파닥 거리는 심장이 되어 당신 손아귀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을 앞세운 추신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 나는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란 시 구절을 생각했다. 바다는 잠들어있는 어린아이처럼 평화롭게 잘 있었다. 평화로운 바다 위를 어선 하나가 통통거리면서 남해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부산 남항을 출발한 지 하루가 지났으니 제주도 근해쯤 이란 막연한 생각만 있을 뿐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찾아야 할 목적지도 없는데 사방팔방을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수평선뿐이다. 난 마치 우주에서 유영하는 우주선의 우주인처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하늘을 품은 바다는 까마득한 우주공간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만 보여 줄 뿐, 어제 보았던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을 모두 삼켜 버린 듯했다. 앞으로 150일을 살아야 할 바다에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육지가 그리웠다. 지난 하루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면서 청춘의 영혼은 항해하는 뱃길을 되돌아 가고 있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마주한다. 단 한 번으로 인생을 180도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익숙한 편안함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터닝 포인트는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경우도 있는데, 난 후자에  속한다. 


1980년 대 후반에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람보'와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을 좋아했던 나는, '도전하되 나 자신과 의리를 지키자'가 내 삶의 좌우명이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마감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사회에서 첫 도전을 한 것은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배를 타서 돈을 많이 벌자'가 내가 선택한 첫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선원이 된 계기는 "선원모집, 월 300만 원 가능"이란 전신주에 붙은 문구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받던 회사 월급의 세 배를 준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어차피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돈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데서 일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고, 결국 나는 선원이 되기 위해 부산에 온 것이다. 그리고 람보처럼 군용 더블백을 어깨에 메고 부산 자갈치시장을 거닐고 있었다. 


영도다리 입구에서 공동어시장까지 이어지는 시장길을 걷다 보면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보소 보소"하면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에는 포장마차에서 '보소~'하면, 깜짝 놀라 '예?' 하면서 뒤돌아 보았으나, 이제는 같은 길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니 날 알아보고 서로 눈인사를 할 정도였다. 나는 괜히 무안하기도 하고, 미안해서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으로 코스를 바꾸고 이틀 째 걷고 있다. 청춘의 어깨에 걸쳐진 더블백에는 8월의 여름 햇살에 지친 삶의 무게감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처음 생각과 다르면 확실하게 확인하고, 그래도 믿음이 없다면 과감하게 거절하라"


서울의 직업소개소에서 소개받아 부산의 남항까지 왔는데 처음 만난 선주와 선장이 이상하게 싫었다. 앞이마가 훤한 대머리 선주는 안경 너머로 내 이력서를 보면서 퉁명스럽게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하였고, 불독같이 생긴 선장은 장화와 우비가 든 검은 봉지를 내 앞에 던지면서 "따라온나"라고 했다. 난 분위기도 싫고 어이가 없어서 "사람이 일을 하는데 계약조건에 관한 내용을 서면으로 주고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선주는 교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배에 가면 안다"라고 했다. "잘못 걸렸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검은 봉지를 선주에게 집어던지고 이력서를 빼앗았다. 그리고 거칠게 문을 박차고 나왔다.


난 섬에서 태어나 뱃사람들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웃기면 소리 내어 웃고, 슬프면 슬픈 대로 울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뱃사람들이다. 상황에 맞지 않게 상대방에게 미소를 짓는 것은 상대를 속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당시에는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는 새우배에 선원들을 팔아넘기거나, 이름 없는 섬에 팔려가 염전일을 하면서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던 터라 나는 민감해져 있었고, 항상 경계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갈매기가 먹이를 노리듯이, 인간들도 항상 먹잇감을 찾고 있다]


그 후 모집공고를 보고 몇 군데 더 전화해서 갔지만 급여가 200만 원 이하였다. 난 부산 남항에서 떠도는 갈매기 신세가 되었다. 항구의 한적한 곳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새우깡을 먹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다가 내 주변으로 슬금슬금 걸어왔다. 새우깡을 던져주니 잘도 먹는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지 1년밖에 안된 엣띤 모습의 청춘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갈매기가 새우깡을 노리듯이 사방에서 바라보고 있는 눈들이 있었다.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청춘들은 흔들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선택과 결정의 순간은 있다. 선택과 결정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어학사전에서는 선택(選擇)을 '여럿 가운데서 골라 뽑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은 선택이란 단어는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청춘들에게 선택은 쉽다.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젊음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청춘의 자유이며, 그들만의 권한이기도 하다. 


청춘에게는 잘못된 선택을 해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만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아름다운 것이 청춘이다. 


그렇다면 결정(決定)은 어떤가? 어학사전에서는 결정을 '어떤 일에 대한 방향이나 태도를 분명히 정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내 감정과 마음으로 해야 하니 선택보다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지식보다는 내 안의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선택한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법률가, 의사, 과학자로 성공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결정을 먼저 하고 선택을 나중에 하는 것이 옳다. 어려운 것을 먼저 하고 쉬운 것을 나중에 하면 시간에 쫓겨 실수를 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선택을 쉽게 하지만 결정은 쉽게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선택과 결정의 상관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 종종 발생한다. 선택과 결정은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들이다. 선택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한 도전이라면, 결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로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는 새우깡이 있으니 소주를 한 병 더 마실 것인가? 아니면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대신해서 안주와 함께 소주를 마실 것인가 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계속 있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우연의 법칙, 내가 나 자신을 믿는 만큼 타인도 나를 믿는다"


그날 저녁 포장마차에서 곰장어와 소주를 곁들이며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보통 키에 30대쯤 보이는 청년이 "배 탈라꼬에?" 하며 내 옆에 앉았다. 자신을 00 원양어선의 갑판장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출항 준비를 끝냈는데 갑판원 한 명이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출항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술잔을 마주치며 밤을 맞이했다. 아무도 없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술친구가 있다는 것은, 기름이 다 떨어져 경고등이 켜진 승용차로 국도를 달리다가 주유소를 발견한 기분과 같았다.


당시 나의 주량은 기분에 따라 달라졌다. 기분이 좋으면 술병의 숫자와 상관없이 밤을 새우면서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안 좋으면 5병 ~ 7병 정도 마시면 취했다. 


갑판장의 고향이 수원시라는 말에 안양시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갑판장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선후배 사이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원에서 술 마시기 좋은 곳과 안양에서 술 마시기 좋은 곳들을 잘 알고 있는 갑판장은 내가 사직서를 내고 친구들과 안양에서 술 마실 때 근처에서 술 마시고 있었다. 선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친해졌고, 술을 마시다 보니 의형제가 되어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결국 갑판장과 밤새워 술을 마시고 아침에 함께 해장을 하게 되었다. 그 날 오전에 둘은 00원양 사무실로 함께 들어가서 갑판장의 고향 후배라고 소개를 하고 일사천리로 선원수첩을 발급받아서 다음 날 출항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으로 만들어진 운명의 터닝 포인트는, 신뢰의 열쇠로 귀를 열고 마음을 열자, 어느덧 내 안에 있었다. 내 청춘은 이렇듯 운명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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