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다의 삶이 육지의 삶에게 보내는 모놀로그(monologue)
청춘과 바다는 많이 닮아있다.
미지의 세계, 미래에 대한 꿈, 감춰진 에너지 등 현실보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청춘의 색깔과 바다의 색깔도 닮아있다. 바다는 태평양 해변에서는 에메랄드 빛으로, 오츠크해와 베링해 같은 곳에서는 초록빛으로 살아가고 있다. 황해, 흑해, 홍해 등 지역의 특성이나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포장되는 우리들의 선물, 청춘과 바다는 그렇게 닮아있다.
인생에서 청춘의 시기는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이다.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비바람 치는 성난 파도가 되기도 하고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청춘도 그렇다. 삶의 여정에서 뒤로 갈 수 있고, 옆으로도 갈 수 있는 선택은 청춘이 가진 모험심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뜨거운 청춘의 열정을 식힐 수 있는 바다는 청춘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난 오늘도 바다를 보면서 물 멍 때리기를 하고 있다. 어떤 때는 육지를 향해 찰랑찰랑 거리는 몸짓으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파도를 보고, 어떤 때는 투우사를 향해 달려드는 황소처럼 성난 파도를 본다. 어떤 날은 여인의 유혹처럼 애간장을 태우며 바다로 돌아가는 파도를 보며 발이 저리도록 앉아있었다. 나는 바다를 볼 때면 메두사와 눈길이 마주쳐 돌이 된 기분이었다.
나의 젊은 날의 청춘은 바닷속 깊은 곳에 침몰한 보물선과 같다. 시간을 되돌려 보물선을 찾아보고 싶지만, 청춘의 보물선은 부식되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라. 바닷속 깊은 곳에 침몰한 내 청춘의 보물선에는 사랑, 돈, 명예, 우정, 성공..... 등 많은 보물들이 오랜 세월의 갯벌 속에 묻혀있다. 다시는 20대의 청춘처럼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쉬움에 가득한 물 멍 때리기가 아닐까 싶다.
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나오는 주인공 '산티아고'가 된 느낌이다. 과거의 시간 속 깊은 곳에 젊음의 보물선을 침몰시킨 푸른 바다는, 지금 나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그런 바다를 상대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산티아고의 모습에서 내가 투영되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지만 내일은 반드시 온다. 내 앞에 있는 파도처럼 아장아장 올 수도 있고, 성난 황소처럼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올 수 있겠지만.
[노인과 바다 줄거리]
산티아고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이다. 그의 젊은 날은 힘이 장사인 데다 고기 잡는 솜씨도 좋아서 이곳 쿠바항에서 꽤 유명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태양빛에 그을린 피부와 왜소한 체구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생활이 녹녹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산티아고가 살고 있는 쿠바의 어촌 항구 앞 멕시코 만은 오늘도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허락하지 않았다. 벌써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해 허탕을 친 것이다. 항구로 돌아오는 낡고 작은 배 필라호의 돛은 낡아서 여기저기 찢어져 천으로 꿰매었는데, 지금의 산티아고의 신세가 필라호와 같다. 그러다가 85일째 되는 날 거대한 청새치(코에서 꼬리까지 550cm)를 잡게 된다. 청새치와 이틀 간 사투를 벌이다 87일째 청새치를 잡았지만 노인의 시련은 여기서부터다.
"첫 번째 상어가 물고리를 공격해 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노인은 생각했다. 상어가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잘하면 그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망할 놈의 마코상어 청새치를 잡은 엄청난 행운이 오래갈 리가 있나, 노인은 생각했다.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상어가 나타나면 그때 상대할 일이지, 벌써부터 걱정은 왜 하고 있담"(본문에서 산티아고의 독백)
노인이 잡은 청새치를 상어들이 뜯어먹지만 포기하지 않고 상어와 맞서 싸운다. 자기가 잡은 청새치를 '형제'라고 부르며 상어와 싸우는 모습에서 노인의 고독한 모습이 엿볼 수 있다. 결국 노인은 청새치의 살을 상어에게 다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갖고 실신 상태로 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고단함에 지쳐 깊은 잠에 빠지면서 끝난다.
내일이 되면 오늘은 과거가 된다. 결국 오늘은 내일의 과거일 뿐이다. 지난날을 아쉬워한다는 것은 오늘을 아쉬워한다는 것과 같으니 아쉬운 삶을 살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1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두 주먹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힘들면 참아내면 되고, 아프면 끙끙거리면서 이겨내면 된다. 10년 후의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인생이니까.
바이킹을 탄 기분이다. 망망대해에서 쌍끌이 어선 두척이 시이소를 타듯이 파도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춤을 춘다. 여기는 아마 이어도 근처라고 생각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40일 가까이 바다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방향감각이 없어졌다.
길이 12m, 폭이 4m쯤 되는 450톤 급 원양어선은, 40평 규모의 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 8명의 남자들이 서로의 사생활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관 짝 만한 침실이 유일한 사생활 공간이지만 바닥에 오징어 몇 마리, 머리맡에 사탕이나 과자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그물을 바다에서 끌어내는 선원들은 수백 미터의 수심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에 맞서면서 기진맥진하고 있다. 바이킹을 타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난 로라로 배 앞까지 올려진 그물을 한 손으로 껴안고 한 손은 선체를 의지한 체 선미까지 날라대고 있었다.
그때 '화장아~ 밥 먹자' 하는 선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바람소리처럼 들린다. 내가 처음 도전한 원양어선에서 첫 직책이 화장(요리사)이었다. 요즘은 셰프라는 직업이 인기가 많다. 요리 잘하는 남편, 요리 잘하는 아빠가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다 보니 요즘 남자들은 일부러 요리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 대에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에서 일을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부엌에서 일을 하면 큰일을 못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확고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당시 주방장이란 직업은 지금처럼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다.
난 부산에서 출항할 때 00원양회사에서 갑판원으로 선원수첩을 발급해 주었지만, 원양어선을 처음 탔다는 이유로 화장을 하면서 갑판원 일도 함께 해야 했다. 그것이 룰이라고 하니까. 이미 바다 한가운데에서 있는데 따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내 월급은 매 달 고정급 100만 원이고, 5개월 작업을 끝내고 부산 남항으로 입항하면 물고기를 잡은 양에 따라 선원들끼리 나눠갖는 '보합제'였다. 내가 탄 원양어선 1호와 2호 선장은 고기를 잘 잡기로 유명해서 선원들이 함께 타려고 줄을 섰다는 말을 들었다. 보통 500 ~ 700만 원을 보합(보너스)으로 받는다고 하니 대충 계산해도 5개월 선원생활을 하면 천만 원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온몸이 바닷물과 땀에 뒤범벅이 되어 배 뒤쪽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우비를 벗으니 내 몸의 열기가 젖은 옷을 말리느라 안개가 피어오른다. 난 바닷물로 쌀을 2번 씻고, 식수로 마무리 헹구었다.
이곳은 식수가 귀해서 나 같은 신입들은 샤워라는 건 꿈도 못 꾼다. 머리도 바닷물로 1차 감고, 2차로 민물로 헹구면 끝인데, 샴푸나 세숫비누로 몇 번을 사용해도 거품이 나지 않는다. 처음 며칠만 머리가 가렵지 일주일이 지나면 전혀 느낌이 없다. 나는 40일 동안 3~4번 머리를 감은 듯했다.
오늘같이 파도가 심하면 음식을 할 때도 힘들고, 앉아서 밥을 먹을 때도 힘들다. 가스버너에서 냄비가 떨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고정을 하고, 식탁에는 고무판을 깔아서 그릇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다. 밥이 익을 때까지 찌개를 하고, 깡통에 든 김치와 장아찌, 젓갈 종류를 그릇에 옮겨 담으면 식사 준비 끝이다.
그때 기관장이 나막스(붉은메기)를 가지고 오면서 '화장아, 회 떠 가지고 선장님 갖다 드려라'하면서, '제주도로 피항 간다'하고 말한다. 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해서 다시 묻는다. '왜 피항 가는데요?' 그러자 기관장은 '태풍 온단다'하며 브릿지로 갔다. 이곳에서 제주도까지는 10시간 동안 항해를 해야 한다.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름휴가, 추석, 설날 명절 같은 연휴가 있다. 여름휴가는 친구들과 놀러 갈 생각에 기분 좋고, 명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할 생각에 기분이 좋다. 하지만, 망망대해에서 일하다가 태풍이나
기관고장으로 육지로 피항을 가면 이유없이 기분 좋다. 말 그대로 생각하지도 못한 연휴이니 기분이 째지는 것 같다. 마치 몇 년 동안 바다에 갇혀있다가 해방되는 느낌이랄까.
난 참기름, 깨, 케첩, 마요네즈를 따로 담아서 선반 안쪽에 있는 작은 공간에 테이프로 고정시키고, 고추장 통을 선반 안쪽으로 감추고 앞에다 쌀자루를 쌓았다. 갑판장이 항상 주의사항을 알려주는데, 조기장(기관장 바로 밑 직급)이 참기름 귀신이고, 도모돌이(후미에서 일하는 선원)가 마요네즈랑 고추장을 좋아하니 항해할 때는 양념과 식재료를 잘 간수하라고 했다.
다른 배에서 화장이 식재료와 양념을 관리 못해서 누군가 홈쳐먹었고 선원들이 화장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워 욕하면서 폭행을 했다. 결국 화장이 열 받아서 폭행한 선원들을 칼로 찔렀는데, 한 명은 중상을 입었고, 두 명이 경상을 입어서 부산으로 회항을 했다. 나는 배달통으로 선장에게 밥을 갖다 주다가 무전으로 들었기에 특식(고추장, 고추, 생마늘, 깻잎 등)은 항상 공평하게 분배했고, 양념들은 열쇠를 채워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관리를 하고 있었다.
어선의 갑판 밑에 있는 어창에 고기를 다 들여놓은 선원들은 기대에 찬 얼굴들이다. 원양어선 10년 차 갑판장도 신났고, 30년 차 기관장도 신났다. 배에서는 직급이 군대의 계급과 같다. 선장이 씻고 나면, 기관장이 씻고
갑판장, 조기장, 도모 돌이, 갑판원, 기관원 그다음이 화장이다. 하지만 배에 싣고 다니는 식수는 갑판장이나 조기장이 씻으면 끝난다. 바닷물에 찌든 몸과 머리카락은 샴푸나 비누로 거품을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모두 애인을 만나러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멋을 한 껏 부려본다. 모두 저녁밥을 대충 먹고 침실에서 킬킬대면서 육지를 맞이할 생각에 흥분되어 있다.
육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사랑하는 애인이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바닷가로 놀러 갈 때 이런 기분이었다. 난 바다에서 40일 동안 일하면서,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바다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단조롭고 무의미한 시간이다 보니, 사람의 인성과 감성이 돌처럼 굳어지게 된다. 감성과 인성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리움만 가득하게 된다. 육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선화 연정'같이 예민해진다. 그래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렇게 청춘은 바다에서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육지에서 흥청망청 돈을 썼던 나 자신에게,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원양어선을 탄 내가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른 자리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라고 속삭이고 있다. 태풍이 밀려오는 바다는 청춘의 열정처럼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