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해로 Apr 11. 2021

청춘, 미치고 환장하겠네

4. 뚜껑이 열리는 청춘들을 위한 글

존재감에 대한 내 생각     

내일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주고받는 도움 속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넘치는 부분들은 나누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화롭지 못한 것은 조화로움으로 귀결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명리학을 공부하여 음·양의 이치를 깨우치지 않아도, 남자는 양(+)이며 빛이고, 여자는 음(-)이며 어둠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음과 양이 조화롭다는 것은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하며, 사랑과 생명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면서 사랑이 싹트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춘의 불꽃을 마음껏 태울 수 있는 것은 열정이다


미치고 환장하다의 정의   

우리는 살다 보면 '미치고 환장‘하면서 이성을 잃고 당황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미치다'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서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되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환장하다'는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 뒤집히다'라고 적혀있다. 

결국 ‘미치고 환장하겠네’는 것은, 정신과 마음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뒤집혀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잠시 동안이지만 정신과 마음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흔히 요즘 말로 '뚜껑이 열리겠네'하는 표현은 '미치다'는 의미에 가깝다. 아직 '환장'하는 상태가 아니니 마음은 정상이고, 정신만 정상적이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스스로의 역량(力量)으로 제어가 가능하다.    

 

미치고 환장할 때의 주문     

우리들이 미치고 환장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돈 때문에, 사랑 때문에, 자신의 실수 때문에, 타인의 모함으로 억울할 때. 그리고 요즘같이 코로나 19로 인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팬데믹 현상이 지속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이럴 때 기막힌 문구가 생각난다.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란 명언이다.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들의 말살정책을 펴고 있던 2차 세계대전 때이다. 히틀러의 학살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라틴어 'hoc quoque transibit(호크 쿼케 트란시비트)'를 외우면서 살아냈고, 지금의 이스라엘을 만든 마법의 주문이다.    

  

어떤 순간이든지 영원한 것은 없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가고 있으니 당연한 말이지만,  

스스로의 착각에 빠져 단순한 진리를 잊을 때가 있다. 특히,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찾아오면 시간이 멈추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내는 것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 인생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바람을 의지한 채 나아가는 돛단배처럼 살아가는 인생보다, 세찬 비바람을 당당하게 맞서며 스스로 방향을 잡는 모터보드 같이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내는 청춘들은 젊음의 열정에 대한 마음의 다짐이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는 청춘의 의무인 것이다. 미치고 환장할 순간들도 지나가지만, 젊음의 청춘 또한 지나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 순간은 기차가 잠시 쉬어가는 간이역일 뿐이다. 미치고 환장할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외쳐보자.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간이역에 내려두고, 청춘열차는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날의 기억,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미치고 환장'하는 경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불쑥 찾아오는 그 순간이 죽음과 함께 찾아온다면 정말 난감하다. 더구나 어린아이라면 더더욱 난감하다 못해 황당한 일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생과 사를 주관하는 신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익지 않은 열매는 따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생명의 나뭇가지에서 설익은 과일 하나가 세찬 바람을 만나, 아등바등 거리며 떨어질 듯 힘겹게 매달려 있던 순간이 있었다. 

    

40여 년 전이다. 초등학생인 나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갯바위에 벗어 논 옷과 고무신이 파도에 떠내려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며칠 전에도 신발을 잃어버려서 엄마에게 혼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검은 고무신은 야속하게 잘도 떠내려간다. 이를 악물고 70여 미터를 수영해서 고무신을 잡는 순간 '아 살았다'하는 안도감과 함께 뒤돌아보는 순간, 멀리 보이는 육지가 까마득하다. 한 손에 고무신을 쥐고 육지를 향해 이를 악물고 수영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힘이 빠져버린 나는 '이쯤이면 발이 땅에 닿겠지' 하며 서있는 순간 꼬르륵거리면서 물속으로 잠겼다. 정신이 몽롱하고 입으로 들어온 바닷물이 식도를 막아 숨이 막힌다. 이때가 ‘미치고 환장’한다. '살려줘' 소리를 외치면서 손에 쥔 고무신으로 첨벙첨벙 거리지만 그뿐이다. '아! 이제 죽는구나' 하는 순간, 난 이미 ‘미치고 환장’해 있었다. 수영할 힘은 없고 죽기는 싫고, 그렇게 난 기억을 잃었다. 


정말 해우신조(海佑神助)로 살았다. 휴대폰도 없고, 엔진이 있는 배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통통배라고 불리는 경운기 엔진으로 운행하던 배가 내가 첨벙거리는 모습을 보고 달려와 구해준 것이었다.  

  

아름답게 보이는 바다는 함께 할 때 위험하다


욕심이 만들어낸 미치고 환장할 일     

어른이 되면 미치고 환장할 순간은 더 많아진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많아져서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사자성어는 우리가 살면서 꼭 상기해야 할 말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잊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것이 욕심이다. 


특히 젊음의 청춘들은 육체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아무리 몸의 회복이 빠른 생체세포를 갖고 있어도 자신의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든 노동은 조심해야 한다. 고단한 생활로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은 몸을 병들게 하고, 정신까지 병들게 하는 것이다. 병이 들면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물론이고 현재까지 노력으로 갖고 있었던 것까지 모두 내놓아야 한다. 

    

미련한 욕심으로 내 몸을 아프게 했던 지난 날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바다에서 청춘을 불사르며 살아내던 3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난 것은 지나간 대로 마음으로 건드려보고 생각으로 바라볼 뿐이다.




오늘도 만선이다. 거의 2주 동안 정신없이 물고기를 잡았고, 이대로라면 내가 계획했던 돈보다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보합제의 매력이었다. 분위기가 곧 어장을 철수하고 부산 남항으로 입항할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통증을 느꼈던 사타구니가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다. 갑판 일을 끝낸 후 밥을 하려고 우비를 벗는 순간 뒤로 나자빠졌다. 내가 탄 배는 철선이어서 넘어지면 무척 아프다. 순간 '악' 소리를 내며 난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두 다리를 벌리고 고환의 통증을 호소했다. 영문을 모르는 선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 침실로 들어왔다. 갑자기 고통이 최고조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선장이 내 상태를 보더니 진통제 몇 알을 주고는 "너무 무리해서 '탈창'이 왔다"라고 말한다. 난 탈창을 알지 못해 '그럼 어떻게 해요?'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선장은 '참을 수 있나?' 하고 물었고, 나는 '못 참겠다'라고  대답했다. 살이 뜯어져 나가는 듯 느껴지는 통증과 뼈에 거대한 대못이 박힌 듯 느껴지는 고통은, 조금만 참자면서 버티던 나의 의지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몇 시간 후 주변에 있던 운반선이 우리 배로 왔고, 난 120kg짜리 쌀자루에 쌓여 크레인으로 무거운 짐을 옮기듯이 원양어선에서 운반선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통영항까지 15시간의 바닷길을 가야만 했다. 운반선의 선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러운 아픔을 나 홀로 이겨내야 했다. 온몸은 비린내가 가득하고 머리는 20일가량 감지 못해서 떡이 되었다. 4개월 전 내가 꿈꾸었던 금의환향이 아니라,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몰골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 같았다. 


일을 끝내지 못하고 중간에 하선을 하게 되면 돈을 분배할 때 50% 밖에 못 받는다. 그야말로 몸 버리고, 돈도 버리게 되는 상황이니 미치고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계획했던 꿈은, 바다의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거품처럼 바다 위에서 사라졌다. 

일주일 후 선장과 갑판장은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왔다. 내가 배에서 내린 후 5일 만에 회항을 결정한 것이다. 욕심을 부린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이상증세를 느낄 때 선장한테 이야기를 하고 소염제를 먹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몸과 소통하지 못하고 몸의 신호를 무시했던 젊은 청춘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이다.   

   

뚜껑이 열리는 청춘들을 위한 지혜     

요즘 젊은 청춘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고, 표현하고 싶은 것들은 자유롭게 표현한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언어는 소통을 위한 대화의 수단이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인칭대명사가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 간의 공통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배려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청춘들에게 소통은 절대적이다. 멘토(MENTOR)나 멘티(MENTEE)와의 소통이 그렇고 자신과의 소통도 그러하다. 특히 부모와의 소통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중요한 참고서가 된다. 나의 미래를 부모를 통해서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세대차이가 클수록 예습(豫習) 효과는 크다. 


가족과의 소통을 통해서 사회에서 만나게 될 미치고 환장할 상황을 준비하는 마음은 젊음의 특권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나 스스로 미래를 챙겨가는 마음은 나를 강하게 한다. 미치고 환장할 순간이 죽음과 함께 다가와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내 가족과 소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1)보합제(步合制)

어업 임금 지불의 한 형태. 어업노동에 대한 임금의 주요한 산정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노동을 제공한 경영의 수익에 대한 일정한 분배분(分配分)이고, 둘째는 경영수익의 다과와 관계없이 제공 

노동에 대한 직접적 대가로서의 일정한 고정 금액. 전자가 보합제, 후자가 고정급제의 임금임

이전 03화 청춘과 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