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 재료와 색의 양탄자

네 번째 조각

by 귀리


창을 열자 햇빛이 쏟아지고 바람이 밀려왔다. 그 빛과 공기 속에는 오래전 여행의 온기가 스며 있었다. 마치 두근거림이 공기 속에 잠겨 있다가, 햇살에 녹아 흘러나오는 듯.

날씨는 기억을 품고 있다. 어떤 바람은 낯선 도시의 골목을 데려오고, 어떤 햇빛은 유럽의 광장을 파편처럼 흩뿌린다.
그 장면들 사이에서 문득 깨닫는다. 도시의 얼굴은 색과 재료로 직조된다는 사실을. 예전엔 건축물의 윤곽이 먼저 떠올랐다면, 이제는 빛과 질감의 결, 그 미묘한 차이가 더 선명하다.
햇빛 좋은 날, 눈을 열고 색을 좇으며 나는 걷기 시작했다. 바닥의 거친 표면, 벽을 드리우는 그림자, 낡아가는 난간의 쇳빛. 손끝으로 재료를 더듬고, 빛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거리도 낯선 세계가 된다.


색과 재료의 실로 직조된 풍경이 피어난다.
그 위로 한 줄기 빛, 그리고 투명한 공기.
금빛으로 물든 양탄자 위를 나는 가볍게 걷는다.



도시를 이루는 색


리스본을 떠올리면, 흰 벽과 붉은 스패니시 지붕, 그리고 코발트 블루의 아줄레주 타일이 먼저 스친다.
파리는 잿빛 징크 지붕과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그 사이, 퐁피두 센터의 파이프가 뿜어내는 화려한 색은 클래식한 도시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복한다.
토스카나의 금빛 평원. 그 위를 지키는 사이프러스 나무. 대비가 강렬하다. 한 폭의 그림처럼.
시에나의 건물들은 여러 톤의 적갈색 돌로 중세 도시의 우아함을 더한다. 해가 질 무렵, 도시 전체가 붉게 달아오르며 색을 바꾼다.
볼로냐의 오렌지빛 회랑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그 선율 같은 곡선이 도시 곳곳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이 모든 풍경에는 ‘도시를 상징하는 색’이 있다.

그런데 서울은? 문득 생각해 보지만, 선명히 떠오르는 색이 없다. 곧 깨닫는다. 뉴욕처럼 현대 건물로 채워진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떠오르는 색이 있다면 그것은 택시, 버스, 혹은 도시 브랜드를 위한 인위적인 색일 뿐이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에서 색은 재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재료는 대개 그 땅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도시의 색은 그 지역의 정체성을 품은 언어다.
하지만 각 도시는 고유한 배경을 지닌다. 비교는 무의미하다.
중심이 되는 색이 없다고 해서 풍경이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울의 거리는 온갖 재료와 색이 섞여 있는 다채로운 직조물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의 고유한 풍경.’ 그렇다면, 그것 또한 도시의 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재료와 색을 산책하다


문을 열고 9월의 선선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햇빛에 반짝이던 바닥, 가까이 가 보니 흩뿌려진 물방울이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풍경과 햇빛, 나 사이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관계. 조금만 비껴서 보거나 잠시 후에 돌아보면 그 반짝임은 사라져 있다. 눈앞의 세계는, 수많은 우연이 합쳐진 결과다. 평범한 것도 빛을 받으면 보석처럼 변한다.
문득, 어릴 적 굴리던 유리구슬이 떠오른다. 햇빛에 갖다 대고 이리저리 굴리며 빛을 탐험하던 시간. 구슬을 통과한 빛은 바닥과 벽에 작은 우주를 투영했다. 구슬 속 기포와 색은 스크린처럼 펼쳐지고, 빛의 움직임에 따라 투영된 세계는 조용히 변해갔다.
돌처럼 단단히 자리를 지킨 재료들 사이에도 말랑한 틈이 있다. 오늘의 햇빛, 바람, 시간, 기분이 풍경에 스민다. 그래서 같은 길을 걸어도, 매번 산책은 유일무이하다.


# 일상의 난간에서

아파트 상가를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철제 난간에 손끝이 닿는다. 차갑다. 가을 아침 공기가 스며든 철의 온도다.
이 단단한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깊은 땅속에서 철광석으로 태어나, 용광로의 열기를 거쳐, 가공을 거쳐,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 오랜 시간과 뜨거운 숨결은 사라지고, 남은 건 담담히 서 있는 일상의 난간뿐. 사람이라면 자랑했을 법한 이력인데, 재료는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 하천 산책로와 자연의 재료

횡단보도를 건너, 목적 없는 발길이 하천 산책로로 이어진다. 가을 햇살이 정면에서 쏟아진다. 도로 밑 작은 터널을 지날 때, 나는 빛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에 잠긴다.
하얀빛의 통로. 화이트 홀로 들어가는 느낌. 흰색은 바탕, 여백, 무(無). 그리고 채움. 빛을 지나니 그 끝에, 새로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에 붉은 열매가 달려 있다.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를 맺는 동안 나무는 한순간도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연의 재료는 스스로 색을 바꾼다. 그들의 숨결이, 시간의 빛깔로 드러나는 것이다.
화단과 산책로는 경계석으로 나뉜다. 아마도 화강암. 채석장에서 캐낸 돌이 가공되어 여기 와 있다. 경계석은 서로 다른 재료를 연결하는 카드다. 흙은 흙대로, 길은 길대로. 각자의 질서를 지킨다.
작은 다리 앞에서 멈춰 목재 기둥을 쓰다듬는다. 숲에서 자라던 나무가 건조되고 코팅을 입어, 이제는 하천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 운명을 나무는 알았을까. 난간을 떠올릴 때보다 묘한 미안함이 스친다.
양가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걷는다.


#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자, 재료는 점점 인공적인 얼굴을 한다. 플라스틱, 유리, 비닐, 시멘트 보도블록, 아스팔트, 점토블록, 폴리카보네이트… 손끝에 닿는 표면마다, 냄새마다, 온도가 다르다.
상가 벽의 화강석은 매끈하고, 빛이 머물던 자리는 미지근하다. 근생 건물, 상가주택으로 스케일이 바뀌면서 재료도 달라진다. 유리와 패널에서, 벽돌과 노출 콘크리트로. 공기는 점점 느려지고, 색은 한층 깊어진다.
골목에 들어서자, 벽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까끌까끌. 손에 고운 가루가 묻는다. 벽돌을 쌓은 규칙과 리듬이 마음을 안정시킨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성실한 축조의 기쁨이 배어 있다.
바닥에 코를 가까이 댄 듯, 냄새가 공기 중에 퍼진다. 흙, 나무, 콘크리트, 벽돌, 금속, 고무, 플라스틱… 뒤섞인 냄새는 신도시 특유의 ‘새것’ 향이다.
공사 중인 건물 앞, 가림막의 오렌지색 천이 빛을 받아 눈부시다. 완공되면 곧 사라질 입면. 짧은 운명이지만, 오늘 본 색 중 가장 강렬하다.
일요일 오후, 인적이 끊긴 거리. 붉은 네온 간판이 ‘지이잉’ 소리를 내며 떠오른다. 빛은 몽환적이고, 모호하고, 비밀스럽다. 어둠 속에서 건물들의 얼굴을 지우고, 네온사인만 둥둥 떠다닌다.
발자국 소리가 골목을 채운다. 또각, 또각, 또각… 재료는 원래 소리가 없다. 소리는, 소리를 내는 주체와 그 소리를 반사하는 재료가 만나 만들어낸다.
돌 위에서는 명료한 울림. 목재 데크 위에서는 부드럽고 삐걱거림. 자갈 위는 여백이 없다. 발자국마다 소리가 더해진다.
재료의 소리는, 재료의 본성을 드러낸다. 단단함, 무게감, 온도까지. 도시는 소리로도 읽힌다.
세상은 온갖 재료들을 꼴라주처럼 이어 붙인 거대한 패치워크다. 자연에서 태어나, 인간의 손길을 거쳐 이곳에 자리한 재료들. 그 속에는 역사와 시간, 문화와 기술, 지혜와 어리석음이 스며 있다.
나는 산책하며 묻는다. 이 재료들은, 도시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을까? 비와 바람, 계절의 빛에 마모되며, 그들도 나이 들어가는 건 아닐까?
방금 스쳐간 풍경 속에, 이미 빛바래고 갈라진 흔적이 있다. 도시는 새로움을 입고 있지만, 재료는 조용히 노화한다. 그 변화가, 이상하게 아름답다.

꼴라쥬라고 해도 믿을 만큼 복잡한 도시 풍경


집안의 재료와 색을 산책하다


도시의 재료들을 지나, 집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 익숙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민다.

온갖 냄새가 손에 배어, 욕실로 향한다. 코코넛 향 비누를 거품 내어 손을 씻는다. 거칠고 차가운 도시의 재료를 벗고, 부드러운 수건의 보송거림에 기분이 풀린다.

아, 집이구나.

컵에 물을 따른다. 작은 원을 그리며, 물이 도자기 안에서 잔잔한 소리를 낸다. 갈증이 사라지자 비로소, 생각이 돌아온다.

냉장고를 열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채소, 과일, 두부, 김치, 양념, 맥주, 막걸리… 작은 그룹으로 모여 질서를 지킨다. 도시에서 흩어진 재료를 쫓던 산책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선 모든 것이 제 자리를 갖고 있다.

팬트리에는 감자와 양파, 실온에서 후숙을 기다리는 바나나가 있다.

오늘의 메뉴는 야채전. 부추, 호박, 깻잎, 고추, 그리고 버섯. 재료를 다듬고, 밀가루와 물로 하나로 묶는다. 뜨겁게 달군 팬 위에서 반죽은 노릇하게 변해 간다. 기름에 부딪힌 재료들이 내는 소리, 고소한 냄새. 부엌이 갑자기 생명력을 얻는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따른다. 주방에서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재료는 완전히 달라진다. 부엌은 물에 강한 표면으로, 거실은 부드러운 마감으로 이루어져 있다. 밖과 달리, 집의 재료는 우리 몸 가까이 있다. 그래서 더 친숙하고, 더 부드럽다.

유리, 스틸, 가죽, 나무, 천, 종이, 자기… 모서리는 둥글고, 표면은 온화하다. 집은, 재료의 친밀함으로 우리를 품는다.



세상을 만들고 세상이 되다


재료의 범위를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까지 확장하면,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재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이나 바람조차 재료가 되어 에너지로 전환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재료는
물건을 만들고, 물건이 된다.
건축을 만들고, 건축이 된다.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된다.
음식을 만들고, 음식이 된다.
에너지를 만들고, 에너지가 된다.
형태를 만들고, 형태가 된다.
재료 없이는
세상의 시작과 끝도 없다.


재료와 색에 초점을 맞춰 세상을 바라보며 산책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관심이 있어도 세상을 그런 방식으로 낯설게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의도로 탐험을 시작해 보면, 낯섦 뒤에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낯섦은 분명, 우리가 늘 보고 듣고 느끼는 일상적인 감각 바로 뒤편에서 느낄 수 있다. 그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이질감이 차이를 인식하게 하고, 머릿속 세계에 작은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모든 것이 뒤섞이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곤 한다.

세상은 재료와 색으로 직조된 양탄자 같다. 우리는 그 위를 걷고, 손끝으로 느끼고, 발자국과 숨결을 남기며, 조금씩 세상과 하나가 된다.






keyword
이전 03화집, 또 하나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