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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06. 2022

집의 풍경들, 또 하나의 세계

그 풍경들…


열다섯 번째 세계,

집에 대한 기억 중에 유년 시절이 유독 많은 이유는 뭘까? 그만큼 오랜 시간 집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머무는 만큼 집과의 사이가 줄어들었던 거지.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집으로부터 멀어져 갔을까? 어떤 시기에는 집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채 잠시 스치듯 머물다가는 느낌이었달까? 잠만 자고 가는 하숙생이 된 듯했지.
그러다 어느샌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내 발걸음을 깨닫게 됐어. 오롯이 내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으로.

집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풍경이지만 너무 익숙해 낯설게 보는 시도 자체가 쉽지 않지. 하지만 집이라는 공간은 매우 사적이어서 다른 모든 건축 가운데 가장 특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 낯설게 볼 필요도 없이 지금 눈앞에 있는 집의 풍경이 나를 닮아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며 살아본 집들을 통해 그 풍경의 다름을 더 체감하게 됐지.

세상의 모든 집들을 떠올려봤어.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공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집’이라는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어 나갔지. 그 풍경들을 모아보고 싶었어.



나의 방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네. _ BGM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 Ryuichi Sakamoto


2022년 10월

하나의 세계를 만들다

영화 [업] 도입부에 주인공의 인생이 한 편의 짧은 영화로 흘러나오는 장면이 있다.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한 사람의 인생을 10분짜리 요약 본으로 보는 느낌은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영화 [보이 후드]는 2시간 40분 동안 한 소년의 인생을 따라간다. 그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그의 인생을 옆에서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객은 주인공의 삶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목격자가 되며 영화 속에 깊게 이입된다.

집의 빈 공간들이 조금씩 취향에 맞게 채워져 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갑자기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이 과정 또한 영화처럼 감동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 일상의 색이 덧입혀지는 과정을 한 편의 영화로 본다면 집과 사람의 삶을 함께 보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집을 가꾼다는 것은 우리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방을 가꾼다는 것은 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분류에서 벗어난 공간들

언젠가 대학 설계 수업이었던가. 복도 끝에 약간 깊숙한 공간을 만들어 의자를 하나 놓고 명상의 장소를 두고 싶다고 했더니 지도교수가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런 종류의 생각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며 그런 생각들을 봉인했었다. 정답이 없는 것들에 대해 있다고 믿고 따르던 시절이었다. 스스로의 생각과 안목에 믿음을 갖지 못했던 것뿐이다(뭐, 그럴 때이기도 했다).

거실, 침실, 욕실, 주방, 다이닝룸, 다용도실……

이런 공간의 분류에 맞게 가구를 구입하고 배치하는 일이 건축을 처음 시작하고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류는 사람의 마음을 그 틀에 가둬두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지만, 이미 그런 이름으로 분류된 공간도 이름을 따르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 틀에서 벗어나 하나하나 가꾸다 보면 나만의 갤러리, 도서관, 카페, 아지트, 작업실이 태어난다.



마음속의 집

어느 오후 문득 이곳이 삼청동 집인지 새로 이사 온 집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오래된 친숙함이 느껴졌다.

그건 집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떠나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나만의 자리가 머리와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본질에 가까운 집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경험했던 집들로부터 흘러나온 조각들이 한데 뒤섞여 그리움과 편안함 같은 감정들이 묻어 나왔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상향이라 생각하는 풍경도 설렘과 함께 섞여 들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집은 이사를 하며 집을 이리저리 옮겨도 언제나 나를 따른다. 생각하고 경험하고 실행하는 모든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자연스럽게 업데이트되어 내 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우리 안에 얼마나 커다란 세계가 있나 싶다.



쉘터, Shelter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로 분류되는 의식주를 영어로 표현하면 Clothing, Food, Shelter다. 여기에서 ‘주’는 하우스 House가 아닌 쉘터 shelter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쉘터는 비나 바람,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을 말하는데, 집보다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붕만 있다면 변덕스러운 날씨와 예기치 못한 사고로부터 우리는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완벽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 집이다. 하지만 범위를 조금 달리 생각해 보면 쉘터가 될 만한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동굴에서도 살았던 것이 인간이다.

천과 프레임으로 둘러싸인 텐트에서부터 우산, 모자, 자동차, 비를 피하다 마주친 작은 처마, 파빌리온, 정자, 넝쿨 식물 터널, 나무로 우거진 숲 속…….

영구적이지 않고 임시적이거나 한계가 많을지라도 쉘터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들은 세상에 많다.


예고도 없이 비를 만난 날이었다. 무시하기에는 굵어지는 빗방울에 급히 대책을 생각해 보다가 입고 있던 외투에서 팔을 빼내어 머리 위로 올려 몸을 덮었다. 손과 팔을 이용해 몸과 옷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비를 가장 적게 맞을 수 있도록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최적의 상황을 찾아나갔다. 피부에 걸쳐져 있던 옷(Clothing)으로부터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Shelter)으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의’를 ‘주’로 전환하다니 우리의 몸 안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본능이 그런 순간에 툭 하고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옷이라는 가장 최소의 쉘터는 지붕만 있는 정자나 다를 바 없지만 사람이 주체가 되어 움직인다는 점에서 참 흥미롭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산의 지름은 작게는 1.3m에서 크게는 1.7m에 이른다. 이 정도 크기의 공간이면 한 평(1.8x1.8)의 절반에 해당된다. 게다가 가장 효율적인 원의 형태로 되어있으니 우산 아래에서 우리의 행동은 필요한 만큼의 자율성이 주어진다. 우산 아래에서 길을 걸으며 친구와 주말 약속을 위한 전화를 하고, 인터넷으로 영화를 골라 티켓을 예약한다. 일상의 계획들을 실행하고 가끔은 스쳐 지나는 풍경을 감상하고 저녁 메뉴를 생각하고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제 움직이는 우산 쉘터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견고한 집이라는 쉘터 속에 있게 된다.

완벽한 집이 아니어도 집의 속성을 가진 장소들(shelter)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도시 안에서 특별한 일상이 아니더라도 늘 다양한 공간과 장소를 통과하며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일상의 행위들을 한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보이지 않던 세계가 의식하는 순간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된다.



그 밖의 집들

동물의 집은 인간의 집에 비하면 쉘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알을 낳기 위해, 한 계절 머물기 위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그들은 그 장소의 재료를 이용해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집을 짓는다. 경험의 축적과 명확한 목표의식은 때로 더할 나위 없이 멋있는 건축(물론 우리의 시점으로 봤을 때)으로 태어나곤 한다. 여기에서 반전은 목적을 다 하면 비바람에 자연 속으로 흩어져 다른 형태의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친환경적인 생활이다.

우리의 시작도 그러했을 것이다. 정주생활을 시작하며 ‘집’이라는 개념이 정착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집은 쉘터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모든 위험과 날씨에 강한 집, 조망이 좋은 집,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라는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하지만 우리의 집은 분해되지 않는 재료들로 집적된 기술들을 이용해 축조되었다. 인류는 재료와 기술을 포함한 모든 문명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선택에 신중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건축에 이른지도 모르겠다.

문명과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가득한 SF 장르 안에서는 새로운 재료를 이용한 독특한 형태의 건축과 도시가 등장한다. 낯선 행성에서 만난 생명체들이 그들의 환경(지구와는 다른) 속에서 가장 적절한 형태의 집을 만들고 세계를 구축해 살아가는 모습들을 이미지로 떠올리다 보면 우리의 시작도 좋은 재료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SF도 결국은 우리의 바람을 담은 것이지 다시 또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도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택할 것이다. 다소 비관적으로 이야기가 흘렀지만 시작이 잘못되어도 각성의 순간은 언제나 늦지 않다.



가장 작은 집

아주 작은 세계가 다큐 속에서, 현미경 속에서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하나의 세포가 두 개의 세포로 나뉘어 독립된 각각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본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면적이지만 그곳을 점유하고 있는 세포는 존재인 동시에 하나의 공간이기도 하다. 얇은 막으로 핵을 둘러싸고 있는 세포는 하나의 방, 하나의 집이다.

그 어떤 집보다 작지만 가장 위대하다.

생명을 품은 살아 숨 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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