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조각
풍경이 눈에 닿아 의미로 스며들기까지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속에서 풍경은 무수한 얼굴로 태어난다. 같은 장면도 사람마다 머무는 시선이 다르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조차 서로 다른 풍경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풍경 속 정보와 심상은 어디로, 어떤 형태로 도착하는 것일까.
우리가 보는 풍경은 과연 ‘있는 그대로’일까.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받던 순간이 문득 떠오른다. 렌즈를 갈아 끼우며 가까이와 멀리를 번갈아 보던 기억. 어떤 렌즈는 선명했고, 어떤 렌즈는 흐릿했으며, 때로는 낯설고 어지럽기도 했다. 중학교 이후 내 시선은 늘 ‘렌즈’라는 필터를 거쳐 세상에 닿았다. 그렇게 들어온 풍경은 실제와 조금은 달랐을지 모른다.
사진 속 장면도, 펜으로 그린 그림도, 시력 0.3의 맨눈으로 본 세상도 서로 같지 않다.
나와 타인의 시선이 어긋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어긋남은 풍경의 각도와 색채를 한층 다채롭게 한다. 나는 그 간극을 감지하는 순간을 즐긴다.
이사 이후, 낯선 동네에서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익숙함 대신 새로움이 다가오고, 나는 그 속에서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고 기록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낯선 눈으로 풍경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다. 작은 변화와 고요한 차이를 포착하며, 같은 장소에서 다른 풍경을 마주한다.
먼 곳에서는 건물이 비밀스러운 속도로 하늘을 향해 자라나고,
나무와 가로등은 땅 위에서 묵묵히 호흡을 고른다.
발걸음과 옷자락이 스쳐 지나가고,
바람은 풍경을 흔든다.
내 시선이 머무는 자리마다 또 다른 풍경이 꽃처럼 피어난다.
밤, 고요한 밤이다. 삼청동과 지축, 두 곳의 밤은 모두 고요하지만, 그 고요에는 서로 다른 결이 깃들어 있다. 시간이 쌓일수록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어젯밤 창문을 여는 순간, 나무 타는 냄새가 스며들었다. 13층, 깊은 밤. 높은 곳임에도 냄새는 코끝까지 다가왔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향기였으나, 어린 시절 시골의 밤이 불현듯 떠올랐다. 굳어 있던 흑백의 기억 속 풍경이 냄새를 타고 고요히 되살아났다.
새벽녘, 아파트 사이로 닭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뜻밖의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산자락에는 오래 이어져온 일상이 켜켜이 배어 있다. 닭 울음, 개 짖는 소리, 나무 타는 냄새 같은 시골의 풍경이 새로 지어진 신도시와 묘하게 겹쳐지며 도시의 긴장을 풀어준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냄새가 오래된 기억을 흔들고,
사각사각, 나뭇잎이 부딪히며 숲의 향기를 내뿜는다.
도시의 고요함은 밤과 새벽에 찾아온다. 낮 동안 쉼 없이 움직이던 도시가 멈추며 드러나는 정적. 멀리서는 경적과 오토바이, 웃음소리가 흘러오고, 가까이에서는 실외기와 기계음 같은 익숙한 소리들이 은근히 깔린다. 그러나 이 소리들은 오히려 백색소음이 되어 작업에 몰입하기 좋은 배경이 된다.
타닥타닥, 작업실을 울리는 키보드 소리 위로 문장이 새겨지고,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펜 끝에서 그림이 태어난다.
삼청동의 고요는 도시의 결을 품고, 지축의 고요는 시골의 여유를 머금는다. 나는 그 차이를 따라가며 그 사이에서 나만의 호흡을 찾는다.
멀리 북한산을 바라본다. 가까운 풍경에 시선을 두었던 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원경이 일상에 깊숙이 스민다. 매일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북한산을 바라보는 순간, 고요와 자유가 나란히 깃든다.
신도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기반 시설은 미완성이고, 공사 소음과 먼지가 일상이다. 새것으로 가득한 도시에 사람들의 삶이 이제 막 스며들고 있다.
논밭이던 땅은 중심이 되었고,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은 가장자리로 떠나야 했다. 꽃시장에서 만난 상인은 이곳이 한때 그들의 터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새 삶의 기쁨 뒤에는 누군가의 쓸쓸함이 숨어 있었다.
그들의 동네 이야기는 우리가 모르는 과거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면 그 기억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억이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듯, 땅의 역사 또한 차츰 희미해진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새 삶을 시작한다.
시간이 공존하는 땅 위에서 나는 풍경의 오고감, 나타남과 사라짐을 목격한다.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솟아오른다. 겹겹이 쌓인 단지 사이로 또 다른 건물이 올라간다. 마치 3D 프로그램에서 평면이 위로 뽑혀 오르는 듯하다. 그곳이 곧 누군가의 삶이 시작될 자리라는 사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노란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팔이 좌우로 움직이며 무거운 자재를 옮기고, 다시 제자리에 선다. 햇빛에 반짝이는 크레인, 지는 해, 붉게 물든 하늘. 풍경은 도시가 자라는 순간을 고스란히 품는다. 매 순간 유일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신도시는 앞으로 나아간다.
산책길에서 변화들을 가까이서 바라본다. 도로, 난간, 신호등, 버스정류장, 아파트, 근생 건물… 모두 새것이다. 비닐조차 벗기지 않은 것들까지. 낯설고 어색하지만, 도시는 분명 살아 움직인다. 계획된 퍼즐이 아니라, 자라나는 유기체처럼.
이제 공사 가림막이 걷히고, ‘임대’ 간판이 걸렸다. 지하철역 주변으로 상가들이 늘어나며 산책의 소소한 즐거움이 생겼다. 미용실, 카페, 김밥집, 부동산, 병원, 치킨집… 반복되지만 각자의 개성을 지닌 가게들.
창문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빈 공간이던 아파트가 소리로 채워진다. 이곳은 ‘새것’을 탐험하기 좋은 장소이자, 새것이 익숙해지는 과정을 지켜보기에 더없이 적합한 곳이다.
속도를 내기 시작한 신도시의 생기와 일상의 호흡이 차츰 제자리를 찾아간다.
시골의 밤은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다. 새와 곤충, 가축과 야생 동물들의 울음이 도시의 소란을 대신한다. 개구리, 귀뚜라미, 매미의 합창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꼭두새벽, 아파트 틈을 뚫고 닭 울음소리가 퍼져나온다. 그 울림은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새삼 일깨운다.
문득 시에나와 피렌체의 전설이 떠오른다. 닭 울음으로 도시의 경계를 정했다는 이야기.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은 묘하게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경계에 살고 있다. 창릉천을 사이에 두고 은평뉴타운과 지축지구가 마주하는 곳. 경계를 오가는 일이 마치 놀이처럼 느껴져 자주 건넌다. 생활의 온기가 깃든 가게들을 따라 은평뉴타운을 걷다 보면, 오래된 아파트 중정에 모여 웃음소리 나누는 사람들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오랜 시간 쌓인 생활감과 생동감이 동네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작은 가게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다시 하천을 건너 새것으로 가득한 동네를 걷는다. 동네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 나는 그 사실을 되새기며, 바뀐 것이 없는지 기웃거리며 산책을 이어간다.
이곳과 저곳에 한 발씩 걸친 채, 나는 경계 위를 걷는다.
두 개의 풍경, 그리고 그 사이의 풍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 멈춰 있던 바람이 방향을 정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곧 비를 데려올 것이다.
창밖은 어둑해지고, 검은 구름이 아파트 위로 빠르게 흘러간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풍경은 빗줄기의 필터에 가려지고, 윤곽은 흐려진다.
비가 내릴 때마다 여름은 조금씩 물러나고, 계절은 가을로 접어든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여름의 열기가 한 겹 벗겨진 듯하다. 알록달록하던 여름옷은 자취를 감추고, 플랫폼은 모노톤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숲과 나무는 여전히 여름빛이지만, 어제보다 가을에 가까운 색을 띤다. 계절은 그렇게 조금씩 세상의 모든 색을 바꿔 나간다.
오늘의 풍경을 바라본다. 어제와는 다른 시선으로.
일상의 리듬, 낯섦에서 오는 간극, 작은 떨림.
새로운 결이 시선에 새겨지고, 풍경은 그 결을 따라 흐른다.
매일 다른 시선, 다른 풍경.
그 조각들이 모여 나만의 세계가 그려진다.
세상은 각자의 풍경들이 모여 이루는 퍼즐.
누구도 다 맞출 수 없지만, 그만큼 다채롭고 아름다운 퍼즐.
내일은 또 어떤 풍경을 마주할까.
오늘의 시선과 풍경을 기록하며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