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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예술, 일상의 결

일곱 번째 조각

by 귀리


예술은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은 예술의 뿌리가 된다.


어린 시절, 모래밭에서 친구들과 도시를 짓고, 벽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의 일상은 놀이처럼 자유로웠고, 생각은 구속 없이 흩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감각과 멀어졌다. 두고 지나쳐버린 듯, 알지 못한 사이 건조한 일상과 재미없는 어른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문득,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싶어졌다. 계기는 한 편의 영화였다. 『패터슨』 속 버스 운전사는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떠오른 단어들을 시로 옮긴다. 어제 쓰던 시에 오늘의 문장을 덧붙이며, 끝나지 않는 시를 써 내려간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글도, 무엇이 되고자 쓰는 시도 아니다. 단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조금씩 다른 순간들을 길어 올릴 뿐이다. 그렇게 얻어진 언어들은 은은하게 빛을 내며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일상의 결을 새롭게 새긴다.


일상의 예술과 직업으로서의 예술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 스스로 선택하는 예술의 방식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 경계에서 놀이를 하듯, 일상의 틀을 조금씩 흔든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연습, 반복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는 시도. 질문은 글과 그림으로 이어지고, 매일의 기록은 조용히 길을 안내한다.
‘작은 예술을 만들어가는 일’은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된다.
일상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며, 예술에 닿는 특별한 순간들을 따라간다.


뒷걸음질, 되찾은 자리


천천히 걸음을 뒤로 옮긴다.
앞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되돌릴 때, 비로소 지금 이 자리가 주어진다. 뒷걸음질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흘러가 버린 시간을 다시 불러들이는 행위이자 잃어버린 자신을 회복하는 방식이다. 지나간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만든다.
파리 유학 시절, 발걸음을 되돌리며 걷는 일은 자연스러운 습관이었다. 눈앞의 상황에 반응하기보다, 마음과 생각이 이끄는 대로 길을 걸었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우연 속에서 일상의 빛을 발견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에 몰두하자 속도와 효율이 일상을 지배했고, 생활은 점점 메말라 갔다. 그러나 뒷걸음질하던 순간은 여전히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감각을 떠올리며 다시 걸음을 되돌린다.
골동품 가게 앞에서, 하천을 따라 걷다가, 다리 밑에서, 햇빛에 반사된 웅덩이 앞에서—작은 움직임 하나가 시간을 거슬러 잃어버린 여유를 되찾게 한다.
그 순간, 평범한 일상은 예술로 가득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앞으로 향하는 걸음이 다음을 예정한다면, 뒤로 걷는 행위는 지금의 풍경을 붙잡는다.
뒷걸음질은 시간을 되돌리고, 풍경 속에 잊혔던 감각을 다시 깨운다.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


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물건들에 매료된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낡은 망치처럼, 필요한 순간 만들어내는 사물들.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상상하는 과정은 발명과 경계를 넘는 경험이 된다. 손으로 직접 만지고, 생각을 실현하며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순간, 일상은 더욱 풍부해진다.

드로잉으로 이어진 상상은 ‘몸에 그리는 그림, 타투’로 확장된다.

옷소매를 걷고 팔뚝에 펜을 대자, 종이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전해진다. 피부 결을 따라 움직이는 선은 손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새 몇 마리와 꽃, 초승달을 손등에 그려 넣고 팔을 움직이자, 주름과 모공, 힘줄의 굴곡에 따라 그림은 본래 형태를 일그러뜨리며 변신한다. 새는 날아오르고, 꽃은 길게 늘어나고, 초승달은 활짝 웃는 입처럼 보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순간마다 작은 행위 예술의 즐거움이 찾아왔다.

며칠 전에는 진관사에서 주운 기와 조각에 검은 펜으로 색을 칠하고, 금색 펜으로 달과 별을 그려 넣었다. 작은 밤의 세계가 손바닥 위로 펼쳐졌다.

그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바닥이나 벽, 돌멩이, 나뭇가지, 흙—장소와 도구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그림으로 만들던 시간들. 낯선 표면 위 드로잉은 나를 다시 그 시절의 자유로움으로 데려갔고, 경계 밖으로 이끌었다. 마치 묶여 있던 자리를 벗어나는 듯, 새로운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평범함의 변주


평범한 순간에도 특별함은 숨어 있다.
지하철로 향하는 길, 빗방울이 안경 위로 흩어져 풍경을 일그러뜨린다.
세상이 잠시 멈춘 듯, 선명했던 경계들이 사라지고 흐릿한 색의 얼룩으로 번져 간다. 안경을 닦지 않은 채 걸음을 옮기자, 빗방울이 스프링클러처럼 흩어지며 공기 속에서 작은 점들이 춤을 춘다.
그 풍경은 화가의 붓끝이 아닌 우연이 만든 점묘화 같았다.
순간, 눈앞의 흔한 장면이 그림이 되고, 일상은 미묘하게 달라졌다.
이런 발견은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된다.
우연히 남겨진 액체의 자국이 반복된 관찰 끝에 무늬가 되고, 무늬는 곧 판화의 시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술의 기법과 사조는 어느 날 한 번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켜켜이 쌓인 발견과 각성이 새로운 형식을 낳았다. 그렇듯 작은 순간 하나가, 익숙한 풍경을 바꾸어 놓는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한 나무의 그림자, 바람에 흩날리는 천 조각, 공사장 크레인의 반복되는 움직임,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리듬— 모두가 또 다른 시작의 불씨가 된다.
그 순간들은 단순히 스쳐가는 풍경이 아니라, 예술로, 과학으로, 철학으로 이어지는 문턱이 된다.
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찰나,
우연이 선물처럼 내려앉는 순간,
일상은 다시 노래처럼, 시처럼 깨어난다.



일상을 여는 감각


예술은 느낀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 그 간극에서 시작된다.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고, 말과 글로 표현하며 드러내는 순간, 감각은 그 간극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일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작은 발견을 이어가는 동안, 우리는 이미 작은 예술을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결이 다른 세 가지 감각을 따라가며, 일상을 부드럽게 열어본다.


시간 감각
한여름 햇살에 지친 몸이 느리게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책상 앞에 앉아 무심히 선을 긋고, 낙서를 이어가다 보면, 흘린 잉크 방울과 연필 자국에서 예상치 못한 모양을 발견한다.
시간은 마치 달리의 시계처럼 ‘뚝뚝’ 흘러내리지만, 손끝의 온도와 종이 위 자국, 공기의 무게가 그 흐름을 증명한다.
숫자로 세는 시간은 사라져도, 작은 발견 속에서 시간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별다른 목적 없이,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작은 모양과 패턴으로 스스로의 예술을 만들어 간다.


소리 감각
새벽,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기척에 눈이 살짝 떠지지만 곧 감는다.
눈을 감고 귀를 열면, 소리는 더욱 또렷해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주방의 그릇, ‘탁’ 컵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엄마의 목소리.
그 소리들을 반복하며, 리듬과 패턴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온돌방에서 낮잠을 자며 스며든 소리들의 기억이 겹쳐 온다.
소리는 세상을 둥글게 감싸 안고, 음악은 배경을 넘어 하나의 공간이 된다.
헤드폰으로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 소리가 방 안을 ‘스르륵’ 채우며 몸과 마음을 파도처럼 흔든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험은, 시각이 아닌 감각에서 길어 올린 또 하나의 일상의 예술이다.


계절 감각
여름이면 모든 건물에 냉방과 난방, 공기 청정기가 돌아간다.
마치 거대한 냉장고 안에 들어간 듯, 공기는 차갑게 갇히고 습기는 빨려 나간다.
최적화된 환경 속, 우리는 진열된 채소처럼 규격화된 일상을 살아간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면, 밀폐된 쾌적함이 탁 빠져나가며 새로운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빗물 맺힌 잎사귀, 흙 내음, 스르륵 방 안으로 스며드는 밤공기 속 꽃 향기—
백색소음처럼 배경이 된 개구리 합창이 잦아들고, 새로운 소리들이 자리 잡는다.
잠들어 있던 감각이 깨어나,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미세한 입자가 코와 모공을 적신다.
반복되는 듯해도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의 감각을 붙잡으며, 우리는 작은 예술적 발견을 이어가며 일상을 조용히 연다.

시선과 감각을 열고, 시원한 여름 밤 공기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긴다.



반대로 걷기


정해진 기준, 절대적인 수치, 다수의 의견, 익숙한 관습의 반대편을 향해 걸어왔다.
속도와 거리를 맞추는 정확함은 늘 어려웠지만, 그것을 부족함으로 여겨본 적은 없다.

사람마다 감각의 자리는 다르게 놓여 있고, 때로는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치는 절대가 아니라, 그 너머의 의미를 비추는 그림자일 뿐이었다.

건축을 시작한 뒤에도 이 습관은 이어졌다.

틀에 따르지 않는 선택은 불편과 부작용을 동반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순간을 전율처럼 선사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늘 아웃사이더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깥에 서 있는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감각은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도 스며들었다.

국도변 변두리 가게에 겹겹이 쌓인, 한때는 빛나던 물건들 앞에 서면 묘한 평온함이 찾아왔다.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 곧 가치의 정점으로 환원되는 현실은 덧없지만, 그 덧없음 속에서 오히려 자유가 깃든다.

유행이 지나고 손길에서 멀어진 자리에서, 사물은 다시 제 본래의 숨결을 되찾는 듯하다.
그 틈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난다.

녹슨 못을 빼내는 ‘탁’ 소리, 오래된 나무에서 번지는 은은한 송진 냄새—

낡음을 ‘사각사각’ 갈아내며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다른 쓰임으로 변신시키고, 취향의 결에 맞추어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 작은 변주의 기쁨 속에서, 어딘가에서 제2의 삶을 얻은 물건들이 은은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작은 예술, 일상의 결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일상의 결을 새로 짜는 일과도 같다.
유학 시절, 무심히 쓰던 단어들이 낯선 프랑스어 속에서 다시 피어났다.
입구, 출구, 문, 창, 계단—건축의 언어마저 낯선 울림을 띠자,
익숙한 풍경 속에 잠들어 있던 질문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언어의 힘은 단어 자체에 있지 않았다.
그 너머에서, 또 다른 세계가 은밀히 문을 열고 있었다.


며칠 전,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멈춰 서 있던 나는
노트 위에 단어 하나를 적었다. 길.
사람과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아니라면,
땅 위가 아닌 다른 공간이라면,
너비조차 필요하지 않다면—
길은 어떤 모양으로 태어날까.
굳은 틀을 흘려보내자,
사유는 바람처럼 흘러가며 자유를 배웠다.


이 작은 실험은 일상을 예술처럼 바라보는 연습이었다.
어린 시절, 바닥과 벽, 돌멩이와 기와 조각 위에 그림을 그리던 순간처럼,
사소한 사물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평범한 하루는 전혀 다른 빛을 품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스쳐 지나가는 것—
그 작은 파편들에 잠시 머무는 일,
그 순간이 곧 삶의 결을 다시 짜는 실마리가 된다.


완벽한 준비는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시도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남기는 흔적.
작은 변주 속에서 세계와 나를 다시 바라볼 때,
예술과 철학은 일상 속에서 천천히 스며들며,
우리가 아직 닿지 않은 세계를 향해 조용히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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