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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Mar 22. 2022

‘이사’라는 그 모든 의식

그 일상들…


일곱 번째 세계,

한참을 이사에 집중해있다 이곳에 돌아와 보니 그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와 있더라. 사는 곳은 달라졌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그대로라는 것이 뭔가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았어. 가상의 세계라는 것은 참 묘하지?
요즘 안정감이라는 느낌이 좀 필요했거든. 물리적으로 보이는 세계에서는 아니지만 ‘우린 이곳에서 서로 연결되어있구나’하고 생각하면 뭔가 관계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거든.

오늘은 ‘이사’라는 큰 이벤트를 경험하며 생각했던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해. 하나의 커다란 의식처럼 느껴졌거든.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을까 세어보니 열여섯 번의 이사를 했더라. 하지만 매번 다른 이유에서, 다른 무게 감이었어. 혼자일 때, 둘일 때, 가족 모두 함께일 때도 있었지.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 낯선 도시를 향하기도 했고, 살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기도 했지. 그래도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은 서울이었어. 서울을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엔 가장 의외의 이사였지. 다세대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 방식이 이제까지와는 달라졌다는 것도 큰 변화였고, 무엇보다 누구의 흔적도 없는 새 집으로의 이사라는 점에서 이사의 과정이 크게 와닿았거든. 그 시간들을 기록하는 동안 왠지 내 삶의 한 챕터가 넘어간 듯했지.



2022년 3월

집은 또다른 풍경을 우리에게… _ BGM # Moments | FKJ


이사’라는 의식

많은 것을 버리고 비우고 채웠다. 이사란 이벤트는 이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밀도 있게 의식적으로 하게 한다.

버리고 채우는 기준은 심플했다. 채식을 시작할 때처럼 재료에 대한 기준이 우선시되었기에 지속 가능한 재료인가가 큰 이슈였다. 플라스틱을 버리고 나무와 스테인리스 재질의 물건들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지난 몇십 년 동안 버리기를 주저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떠나보내고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할 물건들이라 생각되는 것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일상이, 삶이 한 번 정리된 느낌이다.

‘이사’라는 의식.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 들뜬 모든 과정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집에 안착하다

낯선 집. 낯선 방.

회전의자에 앉아 방안을 빙그르르 돌아보며 공간 구석구석에 시선을 건넨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듯한 마음에 세계 곳곳으로부터 수신되는 라디오 음악들을 공간 안에 흘려보낸다. 먼 곳으로부터 도착한 쇼팽과 재즈와 보사노바가 집 안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여백들을 채운다.

새 집에 이사 오기 전 베이킹 아웃을 했다. 난방 온도를 최대치로 올려 새집 증후군을 잡는 이 행위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새것이지만 좋지 않은 것들을 집에서 내보내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는 일상의 공기들을 집에 다시 불어넣었다. 생명을 불어넣듯이. 이것도 일종의 의식이나 다름없다.

문득 이탈리아 무라노 섬에서 보았던 유리 공예의 작업 풍경이 떠올랐다. 말랑해진 액체화된 유리에 숨을 불어넣어 유리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그릇으로 태어나게 하는 장인들의 작업은 인상적이었다. 작업장을 떠난 그릇들은 장식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누군가의 액세서리로, 어딘 가에선 화사한 봄 꽃이 꽂혀 있을 테고, 요리를 담는 그릇으로 태어날 것이다. 집을 포함한 모든 그릇은 그곳에 무엇인가 담기는 순간부터 삶이 시작된다.

그렇게 이 집은 우리의 집이 되어가는 중이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페인트 작업을 할 때 첫 번째 칠은 바탕을 만드는 초벌에 해당된다. 채소를 초벌로 숨을 죽이는 것을 초벌 절임이라 한다.

처음. 초고. 초벌.

시작은 모두 완벽을 추구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작은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살림살이들이 채워져 있지만 많은 여백을 지닌 채 시작하고 있다. 시작은 집으로 이사 온 날과 같은 어느 한 시점이 아닐 것이다. 끝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집에 안착했다고 느끼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몇 번이고 계속 갱신되는 그 감각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공간의 변화가 가져오는 것들

조각난 생각, 글, 고민, 웃음, 슬픔, 즐거움.

흩어져 있던 모든 것들이 응집력을 갖고 하나의 방 안으로 모여든다. 중심이 있는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했던 것 같다. 하나로 모여든 것들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버릴 것을 버리고, 모을 것을 모으고, 새로 만들 것을 만든다.

공간이 달라짐으로 작업이 미세하게 달라질 것임을 예감한다. 그리고 그 미세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전과의 갭을 드러내며 나의 일상과 작업은 방향을 틀 것이다.

이 전환이 좋다. 왜냐하면 살아갈수록 일상에 변화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두 개의 의자

앉다, 서다, 걷다와 같은 행위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의 무게 중심이 달라진다. 무게 중심이 어디에 쏠리는지에 따라 편함과 불편함이 결정된다.

서 있거나 걷는 행위는 온전히 행위의 주체,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자세가 좋으면 중심이 잘 맞아 몸이 편안하고 운동 효과가 좋아진다. 하지만 앉는 행위는 ‘의자’라는 도구의 힘을 빌려 중심을 잡는다. 뭔가를 수납하고 정리하고 장식하는 가구와는 달리 우리 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집을 이루는 가구 중 가장 중요하다.

오래된 정서를 즐기기 위해 불편함을 온전히 감수하며 지냈던 삼청동의 일상을 뒤로하고, 편리함을 전제로 한 새 집으로의 이사와 함께 의자 두 개를 마련했다. 책상에 어울리지 않던 의자를 식탁 옆으로 보내 마침내 자신의 자리를 찾게 했다. 대신 회전, 높낮이 조절, 등받이가 유연한 새로운 책상용 의자를 마련했다.

걷는 것이 생각을 흐르게 하는 것처럼 의자를 회전하는 것도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의자를 계속 돌려가며 공간 전체를 인식하면서 생각에 여백이 끼어드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는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밀착되었던 등과 의자는 멀어져 각도는 점점 느슨해진다. 다시 바짝 당겨 자세를 고쳐 앉는다.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중심이 만들어진다. 그렇다. 의자는 늘 변화하는 하나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의 주체가 사람이기도 하다. 이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드로잉을 하고 작업을 하게 되겠지.

또 하나의 의자는 침대 옆 암체어다. 등의 각도가 98도에서 135도 사이를 오가는 좀 더 릴랙스 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이 의자는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스툴과 한 세트다. 의자에 따라 다리를 놓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앉다와 눕다 사이에 있는 이 의자에게 스툴은 영혼의 단짝, 숙명과도 같은 관계다. 이 어중간한 하지만 안락한 의자에서 수많은 낮과 밤과 새벽을 책과 함께, 음악과 함께 때론 깜빡 졸음과 함께 보내게 되겠지.

의자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벌써부터 의자 두 개가 살아있는 존재처럼 스윽 다가온다.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이쯤 되니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앞으로 잘 부탁할게.”



일상의 바운더리를 만들다

서울의 경계를 넘어 고양시 지축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서울을 떠나 파리에서 살았던 것만큼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의 변화다. 기반 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동네라 생활이 정착되어있는 기존 동네들을 일상의 바운더리에 넣어야 일상이 풍요로워질 것임을 감지하며 지도를 탐색하는 중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위치한 곳이지만 그다지 경계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도시의 경계는 비타협적인 행정체계의 함정에 빠져있고, 불합리한 교통체계와 불연속적인 도시 풍경들로 가득하지만 기회와 가능성이 넘쳐나기도 한다.

조금 걸어서 경계를 넘어서면 편리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만끽할 수 있다. 아주 약간의 수고스러움이 필요할 뿐이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하다 보면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쉬워지게 된다. 경계 양쪽 도시 모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스스로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집으로부터 반경 몇 미터까지를 동네로 규정할 것인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동네를 탐험하면 할수록 점점 확장되어간다. 걸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장소들을 탐색 중이다. 동네 이곳저곳을 빠른 템포로 걸으며 집을 중심으로 머릿속 지도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빠른 템포로 걸으면 풍경의 디테일이 그만큼 생략되지만 대신 풍경 전체의 그림이 한눈에 펼쳐지게 된다.

빨리 안정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환경을 탐험하고자 하는 두 마음이 충돌하며 매일매일 그렇게 일상의 바운더리를 만들어가는 요즘이다.




P.S.
집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너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그 집과 동네가 어떤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한 동네에 살며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 좀 더 즐거울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이곳에 온다면 멋진 동네 탐방을 하게 해 줄 테니 그 순간을 기대해보자.
아직 낯선 방과 집 안을 두리번거리며 동네를 배회하며 다소 어수선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한 한 때를 보내고 있음을…
잘 지내고 있다고 나의 안부를 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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