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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들다, 일상의 리듬에

아홉 번째 조각

by 귀리

무빙워크 위, 삶의 리듬


삶은 공항의 무빙워크와 닮아 있다. 저절로 흐르지만, 우리는 그 위에서 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때로는 거꾸로 나아가기도 한다.

무빙워크 위에서는 가만히 서 있어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누군가는 재촉하며 발걸음을 재고, 누군가는 천천히 호흡하며 걷고, 또 누군가는 잠시 멈춰 공항 풍경에 젖어든다. 공기 속에 스며드는 여행의 냄새, 발밑에서 전해지는 바닥의 진동, 귀를 간질이는 작은 바람결까지도 리듬의 일부가 된다.


중요한 것은 속도를 감각하고, 조율하는 일이다.

리듬이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찾아내는 행위다.


이어폰 속 잔잔한 멜로디에 맞춰 걷는다. 발끝이 바닥과 스치며 스르륵 소리를 내고, 주머니 속 손가락이 톡톡 리듬을 탄다. 그 소리들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이 태어난다.

리듬을 느낀다는 것은 지금의 박자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조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내 발걸음이 어떤 박자를 타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 삶은 조금 더 선명하고 가벼워진다. 걸음을 보태며 속도를 조절해도 좋고, 잠시 쉬어가도 좋다. 본질은 목적지가 아니라, 이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속에 있다.


삶의 박자는 무빙워크 위를 걷는 발걸음과 닮았다. 악센트를 찍듯 순간순간 주의를 기울이고, 쉼표에서 숨을 고르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리듬을 비튼다. 스타카토처럼 날카로운 순간도, 레가토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간도 품는다. 루바토처럼 속도를 자유롭게 늘였다 줄이는 날들, 강세를 찍듯 의식을 집중하는 순간까지, 모두 나만의 박자를 만들어낸다.


바람이 숨결에 닿을 때,

작은 파동이 하루의 흐름을 바꾼다.

오늘의 걸음이 내일을 만들고,

작은 호흡이 하루 전체에 스며든다.

그렇게 삶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흐른다.



계절의 여백에 스며


계절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달력은 12월부터 2월까지를 겨울이라 부르지만, 계절은 매일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옷장을 열 때마다 그날의 날씨에 맞는 옷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가을과 겨울의 옷이 나란히 걸려 있다가, 어느새 겨울과 봄의 옷이 겹친다. 옷장 속 풍경은 늘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계절과 계절 사이, 그곳에 흐르는 여백은 변화무쌍하면서도 고요하다. 겨울의 초입, 멀리서 봄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뒤를 이어 여름과 가을, 또 다른 겨울이 차례로 다가온다. 계절의 흐름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고요가 번진다. 모든 것은 자기 속도로 흐르고, 필요한 시간을 지나면 결국 제 모습을 드러낸다. 점 하나로 시작된 변화가 어느새 마음의 균형을 새롭게 만든다. ‘변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이미 새 계절은 도착해 있다.

길가에 말라붙은 풀잎 위로 서리가 내려앉고, 물 표면에는 켜켜이 투명한 얼음이 쌓인다. 공기와 수분을 머금은 채 보석처럼 빛나는 결정체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눈은 땅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차가움, 입김에 섞여 퍼지는 공기, 눈 밑에서 살짝 울리는 발자국 소리까지—모든 감각이 겨울을 드러낸다.

겨울의 표피는 하얗고 투명하다.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여전히 생명이 고요히 숨 쉰다. 식물과 곤충, 동물들은 겨울만큼의 에너지를 조금씩 나누어 쓰며 다가올 봄을 준비한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오래된 집의 틈새를 메우고, 수도관을 단열재로 감싸며 계절을 맞이한다. 작은 구멍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막고, 단열이 부족한 창 앞에는 투명한 보호막을 씌운다. 계절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겨울을 맞이하는 사이 깨닫는다. 겨울을 건너는 일은 어쩌면 ‘리듬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눈 덮인 지붕 위, 바람에 흩날리는 눈과 서리, 먼지조차 달빛 속에서 은밀히 리듬을 만들어낸다.



리듬 속에서 키보드를


최근 읽은 독특한 책 한 권이 떠오른다.

한 남자에게 벌어진 반나절의 사건을 아흔아홉 가지 변주로 풀어낸 소설. 단순한 이야기도 결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흥미롭게도, 이 소설은 작가가 바흐의 변주곡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쓰였다.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수십 가지 변주를 만들어냈지만, 각 변주는 뚜렷한 개성을 지니면서도 전체의 통일감을 잃지 않는다. 전혀 다른 장르와 결로 펼쳐지는 변주 속에서도, 주제는 자유로운 순간 속에서 유기적인 흐름을 유지한다.

나 역시 글을 쓰며 비슷한 경험을 한다.

아비샤이 코헨 트리오의 재즈를 들으며 키보드 위를 즉흥적으로 두드리던 날.

다다다, 다다다.
손끝에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바람 속에 흩어진 기억들이
낮게 깔린 빛 위에서
천천히 모양을 바꾼다


나는 그 문장을 그대로 두기 보다, 여러 결로 변주해본다.


바람 속 기억, 낮게 깔린 빛 속으로
천천히 모양을 바꾸며 스며든다
낮게 깔린 빛 위, 바람 속 기억이 흩어진다


평소와는 다른 결이 묻어나는 문장, 순간순간의 변주는 창작의 즐거움이 된다. 하나의 주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는 과정, 그것이 글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글자들이 꿈틀꿈틀 의지를 가진 것처럼 튀어 오른다.

걸으며 문득 떠오르는 생각, 음악의 변주가 만들어내는 감정, 사소한 몸짓 하나까지도 모두 이 리드미컬한 흐름 속에 스며든다. 작은 변주 하나가 하루 전체의 결을 흔들며, 하루를 온전히 느끼게 한다. 음악과 글, 산책과 일상은 모두 미묘한 결로 서로 연결된다.

글이 매끄럽지 않거나 막힌 순간에도, 즉흥적인 변주 속에서 뜻밖의 문장 하나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정공법이든 우회든,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하고, 변주 속 흐름에 몸을 맡겨 자유롭게 작업하는 것. 이것이 창작이 건네는 은밀한 지혜다.



다시, 삶의 리듬 속에


리듬, 감각, 변주. 요즘 유난히 마음을 사로잡는 단어들이다. 익숙한 일상도 작은 차이 하나로 전혀 다른 결을 띠는 순간이 있다. 같은 멜로디도 연주자의 숨결에 따라 달라지고, 그 변화는 듣는 이의 감각을 다시 열어젖힌다.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익숙한 취향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효과적인 변주다. 음악, 발걸음, 글쓰기, 산책. 모든 것이 하나의 리듬으로 합쳐진다.

삶의 속도와 리듬을 조금 비틀어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흘러간다. 삶은 하나의 거대한 리듬이다. 무빙워크처럼 흘러가는 시간, 계절처럼 되풀이되는 순환, 음악처럼 변주되는 일상. 같은 하루도, 같은 겨울도, 같은 글도, 리듬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을 띤다. 사람은 자기만의 리듬과 템포를 지니고, 세상은 그 리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그 리듬을 감각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박자를 찾아내는 것. 오늘도 나는 무빙워크 위에 서서, 겨울을 지나, 리듬 속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결을 느낀다. 그 결은 바람결처럼, 눈빛처럼, 가만히 스며든다.



봄, 리듬, 그리고 삶


“I want to do with you what spring does with the cherry trees.”

— Pablo Neruda


봄이 벚나무에게 속삭이며 생명을 불어넣듯,
계절이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운다.

겨울이 남긴 차가움이 사라지고,
햇살이 땅을 살짝 데우며
눈 아래 숨어 있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켠다.
몸에 스며든 일상의 리듬은 우리의 삶 속에서 숨 쉬며
결을 만들고, 숨은 박자를 새긴다.


발끝에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
손끝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공기,
귓가를 스치는 새들의 지저귐,
코끝에 스며드는 흙냄새와 꽃향기,
살짝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

이 모든 순간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삶의 리듬을 조용히 쌓아간다.


시간은 여전히 흐르지만,
이제는 겨울과는 다른 색과 소리, 향기로

나만의 리듬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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