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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Sep 15. 2022

지금, 동네 풍경

그 풍경들…


열세 번째 세계,

언젠가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할 때였어. 눈에 맞는 렌즈를 찾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렌즈를 갖다 대보며 가까이, 멀리 바라보다가 렌즈를 낀 채로 앉고 서고 걸어보며 잘 보이는지, 어지럽지 않은지와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지. 세상이 더 뚜렷해 보이거나 흐릿해 보이고, 어지럽거나 기묘해 보였어.
문득 안경을 쓰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즈음부터 렌즈를 통해 세상을 봤다는 것을 깨달았지. 아, 나의 시선은 안경 렌즈라는 필터에 의해 한번 더 걸러져 보였던 거구나. 렌즈를 통과해 눈으로 들어온 수많은 풍경들은 실제 세계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진으로 담은 세상도, 펜으로 담은 세상도, 난시가 섞인 좌우 시력 0.3인 원래 내 눈도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았지.
무엇을 통해 보는지에 따라 풍경은 달리 보이잖아.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같은 풍경을 보고 있어도 모든 사람이 보는 풍경은 다르고, 과거의 수많은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도 간극이 있을 정도니……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보는 세상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초조하거나 우쭐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저 차이를 감지하는 일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낯선 동네에 정착해 살아가면서 매일 달라져가는 풍경을 보며 여러 감정들이 떠올랐어. 이미 오래전에 구축되어 일상이 켜켜이 쌓여온 동네에서 모든 것이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동네로의 전환은 새로움 그 이상이었지. 낯설었어. 그리고 그 동네 풍경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도 달라졌고.
그 변화들을 따라가 봤어.
내가 보는 시선을 그대로 표현해내고 싶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로는 참 부족했던 그 풍경의 변화를.



나뭇잎, 그림자, 꽃.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색이 절정에 이르렀네. _ BGM #  Something New | Anthony Lazaro


2022년 9월

차이를 감지하다

밤, 고요한 밤이다.

삼청동과 이곳 지축의 밤 모두 고요하지만 뭔가 다른 고요함이다. 일상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그곳과 이곳의 차이를 감지하게 되는 것 같다.

어젯밤,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나무를 태우는 냄새가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는 듯했다. 13층 그리고 밤. 이 시간에 게다가 이 높은 곳까지 그런 냄새가 날 리가 없음에도 코 안으로 냄새가 밀고 들어왔다. 공기 중에 희석되어 냄새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맡는 순간 어린 시절 시골의 정서가 떠올랐다. 박제되어있는 흑백사진처럼 냄새가 풍경으로 그려지는 듯했다.


이사한 다음 날 아침에 닭 우는 소리가 아파트 사이를 뚫고 멀리서 들려왔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산의 끝자락마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이 뿌리 깊게 배어있어 닭 소리, 개 짖는 소리, 나무 태우는 냄새 같은 시골의 풍경이 새것이 가득한 신도시 속에 묘하게 공존하며 도시 생활의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놓게 해 주는 것 같다.

새것들로 가득한 이 동네가 덜 경직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북한산 자락에 위치해 도로와 블록의 형태가 산의 지형에 순응해 배치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도를 줌 아웃해 북한산 주변의 동네들을 관찰해보면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길과 동네가 만들어져 있다.


양재동에선 타워 팰리스, 이태원에선 남산이었고, 삼청동에선 인왕산과 북악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에선 비교도 안될 만큼 북한산의 존재감에 매일 매 순간 놀라게 된다. 6개월 남짓 살아오면서 나는 산에 익숙한 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더 놀랍고 새롭다. 근경이 대부분인 도시의 풍경이 서울을 벗어나니 원경으로 펼쳐졌다. 어디서든 북한산이 파노라마처럼 앞으로 뒤로 좌우로 조금씩 시점이 다를 뿐 모든 곳에 있다. 밀도가 빽빽했던 도시 정글에서 탈출한 이 해방감이 이사 온 이후로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산은 같은 자리에서 날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매일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살아보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경험들이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풍경들

신도시 초기의 환경은 온갖 종류의 결핍과 불편함으로 가득해 제대로 된 도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열악한 도시 기반 시설, 건설현장의 소음과 먼지……

지축지구 조성단계의 3분의 2 정도 즈음에 이사를 하게 된 것은 참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새것 투성이의 도시에 이제 사람들의 일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변두리에 속해 있던 논, 밭을 이루던 땅들이 새로운 중심으로 태어났다. 바운더리를 벗어난 곳들은 간발의 차이로 가장자리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꽃 시장에 갔다가 지축지구가 그곳 상인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심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몇 년 뒤 좀 더 밖으로 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사 온 사람들의 기쁨 뒤에 그들의 쓸쓸함이 감춰져 있었다.

양주 방향에서 서울 방향 버스 안에서 들리던 토박이들의 동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곳의 오래된 장소성은 지역에 발붙이고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그 사람들이 떠나면 영영 잊히게 될 것들이다. 논과 밭으로 펼쳐져 있던 큰 이슈 없던 땅들은 신도시의 프레임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멀어져 간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음을 생각하면 켜켜이 쌓여온 땅의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아쉬운 생각이 밀려온다.

누군가는 아쉽게 떠나고,

누군가는 이곳에 새로운 삶을 짓는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다

우후죽순 솟아나는 죽순처럼 아파트는 여기저기서 솟아올랐다. 겹겹이 포개어진 아파트들 사이로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가 올라가고 있다. 몇 주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스케치업(3D 프로그램)에서 이차원의 평면을 위를 향해 쭉 뽑아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저절로 들었다. 한 층 한 층 너무 쉽게 올라가는 모습에 왠지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삶이 시작되고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 집이라는 공간이 너무 쉽게 만들어지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아파트 안에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하려니 뭔가 아이러니하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아파트 사이 허공에 노란 타워 크레인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기둥에 매달려 공중에 떠 있는 긴 팔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늘 같은 각도로 고정되어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공사 현장의 무거운 자재들을 휙 옮기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그 자리에 서 있곤 한다. 팔의 마디마다 점점이 박혀있는 조명들이 햇빛 속에서도 강한 빛으로 반짝인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아파트와 크레인 뒤로 해가 기울고 있다. 하나하나 구별되었던 모든 입면들이 단 하나의 덩어리, 윤곽으로 합쳐지고 있다.

그 뒤로 펼쳐진 붉은 하늘……

현실의 감각을 잊게 하는 마력이 순간 발휘하는 건가?

어디를 가도 해가 지는 모습은 아름답다.


동네의 다양한 면면을 복잡한 퍼즐을 맞추듯이 조금씩 알아나갔다. 이곳의 도로, 난간, 가로등, 신호등, 버스정류장과 같은 도시 기반 시설, 설비, 아파트, 근생, 주택. 모두 예외 없이 새것이다.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작동하지 않은 기기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번역기로 옮겨놓은 문장처럼 어딘가 어색하고 어설픈 구석들도 있다. 하지만 도시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도시는 처음부터 정해진 퍼즐 같은 것이 아니다. 도시계획이라는 시작과 함께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계속 자라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물들이 선물 포장을 뜯어내듯이 공사 가림막을 걷고 ‘임대’라는 커다란 글씨들로 유리를 장식하고 있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늘어가는 상가들을 구경하는 일이 산책에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미용실, 베이커리, 카페, 김밥집, 카페, 미용실, 부동산, 부동산, 마트, 과일가게, 편의점, 편의점, 부동산, 치킨집, 치킨집, 정육점, 만두가게, 부동산, 부동산, 병원, 병원, 약국, 약국 그리고 부동산……

오픈 기념 이벤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입구에 놓인 이벤트 장식들이 매일 가게들 사이로 옮겨 다니는 건 아닐까 상상을 하며 살짝 웃는다.

며칠 전 청소를 하다가 아직 남아있는 비닐을 발견했다. 이 동네의 뜯지 않은 비닐을 모아 보면 얼마나 많을까?

구석구석 새것의 냄새와 흔적들이 가득하다.


아파트란 건축은 생각할수록 참 기묘하다. 같은 구조에 문과 창, 욕실, 전등, 수도꼭지처럼 아주 작은 것들까지도 모두 같다. 모두가 쌍둥이인 집의 문을 열고 한 사람 한 사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다른 사람,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을 보고 있자면 아파트는 사람들에 의해 완성되는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층층이, 겹겹이 쌓인 각각의 일상들이 중첩되고 중첩되어 몇 개월 사이에 친숙한 느낌이 배어 나온다.

이사하고 며칠 지났을 때였던가? 창문 사이로 아이들의 가늘고 작은 목소리들이 집으로 흘러들어왔다. 아직 점유되지 않은 아파트의 안과 밖 구석구석을 그 소리들로 채워진다는 생각을 하니 즐거운 마음이 솟아났다.

이곳은 ‘새것’을 탐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동네다.

그리고 새것이 오래되고 익숙한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탐험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서울과 경기도 사이, 경계를 걷다

시골의 밤은 살아있는 생명들의 소리들로 가득하다. 도시의 소란스러운 소리들 대신 시골은 적막한 빈 공간들을 새와 곤충, 가축과 야생 동물들의 소리로 채워져 있다. 초여름에 울기 시작한 개구리 소리는 릴레이처럼 여러 곤충들을 거쳐 귀뚜라미에까지 이어졌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백색소음처럼 밤의 시간들을 채워 나갔다.

꼭두새벽. 아파트 사이의 틈새를 뚫고 첫 닭이 우는 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져 온다. 닭의 성대를 알 수는 없으나 울림 때문인지 멀리 또렷하게 소리가 퍼져 나갔다. 동물들의 소리는 몸집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닌 가 보다. 그 소리의 울림에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득 시에나와 피렌체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닭의 첫 울음소리가 들리면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해 서로 만나는 곳에 도시의 경계를 정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몇 끼를 굶어 예민한 피렌체의 닭이 건강한 시에나의 닭보다 먼저 새벽을 열어젖히며 말의 출발이 빨라졌고 그래서 피렌체의 땅이 넓어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말이다.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에서 닭이 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상징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경계에 살고 있다.

창릉천을 사이에 두고 은평 뉴타운과 지축지구 사이.

경계를 넘나드는 일이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져 수도 없이 오고 간다. 처음 이사 왔을 즈음에는 생활감이 느껴지는 가게들을 찾아서 하천을 건너 은평 뉴타운을 탐험하고 다녔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저층형 아파트들은 단지 안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이곳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오래된 나무 아래 모여 앉아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소리가 중정의 빈 공간을 타고 은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서울이 아닌 유럽의 공동주택 같은 느낌에 중정 사이를 통과해 아파트를 산책해 나갔다. 그곳을 빠져나가니 산과 창릉천 사이를 흐르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산에 둘러싸인 동네의 공간감, 저층의 아파트, 중정, 개울이라는 요소에 오랜 시간에 걸쳐 생활감이 스며들어 동네는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일상이 정착된 동네의 면면을 둘러보는 일은 흥미롭다. 이제껏 그런 동네만 살아왔던 터라 그 느낌을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모든 게 새것인 동네에 여섯 달 남짓 살다 보니 자연스레 오래된 구석구석의 일상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장을 보고 다시 하천을 건너 집으로 돌아오며 ‘새것’으로 가득한 동네를 둘러본다. ‘동네가 만들어진다는 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애써 조급한 마음을 다독인다. 괜히 발걸음을 지하철역으로 옮겨 바뀐 것이 없는지 기웃대며 산책을 이어나간다.



여름 풍경

길의 표면은 생각보다 울퉁불퉁하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할 뿐 걷다가 삐끗, 기우뚱 중심이 흔들려 걸음을 멈출 때 우리는 바닥을 쳐다보게 된다.

시각적으로 깨닫게 될 때가 비 오는 날이다. 길 위의 작은 웅덩이에 빗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고 나면 세상의 표면이 얼마나 굴곡졌는지 알게 된다. 웅덩이에 물이 참으로써 지면의 수평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비 오는 날이면 창 밖을 바라보다가 비가 그치자마자 뛰쳐나가 작은 웅덩이를 건드리며 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요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딱 그렇다. 내친김에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가 웅덩이를 골라가며 ‘첨벙’ 수면의 정적을 깨며 걸어본다. 방금 깨진 수면은 금세 평온함을 되찾으며 지면의 수평을 되찾는다.

여름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

[……]

장마가 끝났지만 태풍이 오고 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감지한다. 정체되어있던 바람이 어느 순간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람의 방향이 확고히 정해졌다. 남서쪽에서 습기를 가득 먹은 바람이 비를 몰고 올 예정이다.

어느새 방 안의 조명이 밝게 느껴져 창 밖을 보니 어둑어둑해졌다. 건너편 아파트 위로 검은 구름들이 바람에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투둑 투둑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 세상이 빗줄기의 필터에 뿌옇게 빛바래가고 있다. 안경을 벗었을 때처럼 풍경의 모든 실루엣이 흐릿하다.

[……]

계절은 어느새 가을에 접어들어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름의 열기가 한 겹 벗겨진 듯하다. 알록달록한 여름의 옷들이 빛바랜 듯한 색으로 변해 가을의 색깔을 완성하는 것처럼 지하철 플랫폼이 모노톤으로 변해가고 있다. 여름 한 철 계절 특수를 누렸던 장소들은 횡 하니 홀로 남은 채 바람이 낙엽들을 몰고 오길 기다리고 있다. 아직 숲과 나무는 여름 색 그대로이다. 하지만 변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가을에 한 발짝 더 가까운 색으로 바뀐 오늘의 색일 것이다.

실감하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계절은 온 세상의 색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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