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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3. 2020

시간 속에 정체성이 바뀌다

시간을 탐험하다-2

시간이 흐르며 완벽하게 정체성이 바뀌는 장소들이 있다. 처음부터 좋은 ‘그릇’으로 태어난 장소들은 정체성이 바뀌어도 좋은 장소로 남는다.


#3. 페루자의 물의 길을 따라가 본다

높은 구릉지대에 세워진 페루자라는 도시, 로마제국의 기술은 이곳을 거쳐간다. 다른 산의 수원으로부터 물을 끌어와 도시 곳곳의 공중목욕탕, 공중화장실, 분수로 흩어져 일상의 곳곳에서 사람들을 풍요롭게 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수원에 가까운 도시의 외곽에서 높은 교량으로 시작해 페루자 시가지로 들어서며 점점 낮아져 건물의 2층, 3층의 높이에까지 가까워진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수로가 상수도 기술에 의해 기능이 상실되며 수로 주변의 건물들에 변화가 생기고 수로는 물의 길에서 사람의 길로 바뀌게 된다.

Via Appia, Perugia, Italy _ BGM # The List | Moonchild

수로와 도시가 만나는 사이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물이 흐르던 수로의 레벨에서 주변 건물과 브릿지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분명 수로는 기본적으로 주변과 사이를 두고 있다. 그래서 도로 레벨의 수로 주변에는 길과 입구가 있고, 의미를 따지기도 애매한 비어있는 공간들이 있다. 수로의 구조물과 주변 건물들이 긴 시간에 걸쳐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때론 긴밀하게 때론 느슨하게 거리를 둔 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Via Dell Acquedotto, Perugia, Italy _ BGM # Nagashi | Idealism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의 미세한 경사도를 이루는 수로 위에 공을 굴리거나 물을 흘려보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산책길로 바뀐 수로를 따라 사람들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도시의 레벨을 경험하게 된다.


수로에 면한 건물과 산책길로 바뀐 수로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분리되었던 길이 
접근 가능한, 연결이 되는 길로 바뀐다.
 길에서 이웃이 생기고,
도심 산책자가 태어난다.



#4. 성곽 주변의 풍경

Plaza Puerta Nueva, Toledo, Spain _ BGM # Hold Me | Sergeant Jay

성곽, 담, 수로와 같은 선적인(Linear) 도시 하부구조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주변과 연관성을 갖게 된다. 오래될수록 그것들은 도시 속에서 서로 얽히며 의외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여기 톨레도 구도심을 구획하는 성곽이 지나간다. 성곽은 외부로부터 뭔가를 보호하고 구분 짓는 하나의 경계다.

전 세계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성곽들을 둘러보면 비슷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안과 밖의 풍경. 밖은 대부분 성곽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도로나 주차장, 녹지 같은 비어있는 장소들이 많다. 안쪽은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경계가 점점 희미해져 성곽은 여기저기 일상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어느 순간 어느 집 정원에서, 벽에서, 뒷마당에서, 앞마당에서, 학교 운동장에서, 골목 막다른 길에서 예고도 없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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