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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2. 2020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시간을 탐험하다-1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 어긋나거나 단절된 시간의 갭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폐허가 된 곳에서, 박물관이 된 로마시대의 유적지에서, 오래된 집의 벽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묘지에서, 도시의 작은 모퉁이에서 시간을 경험한다. 바닥에 드러난 마모 되어 둥글고 매끈한 돌바닥 위를 지나며 시간과 문명의 여행을 시작한다.


먼저 가장 대비가 강렬한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사람이 태어나고 삶을 살고 죽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묘지 또한 나이를 먹어간다. 끊임없이 죽음은 계속되어 숙명적으로 묘지는 그 사회를 반영하게 된다. 그래서 묘지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간다. 점점 화장률이 높아지고 실내 묘지, 공원묘지, 숲 속 묘지와 같은 모습으로 다양해져 간다.

묘지는 죽은 자를 위한 곳인 동시에 산 자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누구의 것도 아닌 광장이나 길을 모두가 공유하듯이 산 자와 죽은 자가 묘지 안의 건축과 공원, 숲을 같이 공유한다.

살아있을 때도 죽은 후에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장소들,
이상적인 묘지의 풍경이다.


Cementerio de Casares, Malaga, Spain _ BGM # Particle Of Light | Carice Van Houten

#1. 카사레스의 묘지 안으로 들어가 본다

스페인 말라가에 위치한 묘지의 풍경은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묘지의 모습에서 한 참 벗어나 있다.

한편에는 벽에 아치형 구멍이 랜덤 하게 뚫려있는 원시적인 형태의 벽감 묘가 있고, 건너편에는 좀 더 현대화된 벽감 묘가 쌓이듯 파사드를 이루고 있다.

산의 지형과 묘지가 만나는 경계에 벽감 묘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장소의 분위기를 단번에 주도하며 주변과의 경계를 지운다.

벽감 안에 놓인 꽃과 장식들을 가꾸며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시간.

새겨진 한 문장의 글귀를 다시 읽어보며 죽은 자의 삶을 끄집어낸다.

지중해 묘지문화에서 중요한 벽감 묘는 벽에 구멍을 판 뒤 화장한 유골을 안치하는 방식으로 로마시대 동굴 묘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벽감이라는 매우 작은 장소가 죽음 후 사람의 마지막 자리가 된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번 벽감이라는 장소성의 특별함을 깨닫는다.

지나간 시간과 현재 그리고 우리가 죽은 뒤의 미지의 시간, 미래에 계속될 묘지라는 장소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Via Sepulcral Romana, Barcelona, Spain _ BGM # I Don’t Wanna See You Cry | Silje Nergaard

#2.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하다

길을 걷다가 예상치 못한 장소와 마주친다. 움푹 파인 바닥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로마시대 묘지의 판석들.  시대에는 길을 따라 양쪽으로 묘지를 만들었을 만큼 삶과 가까이 있었다는 의미다.  속에 묻혀 있다가 오랜 시간을 뚫고 광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일상과 함께 산 자와 죽은 자가 길 위에 공존하던 로마시대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력은 우리에게 낯설다. 우리에게 죽음은 좀 더, 아니 굉장히 두려움의 대상이어서 그 공간은 삶과 멀리 떨어져 있다. 광장의 가장자리에서 내려다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실체를 생각해본다.

도시의 레벨보다 낮은 유적지의 바닥과 광장 바닥의 일부를 기울여 만든 정원이 자연스럽게 만난다. 유적과 정원이, 로마시대와 지금의 시간이, 시간을 건너뛴 두 개의 길이, 올려다보는 그리고 내려다보는 시선이, 삶과 죽음에 대한 다른 생각이 공존한다.

장소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오래도록 남아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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