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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9. 2020

시간을 받아들이다

시간을 탐험하다-3

시간에 의해 가치가 전복되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가끔 있다. 그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아닌, 중심에 있었지만 주변이 , 기억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풍경들. 그중 어떤 것들은 복원되거나 사라지고,  가끔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고, 시대에 맞는 가치들이 플러그인 되기도 한다.



#5. 지금이 아닌 그때

Hippodrome Of Domitian On The Palatine Hill, Rome, Italy _ BGM  # Hometown | Nymano & Pandrezz

폐허가 된 장소에서 건물의 단면을 발견할 때 느껴지는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폐허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것, 감추어져 있던 단면이 투시하듯 그대로 드러남으로 해서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이곳 로마의 유적지는 최소한의 복원작업으로 폐허가 된 그때의 시간을 멈추어 폐허와 로마의 풍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로마의 시간을 기억하는 유적 위에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이 있다. 내려다보고 멀리서 바라보게 하는 장치들은 우리를 장소에 몰입하게 한다.

폐허 속에 서 있다 보면 숭고함, 적막함, 공허함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찬란했던 그때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모습이 상상되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내부의 공간들이 밖으로 노출되어 그때는 '벨 에포크'였다고 폐허 앞에서 변명하는 듯하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6. 시간에 해체되고 변하다

Via Della Sapienza, Perugia, Italy _ BGM # Tokyo Tower Theme | Mizoguchi Hajime

오랜 세월을 거치며 건물이 본래의 기능대로, 모습대로 온전히 남아있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게 된다. 보존의 대상이 아니면 시간 속에서 덧붙여지고, 해체되고, 사라지고, 다른 건물로 대체된다. 기능이 바뀌면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페루자의 오래된 구 시가지의 골목마다 해체되어 조각난 장소들과 건물이 곳곳에 박혀 있어 아주 오래 전의 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켜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장소를 해체해나간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풍경이다.



#7. 도시 풍경에는 그 시대의 가치가 스며있다

Plaza Condesa De Perafas, Cartagena, Spain _ BGM # Duet | Rachael Yamagata

여러 시대를 거쳐오며 도시 풍경에도 가치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변해간다.

공공을 위한, 약자를 위한,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이런 가치들을 포함한 장치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온 장소 위에 덧붙여진다.

이곳은 로마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스페인의 카르타헤나. 로마 유적과의 경계에 놓인 경사로와 담장이 우리에게 시간의 갭을 인식하게 한다. 덧붙여짐, 플러그인 됨으로써 시대의 가치는 과거의 모습 위에 두드러지게 차이를 드러낸다.





시간에 의해 쓸모가 없어진 수로가 길이 되고, 도심의 발전소가 미술관이 되고, 기찻길이 산책길이 된다. 시대의 가치에 의해 계단 옆에 경사로가, 차도 옆에 자전거 도로가 생겨난다. 폐허가 된 장소들은 유적지가 되거나 버려진 채로 있다가 사라져 간다.

누군가 고고학을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라는 다리”라고 표현한 것처럼 시간을 다루는 리노베이션 작업은 일종의 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릇은 같은데 내용물을 바꾸거나, 내용물은 같은데 그릇을 바꾸는 매체와 장르의 변신이다. 다른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 또는 다른 쓸모를 지니며 살아간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품은 채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수많은 오래된 장소와 건축에 숙연해진다.


모든 풍경은 시간과 함께 변해간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풍경도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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