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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9. 2020

땅 아래의 세계를 만들다

땅 아래 그리고 그 너머를 탐험하다 -3

땅 아래의 세계.

땅 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거주의 감각이 몸에 새겨질 것이다.

마당의 한 귀퉁이에 앉아 있으면 한옥에서의 마당보다 더 고요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은둔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다. 땅 아래에는 땅을 움푹 파내 그릇을 만들어 일의 터전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벽을 파내어 물건을 놓았던 벽감처럼 땅을 파내어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채워져 있는 것을 비우며 공간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장소들로 만들어간 그들의 흔적들을 따라가 본다.



#6. 땅 밑으로 들어가다

Matmata, Tunisia _ BGM # Luka | Suzanne Vega

뜨거운 태양, 강한 돌풍, 추운 겨울.

튀니지 마트마타 고원의 혹독함 속에서 그들 스스로 주거하기에 가장 적절한 환경은 땅 밑이었다.

Matmata, Tunisia _ BGM # Tom’s Diner | Suzanne Vega

극한의 추위와 더위가 있는 곳엔 지하세계가 발달하기 마련이다.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우리에게 이질적인 느낌마저 준다.

지하통로로 여러 집이 연결되어 그들만의 도시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긴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 신비로운 땅 속 세계는 긴 침묵을 깨고 마당의 빈 풍경만을 겉으로 드러낸다. 땅 밑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면 지워진 환경은 단숨에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서걱 이게 한다. 입안에 모래 알갱이들처럼.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땅 밑의 세계가 더없이 평온하고 완벽한 그들의 안식처임을 깨닫게 된다.

척박한 환경은 지운 채, 중정 위의 하늘과 별과 구름이 낮과 밤을 반복하며 오고 간다.



#7. ‘움푹 파인’의 장소를 들여다보다

모로코 페스(Fes) 좁은 골목들을 이리저리 비집고 나아가다 어느 순간 골목의 끝에서 천연 가죽 염색공장 테너리(Tannery Sidi Moussa) 모습이 드러난다. 건물들로 촘촘하게 둘러싸인 작은 광장 같은 장소에 벌집 구조처럼 움푹 파인 그릇들이 서로 붙은  무한반복을 이루며 건물들과의 경계에까지 틈새를 놓치지 않고 바닥을 채우고 있다.

그곳의 작업 시스템은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간별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먼저 동물 분비물과 석회가 들어간 회색 빛을 이루는 그릇에 가죽을 넣고 뻣뻣함을 부드럽게 해주는 무두질 과정을 거친다. 대부분의 이 그릇은 낮은 레벨의 그릇에 담겨 있고 가죽이 무르게 될 때 원하는 컬러의 안료가 들어가 있는 높은 레벨의 그릇으로 옮겨 담는다. 염색 그릇 사이의 작은 길, 그릇의 가장자리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염색 안료를 섞어주고, 가죽이 골고루 잘 염색되도록 이리저리 휘젓고 가끔은 그릇 안으로 들어가 청소를 하기도 한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테너리의 끝도 없는 알록달록하게 물든 그릇들, 가죽, 염색 안료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이 모두 하나로 일체화되어 사람도 풍경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염색이 끝난 가죽은 주변 건물들의 옥상에서 건조를 하고, 건물 안에서 가공의 과정을 거쳐 상품으로 포장되고 출하를 하게 된다. 이 테너리와 통하는 골목마다 그 염색 가죽들을 파는 가게들도 있다. 천연가죽 창고, 가죽 무두질, 염색, 건조, 가공, 출하 또는 판매. 이 모든 과정의 작업이 효율적인 방식으로 조직화되고 공간 분리가 명확하게 계획되어있다.

바로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 가죽을 부드럽게 하고 염색하는 ‘움푹 파인 그릇’이다. 일반적으로 염색과 같은 작업을 할 때 염색 안료를 풀어 천을 담글 그릇과 그 그릇들을 놓을 자리가 필요한데 이 테너리는 그릇과 자리를 일체화하고 다른 그릇과 ‘딱’ 붙어 있다 보니 이보다 더 경제적일 수가 없다.

바로  장소에서 나의 ‘움푹 파인공간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꼬르뷔제의 말에 담긴 ‘그릇이라는 단어에서 ‘그릇 ‘그릇 같은 분리해 본다. ‘그릇 , 지붕, 바닥을 만들어 건축하는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릇 같은 동굴이나 , 벽을 파내어 ‘그릇 같은건축을 만드는 경우인데, ‘움푹 파인 바로 이런 공간들의 특성을 표현하는 단어라   있겠다.

우리는 그런 장소들에서 둘러싸임, 아늑함, 담김, 보호, 폐쇄, 고독과 같은 감정들을 경험한다.

‘움푹 파인’의 풍경은 다양하다. 페스의 테너리가 작업을 위한 그릇의 형태였다면, 선사시대의 움집은 땅을 60센티미터 파내어 바닥을 다지고 그곳에 기둥, 벽, 지붕을 올려 완성하는데 좌식 생활이 이루어지는 바닥 주변의 공간을 둘러싸며 추위와 바람을 막는 그릇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일상생활 속 물건들 중에도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얼음 트레이는 물을 움푹 파인 그릇에 넣어 얼린 후 거푸집에 언 얼음을 꺼내어 먹는다. 이때 움푹 파인 그릇의 모양 그대로 내용물을 얻는다는 점에서 앞의 두 예와는 또 다른 경우라 볼 수 있다.

 오래된, 역사 깊은 ‘움푹 파인 풍경의 후예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앞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풍경들을 기대하게 된다.




마당을 만들고 그곳에서부터 사방으로 땅을 파내어 하나하나 끝없는 방을 고구마 캐듯이 공간을 확장해 나갔던  밑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동굴을 파내어 공간을 만들고 벽으로 입구를 세우고 미완성인 채로 동굴 안쪽으로 확장해 나갔던 동굴에서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두꺼운 화산재가 긴 시간 동안 비, 바람에 풍화되고 굳은 지형에 구멍을 파 집을 만들고, 길과 도시를 만들어나갔던 사람들이 있다.

척박함을 이겨낸 사람들의 의지가 도시 이곳저곳에서 실체로 드러난다. 환경에 적응해 살아왔던 사람들의 지혜와 유연함, 강인함...... 새삼스럽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강하고 또 강하다.

지도를 보고 길을 걸으며 도시를 탐험하다 보면 도시의 지도가 머리에 점점 뚜렷하게 자리 잡는데, 어느 순간 놓치고 있던 퍼즐들이 하나  나타나 질서를 파괴하곤 한다.

기분 좋은 파괴 속에  아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본다. 제대로 그릴  없지만 상상의 땅속 지도는 멋대로 땅을 이리저리 파헤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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