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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2. 2020

동굴 주거가 시작되다

땅 아래 그리고 그 너머를 탐험하다 -1

사람들은 무언가에 보호받고 둘러싸이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외부의, 야생의 세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굴로 들어간 사람들, 척박한 사막의 기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 뭔가를 담기 위해 벽과 바닥을 움푹 판 사람들.

그들에겐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처럼 땅 아래, 그 너머에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고 유추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1. 동굴 주거의 시작


BGM # Born To Be Blue | Eddie Higgins Trio

절벽의 한쪽을 깎아 생긴 동굴을 내부 공간으로 하고, 동굴의 바깥에 벽과 입구를 만들어 집의 경계를 만든다.

덜어냄으로써 얻는다라는 동굴 주거의 단순하면서도 산뜻한 출발점!

집은 밖이 아닌 안으로 확장한다.

필요한 만큼 덜어내어 공간을 만든다는 논리로 가족이 늘어나면 다른 방향으로, 공간이 부족하면 더 안쪽으로 파내어 늘리기만 하면 된다. 확장해가는 방들의 가운데에 거실과 같은 중심 공간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규모가 큰 집들은 여러 개의 중심이 있어 대가족의 세대별 구분이 상상이 되기도 한다.

암석교회로 가는 도중, 광장 주변에 집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엉겨 붙어있다.


이 집과 저 집과 그 집, 어쩌면 하나의 집.




#2. 마테라의 동굴 주거 속으로 들어가 본다

BGM # Yes I’m Changing | Tame lmpal

이탈리아 마테라.

스치듯 이 도시를 지나친다면 바위와 건물의 경계가 모호한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 이미지들이 연상될 수도 있겠다.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 구석구석을 경험해봐야 온전히 집이 파악된다. 그렇게 몇 집을 가봐야 이 복잡한 사씨(Sassi)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개미집처럼 방은 이어지고 이어져 서로 다른 집이 만나는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규칙성이 없이 증식되는 평면이 백 프로 정확하게 그려진 것일까 의심하게 될 만큼 동굴 주거들은 독특한 지도를 채우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의 방이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줌 아웃해 보면 수천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99칸의 집처럼.

집의 위, 아래, 좌, 우 경계가 모호해 이곳에 살았을 사람들의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의식은 우리와 전혀 다를 듯하다.

집의 평면을 따라 그리다가 도중에 펜을 내려놓는다.


끝을 영원히 알 수 없는
방들의 네버 엔딩 스토리.



#3.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Matera, Italy _ BGM # Someday | Pete Yorn & Scarlett johansson

돌을 파내어 거주의 공간을 만든다.

                    앉을자리, 놓을 자리를 만든다.

                    그릇을 만든다.


최소의 가구가 이곳의 특성을 알려준다. 한 공간에 들어가서 직접 살아보고 경험해봐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공간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낼 수 있다.


동굴에서 사는 감각.

감싸이고 둘러싸이고 보호받는 느낌.

구조가 그대로 마감인 돌의 거칠고 단단한 물성.


사람들은 외부인지 내부인지 헷갈리며 그 사이에서 감각은 이중성에 노출되며 우리의 행동은 이전과 다르게 변한다.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장소에 스며든다.

이곳에 살기 전의 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된다.


‘밤에 땅에 귀를 가까이 갖다 대면
가끔 문을 꽝 닫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탈로 칼비노의 문장이 떠오르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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