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탐험하다-4
넓다가 좁아지고, 좁다가 다시 넓어지는 변덕스러운 리듬 속에 길 이상, 광장 이하의 정의 내리기 어려운 장소들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다. 또 어떤 목적과 의도로 섬세하게 계획된 길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길이 원하는 대로 이끌기도 한다.
길은 밀당과 리더십의 고수가 아닐까 싶을 만큼 우리의 발걸음을 결정한다.
#9. 계단길을 따라 걷다
곡선으로 휘어지는 모퉁이 바깥, 들어가거나 튀어나오거나 하는 어떤 변형도 없이 곡선을 따라 계단이 놓여 있다. 골목 계단길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계단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어쩌면 그 이전부터 계단의 방향을 인식한 채 첫 번째 단을 밟는다. 우리는 계단 위를 걸을 때 계단의 방향에 영향을 받는다. 바꿔 말해 계단의 방향이 우리의 몸을 유도한다.
이탈리아 스칸노의 어느 거리, 성당의 측면 벽과 1,2층의 작은 건물들 그 사이에서 계단 길은 각도를 조금씩 틀며 그곳에 딱 들어맞게 안착한다. 그리고 그곳을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조차 계단길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10. 장면과 장면 사이를 잇다
길을 걷다가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다면 열에 아홉은 놓칠 법한 이탈리아 아시시의 작은 계단 골목길 앞에 선다. 작은 음수대가 골목길의 시작을 열어준다.
마을의 입구, 길의 갈래, 광장에서 물은 시작이면서 동시에 구심점이 된다. 메인 요리 전의 애피타이저 같은 음수대가 앞으로의 길을 암시한다. 벽 뒤로 휘어져 올라가는 계단을 몇 발자국 내딛다 보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연스럽게 곡선을 그리며 위를 향해 나아간다. 모퉁이를 돌거나 길이 휘기 시작할 때 움직이면서 비로소 드러나는 풍경의 장소들이 있다.
장면 하나하나의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해본다. 길의 매력은 시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서의 경험을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영화에서처럼 몇 장의 장면으로 나누어 늘어놓고 들여다보면 장소를 통해 비롯되는 감정과 각 장면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게 되고, 전체를 한눈에 꿰뚫어 봄으로서 장소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걸음마다 수시로 변하는 도시 풍경 속에
이야기와 해프닝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특별할 것 없지만 일상 속에서 늘 걷는 하루의 루틴 속 길이 있고, 어떤 해프닝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길도 있다.
늘 익숙하게 지나치던 도로가 단 몇 시간 동안 사람으로 가득 찬 길이 되어 그곳을 걷던 느낌, 그 순간들이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규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감각에 울컥하는 느낌도 있었다. 길이라는 하나의 형식 안에 있을 때와 그 틀을 깨고 벗어났을 때의 공존이 길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길로부터 파생되는 해프닝과 사건, 그곳에서 자라나는 의식과 감각이 일상 깊숙이 박혀,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끈다.
길이 모이고 흩어지는 곳에 모퉁이가 있다.
어떤 길이든 계속 걷다 보면 모퉁이를 만나게 되고, 둘은 늘 함께 존재하는 숙명의 관계에 있다.
언뜻 평범해 보여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각기 다른 모습으로, 특성으로 일상 속에 묻혀 있다.
그 드러나지 않는 길과 모퉁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보며 우리의 삶을 길에 비유했던 수많은 문장들을 떠올린다.
그럴 만큼 세상의 모든 길은 다르고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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