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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 Oct 27. 2020

길의 경계가 모호해지다

길을 탐험하다-2

Santorini, Greece _ BGM # Waltz For Ruth | Charlie Haden



#4. 내 것, 너의 것, 모두의 경계가 흐려지다.

모든 건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귀결되는지 알 수 없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기묘한 골목에 우리는 있다.

불완전한 계획과 우연한 실행의 과정에서 태어난 유일무이한 곳이다.


하나의 모서리에서  개의 아치가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모서리에서 하나의 아치가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아치가.......

끝도 없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골목의 기묘한 세계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간다.


길과 집의 경계와 집과 집의 경계 모두 모호한 골목 속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경계가 뚜렷한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낯선 풍경이다. 완벽하게 소유하지 못할 때 느끼는 피해의식이 점점 서로에게 선을 긋고 벽을 쌓고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간다. 경계를 조금 무디게, 모호하게 무너뜨릴 장치가 무엇보다 필요한 건조한 도시의 길들을 무심히 걷는다.



#5. 공적이지만 사적인 길

이탈리아 오스투니의 길을 걷다가 벽과 벽이 90도로 만나는 모서리에 여러 겹의 아치로 이어진 통로와 마주친다. 아치와 아치 사이는 주름처럼 접히거나 잘려 입구가 되고 화단이 되고 자전거와 화분을 올려두거나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모두에게 열린 통로지만 매우 사적인 공간일 때만 가능한 존재방식으로 묘한 동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통로 너머의 동네와 연결해주는 매우 유용한 공적인 공간이지만 그 모습은 매우 사적인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

Ostuni, Italy _ BGM # Our Spanish Love Song | Charlie Haden



#6. 길에서의 경계에 대한 감각

집으로 들어가는 길인지, 다른 길로 이어지는 길인지 종종 헷갈리는 골목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장소에 '길 없음', '막다른 길입니다’로 길의 끝임을 알리거나 그런 정보들이 없다면 다른 길로 이어지는 길이다라는 암시를 주며 계속해서 걷게 된다.

계획된 도시의 형태를 띠기 이전에 만들어진 유럽의 오래된 도시의 길들은 위계가 너무 없어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되고 지도를 봐도 알 수 없어 장소 주변을 돌고 돌고 돈다.

하지만 프라이빗한 것과 퍼블릭한 것이 섞여 구분이 가지 않는 모호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를 구분하는 경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경계석 하나, 다른 재료로 마감된 바닥, 화분이 놓이는 자리, 낮은 턱.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시각적인 것 이상의 경계에 대한 의식을 심어둔다.

이런 것들을 구분하는 공통의 감각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에 조금 헤매더라도 그 차이를 극복한다.

Sperlinga, Italy _ BGM # Message To a Friend | Charlie Ha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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