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 뒤에 숨겨진 것들
요즘 브랜드는 말을 예쁘게 한다. 이제는 그 예쁜 말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값이 된 시대다. “당신을 위한”, “감정을 기억하는”, “하루를 위로하는” 같은 문장들은 더 이상 감탄을 유발하지 않는다. 감성은 이제 특별한 전략이 아니라 마케팅 언어의 공용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브랜드의 말은 스쳐가고, 어떤 브랜드의 말은 마음에 남는다.
어떤 감성은 공허하고, 어떤 감정은 오래 기억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 이 글에서 말하는 감성은 브랜드가 설계하고 전달하는 정서적 언어, 태도, 분위기다. 반면 감정은 기쁨, 위로, 설렘, 공감처럼 소비자가 느끼는 내면의 정서적 반응이다. 이 글에서는 감성과 감정을 구분해 사용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감성 마케팅이 왜 강력하게 작동하는 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기능보다 감정에 반응하는 소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대신 표현해주는 것 같아서’ 고른다.
감성 마케팅은 그 감정의 언어를 정교하게 번역해주는 도구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감성 마케팅이 진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그 감성 뒤에 브랜드가 믿는 가치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을 때다. 다시 말해 단순히 예쁜 말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지켜내고자 하는 철학’과 연결될 때 사람들의 마음을 진짜로 움직인다.
이제 감성 마케팅의 겉과 속을 함께 들여다보자.
감성 마케팅이 통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정보보다 감정에 반응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평준화되었고 기능은 더 이상 브랜드의 차별점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스마트폰, 샴푸, 생수처럼 대부분의 제품은 기본적인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브랜드는 제품 자체보다 그 제품이 전하는 정서와 경험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즉, 이제 브랜드는 감성을 판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감성이 ‘실제로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감정이 신뢰할 수 있는가’다. 소비자는 이제 감성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그 감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결국 감성 마케팅이 진짜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감성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 다시 말해 ‘가치 중심의 감성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감성 브랜드’들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감성 뒤에는 신념과 실천, 철학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 감성을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설득하는 브랜드
“환경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경을 위해 행동합니다.”
톤28은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브랜드다. 예쁜 말로 환경을 이야기하기보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실천하는 방식으로 감성을 전달한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용기 대신 자연 분해 가능한 종이 패키지를 직접 개발했고, 그 결과 기존 화장품 대비 플라스틱 사용량을 약 92% 줄였다. 샴푸바, 종이 포장, 친환경 성분. 이 모든 디테일은 브랜드가 말하지 않아도 소비자가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소비자에게는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관계가 되어보자고 제안한다.
톤28이 설득하는 감성은 말보다 오래 남는 실천의 기억이다.
: ‘비움’으로 감성을 채우는 브랜드
“이것으로 충분하다.”
무인양품은 말보다 여백을 남긴다. 지나치게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고 멋진 말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제품은 단순하지만 그 안엔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단순한 디자인, 꼭 필요한 기능, 담백한 색감. 그렇게 군더더기를 덜어낸 제품은 여백이 된다. 소비자는 그 여백 안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채운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무인양품이 내세우는 감성은 그 비워진 공간을 통해 전해진다.
무인양품의 이 조용한 방식이 오히려 감성 마케팅으로써 가장 깊은 설득이 된다.
: 수건으로 감정을 기억하게 만든 브랜드
“매일 쓰니까 좋은 것을 쓰고 싶어.”
TWB는 수건을 단순한 생활용품이 아니라, 감정을 담는 오브제로 바꾸었다. ‘호텔 수건’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그들은 촉감, 무게, 흡수력 같은 물리적 요소를 통해 ‘몸으로 기억되는 소비자의 감정’을 설득시켰다. 시티 시리즈는 여행을 원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협업 제품은 소비자의 취향을 건드린다.
TWB를 통해 소비자의 감정은 언어가 아니라 촉감이 되었다.
: 향을 루틴화한 감정의 리추얼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일상의 루틴
논픽션은 ‘샤워’라는 평범한 루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저 몸을 씻는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감정을 정돈하고 나를 돌보는 감정의 의식으로 만든 것이다. 향은 단순히 좋은 냄새가 아니라 감정을 환기시키는 장치다. 제품은 일상의 반복을 구조적으로 설계하고, 그 반복은 정서적 안정과 만족을 주는 나만의 리추얼이 된다.
이렇게 논픽션이 제안한 ‘작은 사치’는 소비자를 감정의 주체로 만든다.
: 공존이라는 감수성을 품질로 전달하는 브랜드
‘얼마나 많이’보다 ‘얼마나 오래’
동구밭은 홈페이지부터 제품 포장지까지 브랜드의 모든 접점에 ‘공존’과 ‘존중’의 가치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단순히 감동을 유도하는 문구에 머물지 않는다. 깔끔한 패키지 디자인, 안정적인 품질, B2B 중심의 유통 전략처럼 기본에 충실한 실력으로 신뢰를 만들어낸다. 그 신뢰 위에서야 비로소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조용히 스며든다. 이렇듯 감성은 말보다 구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동구밭은 공존이라는 감성을 제품의 완성도와 일관된 태도에 담아낸다.
: 취향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설계하는 브랜드
“좋은 물건을 한 곳에 둔다.”
컬리는 '당신을 위한', '정성스럽게 고른' 같은 문장보다 상품 큐레이션과 ‘샛별배송’ 같은 구조적 서비스로 소비자가 원하는 감정을 전달한다. 특히 이 브랜드는 좋은 품질에 대한 기준이 높고, 취향이 분명한 소비자를 위해 설계되었다. 소비자는 고감도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발견하며 감정의 안정감을 느낀다. 또 ‘샛별배송’을 통해 그 감정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받아든다.
컬리는 구조화된 감성으로 소비자의 감정과 경험이 일상이 되도록 돕는다.
감성 마케팅은 이제 하나의 전략이 아니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값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로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는 그 감성 뒤에 실천 가능한 가치를 품고 있다.
감정을 자극하는 말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오래 지속시키려면 철학과 구조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그걸 해내는 브랜드만이 소비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이제 소비자는 ‘어떻게 말하는가’를 넘어서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표현하는 말은 다를지라도 그 감성 뒤에는 늘 ‘가치 중심의 감성 설계’가 있어야만 한다.
누군가는 비우고, 누군가는 지키고, 또 누군가는 행동한다.
우리는 더 이상 말에만 감동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