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아내의 사회생활
공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광장에서 공포를 느낀다던가,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불안을 느낀다던가,
대중교통을 타지 못한다던가,
대인 기피가 생긴다던가,
본인이 처해진 환경과 겪어온 경험에 따라서 너무나 다양할 것이다.
아내는 공황장애가 가장 극심했을 때 대중교통, 특히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것을 힘들어했다. 버스라는 공간은 낯선 사람과 밀접하게 붙어 있고 막힌 공간인 지하철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처하기 힘들어서다.
2주에 1번씩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면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그동안 있었던 얘기를 주로 하게 된다. 2주 동안 본인의 상태가 어땠고 어떤 일을 겪었을 때 몸이 더 힘들었고 등등 작은 부분까지 아내는 핸드폰 캘린더에 기록하면서 상담을 했다.
상담 과정에서 의사 선생님이 아내에게 지속적으로 하신 말씀은 바로 '일상 생활을 하셔야 해요'였다.
일상생활을 하셔야 해요.
처음에 공황을 겪게 되면 가장 편안한 공간인 집도 무서운 공간으로 변한다고 한다. 집이 이런데 집 밖은 오죽할까. 나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지만 분명히 친숙했던 환경이 모두 낯설어지는, 평범하게 해 왔던 모든 것들이 힘들어지는 경험이 아닐까 생각된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아내도 당시 하던 일을 절반 이상 줄였었다.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몸과 마음의 체력이 많이 떨어졌고 특히 대중교통 타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말씀 때문인지 매일 짧은 시간이라도 용기 내어 외출하곤 했다.
나중에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일상생활을 하세요'라는 말은 공황장애가 가장 극심했을 때 꽤나 폭력적으로 들렸다고 했다.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는 행위뿐만 아니라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너무 힘든데 밖으로 나가라니. 4년이 지나고 안정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쉽게 지나간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서 침대를 벗어나는 게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마치 불의의 사고로 불구자가 된 것처럼 정신은 밖으로 나가볼까 하는데 몸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는 그런 느낌.
하계동에서 나와 아내는 자주 산책을 했다. 아파트 뒤편에 옛 경의중앙선 산책길과 중랑천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이 아주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집밖으로 나와 1분 거리의 어린이놀이터까지, 다음에는 5분 거리의 중랑천 다리까지, 그다음에는 이마트까지, 그리고 다음에는 산책길을 따라서 공릉까지. 산책을 하면서 언제나 아내가 힘들어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6개월 이상을 매일 반복하면서 조금씩 거리를 넓혀 갔다.
현재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어느 날 아내는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는 아파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보통 아내가 원하는 것은 지지하는 편이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아파트 일을 3년째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 후 아내에게 갑자기 왜 아파트 일을 하고 싶었냐고 물어보니 그냥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고 답했다. 그렇게 아내는 아파트에서 일을 하면서 동네 인맥도 쌓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지내고 있다.
우연히 녹색 포털사이트의 동네 광고에서 여성 풋살팀원을 구한다는 글을 봤다. 운동 좋아하는 아내가 생각이 나서 바로 추천을 했다. 공황장애로 인해서 떨어진 체력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다행히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풋살 연습장에 매주 1번씩 3년째 다니고 있다. 가끔씩 대회에도 참석하는데 역시 운동 신경이 있어서인지 골을 넣고 와서 자랑을 하곤 한다.
프리랜서 일도 시간을 많이 줄였지만 지금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한 발짝씩 밖으로 나가고 커뮤니티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아내의 증상은 크게 호전되었다. 원래의 활달하고 발랄한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고 공황장애 증상의 발현도 더뎌 갔다. 공황이 갑자기 나타나더라도 예전처럼 패닉이 오지 않고 '필요시 약'을 먹거나, 아니면 심호흡을 하거나, 화장실 변기칸에 앉아서 안정을 취하거나,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에게 "일상생활을 하세요"라는 말은 뭔 말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다. 의식하지 않고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 하루아침에 우리의 일상이 무너져 버리면 다시 그 일상을 하나씩 찾는 것도 정말 큰 도전이고 쟁취다. 공황장애 환우분들의 일상을 향한 도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