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맞춤형 남편
이 글은 아내가 쓴 글이다.
남편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다. 연애 때부터 한결같은 모습이 있다.
더도 않고 덜도 않는 성격. 우리 이쁜이 공주 사랑해용~ 이런 말은 안 하지만,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이런 스타일도 아니지만, 행동이 늘 똑같고 일관성이 있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다.
무뚝뚝한 경상도남자인 아빠와 어릴 적 나에게 강경했던 엄마 사이에서 눈치와 요령 없이 첫째로 자란 나는 남편을 만나고 안정을 찾았다. 부모님 두 분 다 살아계시고 어릴 적 사랑을 주셨지만 무조건적인(느낌의) 사랑을 드러나게 대놓고 받은 기억은 남편을 만나면서부터다. 사실 정확하게는 공황 이후부터다. 그래서 한동안 애기 때처럼 퇴화해서 앙앙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찡찡대보기도 했다
'이 정도까지 해도 괜찮나?' 하면서 오빠에게 치대는데 오빠는 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
울면 우는가 보다 하고 가만히 있고, 춤추면 춤추나 보다 하고 쳐다보다가 자기 할 일 하고, 찡찡대면 잠시 쳐다보다가 자기 할 일 한다. 반응이 크게 없지만 그렇다고 날 무시하지도 않는 그 태도가 참 좋았다. 그러면서 내면에 허전함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많이 채워졌다.
공황이 많이 나아지고 어느 날, 남편을 기다린다고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 남편을 기다린 적이 별로 없다. 기본적으로 내 일정이 더 다양해서 남편을 따라다닐 일이 별로 없었고 공황으로 인해 남편이 내 스케줄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남편을 기다렸다.
금방 끝날 것 같아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는데 남편의 진료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보통 카페에 오래 머물 때에는 책도 가지고 오고 태블릿도 챙겨 오는데 이 날은 준비된 것이 없어서 기다리는 게 좀 지루했다.
순간 남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물론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남편은 이런 기다림을 매번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더 찡한 마음이 들었다. 계획적인 성격의 남편은 나랑 같이 외출해서 할 것들을 늘 준비한다. 체력도 현재의 나보단 좋아서 나에게 힘든 티를 낸 적이 없었다. 정말 힘들 때면 처음부터 거절한 적은 있어도 나가기로 정하면 항상 나를 잘 챙겨주고 맞춰주고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 왜냐면 나는 얼마나 기다렸다고 금세 집에 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어쩜 이 사람은 나에게 딱 맞는 옷처럼 행동을 해줄까?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과정이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대로 움직여주는 게 당연한 게 아닌데 자연스럽게 해 주니 참 고맙다. 남편 칭찬으로 시작해서 고맙다로 끝나는 글. 쓰려고 보니 미담밖에 없다.
사실,
결혼식 때까지도 이 남자랑 결혼 괜찮을까? 싶었는데 이젠 앞으로 남편과 같이 지낼 날을 센다.
와~ 우리 이번생에 50년 더 같이 지낼 수 있어!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