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이는 사람들은 개성이 있다. 처음 책을 사 갔던 간호사도 만나고 모퉁이 카페 주인도 만난다. 얼굴을 기억하는 세 사람이 있어 독서모임은 낯설지 않다. 책이 있어서 나눌 이야기는 삶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이기도 하다. 같이 하는 사람들과 대화가 자연스럽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건네는 말이 따뜻해서 안심한다. 만나면서 알아가겠지만 직업도 다양하고 독서 취향도 개인마다 다르다. 중년에 들어서까지 책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것 같은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이 사람들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생각하면 슬프다. 마을 공동체가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간다면 도시 삶과는 다른 풍요로움이 생길 수 있다. 너무 빠르게 지나는 시대 감각은 지역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기도 책 읽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읽으면 좋은 정도에 생각이 그친다.
빌딩 숲과 그 사이를 가득 채운 사람과 자동차. 검은 아스팔트와 차가운 회벽에서 사람을 고스란히 느껴보기는 어려웠다. 여기, 자연에서 얻는 평안으로 내 삶은 다르게 빛난다. 윤택하다는 것은 가진 것이 많아서 얻는 것은 아니다.
기술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이다. 지방자치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지방 정부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중앙 정부에서 독립적 재무 구조를 취할 수 있을 때 지방자치는 지역 형편과 상황, 구성 세대에 맞는 지역민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지역에서 서울을 바라보니 너무도 큰 격차가 두둘어지게 눈에 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나라가 움직여질 수 있다는 것인지 내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하다. 지방 자치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수도권 집중도 덜어질 텐데. 결국은 개인이 만들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이 사회가 방향을 잃어 요구하는 사회화된 개인도 같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늦은 저녁 독서모임에서 말을 많이 해서인지 허기진 배를 마들렌으로 달래주고 있다. 어쩌다 마들렌이 내 전용 간식이 되었던가를 생각하면 프루스트가 생각난다.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며칠에 걸쳐 완독 하면서 알게 된 마들렌을 소리 나지 않게 따듯한 커피와 함께 먹던 쾌락이 지금도 달콤하게 몸에 젖어든다. 순간 만나는 포만감과 입 안을 감도는 달콤함이 좋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음식도 그것을 먹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다시 몇 년 전으로 돌아가 학생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던 시절에 두르던 겁 없음을 생각나게 한다. 도서관이나 작은 카페, 내 공간 안에서만 세상이 작동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 시절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 짧다.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늘 들어오던 말이 이제 들리지 않는다. 현실은 이렇게도 진행되고 있고 도시와 지역은 다른 삶 방식으로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해낼 수 있다.
무엇이든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방향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통계라는 수치로 표준화되는 삶방식을 멀리 하게 된 나를 응원하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게 내일은 희망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