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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연지기 Oct 13. 2024

하얀 손수건

걷지도 잡지도 못하는 내가, 어느 잘생긴 청년의 목마에 올라 있었다.

-하얀 손수건-


나는 꿈을 꾼다. 몽롱한 기운에
따르는 술잔이다. 그러한 술잔에 잔을 기울인다.
바라는 무언가가 있는가 형상이 일렁인다.
하얀 백지에 검고 붉은 잉크가 한방울 떨어지듯.
나는 몽롱 하다. 이것은 꿈일까.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전화기 소리가
나를 더욱이 현실을 조각처럼 분리해 놓았다.
분개 할 수 없는 여러개의 조각처럼.
그런 날카로운 파편 위를 나는 걷는다.

발 아래에 꿈틀거리듯 기어다니는 개미들과.
머리 위 붉은 하늘에 내뱉어진 담배연기와 새들.
나는 그 애매한 중간의 경계선에 서있다.
이곳이 바닥인지 이곳이 하늘인지
이곳이 꿈인지 이곳이 현실인지
이곳이 허공인지 이곳이 공허인지.
나는 인지 할 수 없다.
기울였던 술잔에 깨어나지 못했으려나.
가슴에 총을 맞은듯 뜨거우며
불이붙어 나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위스키다.
그뿐이다.

태웠던 담배의 연기에 취한것이려나.
신경은 날카롭게 섰는데 나는 현실을 구분 할 수 없다.
잠깐의 호흡곤란과 기침을 했던것 같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니 나는 다른 곳에 있었다.
꿈을 꾸고있는것이다. 아니면 의식을 잃었나.
기억을 걷는것인가 이곳은 낯설지가 않다.
눅눅하게 습한 이곳은 창문에 물이 새고
겨울엔 얼어붙는 서울시 서초구 어딘가의 2층.

저무는 겨울과 봄 꽃이 피는 거리에 향기가 나고
열린 창문으로 송화가루가 집 전체를 덮어
버려진 집같은 아산시 음봉면 어딘가의 2층.
눈을 감으면 눈부신 섬광이 나를 흔든다.
눈을 뜨면 교차되며 강철을 두드리는듯한
교대역과 천안역의 전철 소음이다.
하나의 기억 두명의 사람 두명의 삶 하나의 짐
두개의 기억 한명의 사람.
나는 가- 아니면 나-

예시는 A와 B 사이에 무한한 패턴으로 존재한다.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이며 복잡하고 난해하다.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구분하지 못하여
고로, 이것은 내게 잔인한 선택지이다.
같은 2층 다른 2층과 같은사람 다른 장소
같은 장소와 다른 사람
나는 현실에 가까워지려 할 수록 꿈에 가까워진다.
꿈에 가까워지려 할 수록 현실에 가까워 진다.
나는 나를 이런 나를 이해 할 수 없다
복잡하고 신경질적이며 잔인하고 난폭하다.

나는 그런 나를 생각함에 숨과 목이 조일 지경이다
4차원의 휘어진 공간 중력과 관성
나선형 볼트와 끈으로 이어진 난해한 형태.
중추신경의 작용 반작용. 나의 신경은 마비된듯 하다.
중력도 거부한다. 일반 상대성이론에 위반된다.
잇몸과 입술에 감각이 없고 혀끝이 입천장 닿자
마른 입술 사이로 타액이 폭포와 같이 내린다.
턱으로 흘러내리는 물의 모습이 떡 끝에 닿자
물이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로 흐르는 강이다.
나는 바닥을 보고선 하늘을 보았다.
강이 하늘에서 아래로 흐른다.

나는 온 몸이 간지럽다. 뿐만 아니라
손끝에 닿는 모든것들이 꽃이피고 시들어버린다.
현실과 꿈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평선이다.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외부에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듯 하다.
그럴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나는 두 팔을 벌려
지평선 너머로 투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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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울이 있는 실내이다.
안에서 일어난 일들도, 밖에서의 일들도 모른다
그렇게 진단을 내릴 수 없는 시체가 되었다.
나는 산채로 박제가 되어버린것이다.
오장은 겨우 살아 작동을 하며
육부는 점차 썩어 작동을 멈췄다.
심장은 점차 재 기능을 잃고
고르게 피를 흘려보내지 못하여 어지러운 것이다.
숨쉬는채로 손과 발이 굳어버리는 상하는 중이다.
갑각류의 겉면처럼 손끝과 발끝에 감각이 없고
이러한 느낌이 점점 심장과 머리로 다가온다.

그러한 이상한 감각이 눈으로 보일 지경이면
다시금 나는 꿈속으로 빠진다.
두 다리가 없고 팔이 재 기능을 하지 못하여
휠체어에 앉고도 움직이기 벅차지만
나는 눈을 감고서 다시 눈을 떴을때면
차라리 뜨지 못하였으면 하면서도
다시 떴을때의 그 날아갈것같은 황홀함이 좋다.
지금의 내가 어느 순간에 살아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점점 옛날로 간다. 다른말로는 젊어지며
또 다르게는 어려진다. 또 그렇게 걷지도 못하는
신생아가 된 기분을 느끼며 누군가가 나를 업고
나는 업힌채 어디론가 끌려간다.
이것을 끌려간다고 표현 하는게 맞을까.

나는 거울이 있는 방으로 업힌채 끌려갔다.
나는 거울에 반사되어 나를 비추고서
나는 눈이부셔 허우적거리다 나를 업은 자가
햇빛을 가렸다.
거울속에 갇힌 사람은 내 기억속 최초의 나이다.
머리에 털도 제대로 나지 않아 말도 못하며
걷지도 잡지도 못하는 내가
어느 잘생긴 청년의 목마에 올라 있었다.
그 옛날과 현재의 나는 연결되었다.
이러한 느낌을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갔다 하는가
아니, 나에겐 너무나도 길었다.

족히 20년, 아니면 30년은 넘게 건너온것 같다.
떨어져야만 하는 비가 어째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어째서 과거의 기억을 엿보았는지
왜 지금의 모습을 스스로 숨겼는지
왜 그리 길고 느린 꿈을 꾸었는지.
나는 다시금 진통을 느낀다.
차라리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금 나는 모르핀과 펜타닐에 취해 기억을 잃고서
현실과 꿈을 오가는 삶의 경계선을 헤맬것이다.

나는 지금 태양과 바다 그 사이에 서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를 보고
나는 그 번쩍이게 눈이 부시게 아름더운 유성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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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하얀 손수건이 내 못난 얼굴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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