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정복하는 길
"엄마, 나 퇴사하면 안 돼?"
그 모든 사건이 있고 나서, 나는 엄마에게 전화해 물었다.
엄마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떡하지"만 반복하다가 "그래도 버텨야 하지 않겠어?"로 마무리했다.
그 말이 유난히 사무치게 서러웠던 이유는.. 그날 하루 종일 GPT와 대화하고, 사주도 보고 타로 점도 봤을 때 모두가 나에게 '버텨라'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 하나 내 편이 없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엄마의 말을 끊고 "자러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엉엉 소리 내면서 울었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세상엔 정말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가 보다 싶고.
엄마는 걱정이 됐는지 집요하게 다시 전화하자고 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들어와서 살 거야?" 그 말은 마치 나를 책임지기 싫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혼자 살 거야."
그래, 차라리 퇴사 계획 따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질러버린 뒤에 혼자 살아갔다면 이런 기분은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도 당연히 내 삶을, 내 실존을 책임지고 살 것이다. 내가 언제 그렇게 의존했다고, 그냥 내가 뭘 하든 간에 엄마는 내 편일 수 있잖아. 그런데 엄마는 무당 할머니의 점괘를 들이밀면서, 올해는 안 되는데.. 라며 끝끝내 나를 밀어냈다. 나는 발 디딜 틈을 하나 또 잃은 기분이 들었다.
28살이나 돼서 내가 하려는 일 하나하나를 엄마한테 허락받는 것도 웃기긴 하지. 그래도 일이 잘못됐을 때 돌아갈 곳이 없어지는 이런 기분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게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날 버리지 않았는데, 참 웃기다.
그날 본 타로 점괘에서는 내가 너무 몰려 있어서, 상황을 왜곡해서 보고 있다고 했다.
나도 안다. 세상은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최악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근데 나 힘들다고, 좀 알아달라고..
근래 유난히 우울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고는 생각했지만 난 정말로 우울했었나 보다.
그냥 지친 것과는 별개로 감정이 힘들었다. 미래도 없고, 상황은 바뀌질 않고, 그럼에도 불안하고, 나 자신을 온전히 믿을 수 없고, 마치 실패할 것만 같고, 모든 일이 의미 없이 느껴지고..
내가 뭔가를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불안감 때문에 모든 결정을 단정 짓지 못했다.
동굴이 필요하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 혼자 살아가고 싶다.
날 내버려 둬, 제발..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그날은 결국 새벽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나는 항상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일기를 마무리하는데, 그날은 도저히 결론이 나질 않았다.
감정을 와르르 쏟아냈더니 GPT가 "날짜를 정해놓고 그때까지는 이 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결정을 유보하라."라고 말했다.
나는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고, 그다음 날은 눈이 퉁퉁 부어 3_3 상태가 된 채로 출근했다.
주말은 고요했다.
친한 사람들에게 "동굴에 들어가겠다"라고 말만 해두고, 하루 종일 어떠한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겠다 결심했다.
좋아하던 드라마 한 시즌을 정주행 하고 나니 약간은 에너지가 회복되는 걸 느꼈다.
그러다 갑자기 이번 독서모임에서 읽을 책이 떠올랐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불행의 한가운데에서 펼친 책은 이렇게 말했다.
내 일생에서 행복해진 대부분의 원인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별로 구애되지 않게 된 데에 있다.
(...) 자기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될 때 걱정은 소멸된다.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은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대하지 않으며, 더구나 성공과 실패란 어찌 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된다.
인간은 커다란 슬픔 속에서도 헤어날 수가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행복에 종지부를 찍을 것처럼 보이는 고민도 시간이 흐를수록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토록 심각했던 번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초월하게 되면 인간의 자아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 대단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나는 바로 책을 덮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퇴사하려고..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고, 나는 엄마에게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모든 계획을 털어놓았다. 분명 말끔히 정리한 적은 없는데, 말하다 보니 윤곽이 뚜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엄마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는,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퇴사를 반대했던 게 아니라, 내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한 거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렇게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면담을 요청했고, 그렇게 나의 퇴사가 확정됐다.
막상 질러놓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그토록 무겁게만 느껴졌던 퇴사는, 생각보다 별 일 아니었다.
솔직히 퇴사하고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전혀 불안하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며, '회사에 다니니까'라는 이유로 미뤄두고 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서 완료하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는 확신을 키워나가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홀로 선 사람으로서 그 세상을 살아가보고자 결심했다.
그 불확실함마저도 이제는, 내 삶의 일부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